박황희의 수다/빌어먹을 팔자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9.13 06:59 의견 0

1948년에 발간된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 25p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상호불여신호 - 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 - 身好不如心好

“얼굴이 잘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

김구 선생이 과거에 떨어져 상심하고 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관상 공부나 해보라” 하자 『마의상서(麻衣相書)』를 빌려다가 석 달 동안을 공부하였다. 관상을 연구하다 자기 얼굴을 보니, ‘귀(貴)’나 ‘부(富)’ 같은 좋은 상은 없고 오직 ‘천(賤)’, ‘빈(貧)’ 등의 ‘흉(凶)’상뿐이었다 한다. 한 마디로 빌어먹을 팔자인 거지의 관상이었다는 말이다.

이에 크게 낙심하여 살아갈 소망을 잃고 있었을 때, 책의 마지막 부분에 눈에 크게 띄는 글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위의 경구이다. 이 격언에 용기를 얻은 백범은 외적 수양이 아닌,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제대로 된 사람 노릇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하여 평생을 삶으로 실천하였다.

빌어먹고 산 사람 중에 가장 크게 된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백범 김구 선생을 꼽을 것이다. 암울한 식민지 조국의 현실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생산적 노동의 대가로 사는 현실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민중에게 빌어먹고 사는 고난의 길을 택하였다.

2천만 동포와 겨레를 살리고자 했던 그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독립에 필요한 자금을 빌어먹고 살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안위를 위한 길이 아니었기에 훗날 그는 민족의 정신적 지주요 겨레의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는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표를 구걸하고 후원금을 구걸하며 빌어먹고 사는 정치인이나, 생산적 산업활동은 전혀 없이 신도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대가로 신도들의 헌금을 빌어먹고 사는 목사나 승려 등의 종교인들이 대체로 그런 부류들이다.

빌어먹고 사는 사람 가운데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자선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 대가 지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일컬어 세상은 ‘거지’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저 빌어만 먹고, 곧바로 ‘먹튀’한다고 해도 세상은 결코 그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러나 거지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비록 빌어먹고 살지라도 세상은 반드시 빌어먹는 자들에게 그 대가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한다. 정치인에겐 국가적 안위와 민생의 복리를 증진할 책임을 요구하고, 종교인에겐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삶의 지표가 되어 줄 책임을 요구한다. 이 경제적 책임과 윤리의 당위를 실현해내지 못했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더 이상 존경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빌어먹을 놈’이라고 비웃는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국힘당이나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의 빌어먹는 자들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 수박이든 참외든 80% 이상은 반드시 물갈이 공천을 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정치를 구직의 수단으로 삼는 생계형 정치인들은 이젠 제발 다른 업종으로 전향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삶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기 원하는 순수한 봉사자이거나 독재자가 벌이는 광란의 질주를 온몸으로 막아내겠다는 일사의 각오를 한 자가 아니라면 제발 나서지 말라. 이 두 가지 이유 없이 공천을 바라는 생계형 정치자영업자들은 국민의 눈에는 그저 빌어먹겠다는 ‘거지’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민(民)’이 주권을 갖는 민주시대에 자신을 ‘민초’니 ‘백성’이니 하면서 스스로 제왕적 봉건주의 신민을 자처하는 모질한 인간들에게도 간곡한 부탁을 한다. 제발 자신들의 불합리한 판단과 비이성적인 맹목적 투표가 이웃에게는 재앙의 폭탄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나는 나의 건강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일평생 국가에 한 푼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5대 의무를 완벽히 준수한 대한민국의 당당한 주권자이다. 내가 낸 세금을 녹으로 빌어먹는 자들에게 나는 나의 의견을 개진하고 나의 주장을 요구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

국민의 세금을 빌어먹는 자들아~, 제발 권력을 통해 자신의 이권을 잡으려 하지 말고 독립군의 ‘의병 정신’으로 내 한 몸 희생하여 역사를 바로 세울 각오를 다져라. 그것이 나와 너 우리의 자손들이 살아갈 터전을 아름답게 닦는 길이다.

백범은 동시대의 사람보다 집안이 좋은 것도, 학식이 풍부한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모든 사람을 제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최고의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심학(心學)’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백범의 교훈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관상이 좋은 것은 신상(身相) 좋은 것만 못하고

신상이 좋은 것은 심상(心相) 좋은 것만 못하다.

관상불여신상 - 觀相不如身相

신상불여심상 - 身相不如心相

나는 여기에 굳이 한 가지를 더 언급하고 싶다.

“‘심상(心相)’이 좋은 것은 ‘배상(背相)’ 좋은 것만 못하다”를 추가하고 싶다.

‘심상불여배상 - 心相不如背相’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한 것이 인간인지라, 좋은 마음씨를 갖고 있다 한들 그가 삶으로 실천해낸 이력이 없다면 그는 단지 꿈을 꾸었을 뿐, 땀을 흘리지 않은 자이다. 꿈은 꾸기만 하면 거저 이루어지는 신기루나 요술램프 같은 환상이 아니다. 오직 땀으로 꿈을 적실 때만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한 알의 씨앗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뒷모습이야말로 한 사람의 일생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그가 진정 좋은 사람이요 훌륭한 인생이다. ‘심상불여배상(心相不如背相)’이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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