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교사)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겠냐만 해가 가면서 그걸 편하게 말하는 정도는 심해지는 것 같다. 아이들도 그렇다. 수업 시간에 꿈의 이유를 물으면 ‘돈을 많이 버니까’라는 근거를 너무도 노골적으로, 편하게 드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솔직히 어른으로서 무언가 못 해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미안하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싶다가도 잠시 생각하면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할 여건은 이미 차고 넘친다. 고개를 돌리면 숱하게 만나는 담론들은 빠지지 않고 돈에 관한 것들이다. 자산, 이윤, 복지, 성공, 수익, 연봉, 투자, 금리, 화폐 등등을 피하면서 어찌 하루를 넘길 수 있을까.

아이들을 데리고 항공대에 직업 체험을 다녀왔다. 거기서 만난 조종사는 국내 한 민항기 부기장이었는데 직업 세계를 설명하며 서슴없이 자신의 연봉을 얘기했다. 그리고 기장으로 승진하면 역시 연봉이 얼마고 세금은 어떻다는 등의 정보를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그 강의실에서 조종사의 얘기를 듣고 놀란 건 나 뿐인 것 같았다. 아이들도 제일 듣고 싶었던 내용이라며 좋아하는 눈치였고 직업 체험 프로그램에 익숙한 조종사로서는 나중에 추가 질문에서 가장 많이 나올 내용일지라 먼저 말해주는 게 효율적인 것으로 여기는 듯 보였다. 이제 자신의 벌이로 삶을 평가받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의 꿈 발표하기 대회’를 매년 개최한다. 올해는 한 아이가 자신의 꿈이 돈보다는 좋아하는 걸 추구하는 거라며 그 근거로 하나의 연구 사례를 들었다. 책 「1만 시간의 법칙」에서 따온 내용인데 예일대의 스톨리 블로트닉 연구소에서 1965년부터 20년 동안 실시한 ‘졸업생의 부(富) 증식 현황’에 관한 연구다. 예일대와 하버드대 학생 1,500명이 어떤 기준에 따라 직업을 선택했고 사회생활을 통해 얼마나 많은 재산을 쌓았는지 추적해봤는데 일단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83%에 해당하는 1,245명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였고, 보수는 적더라도 좋아하는 일 또는 꿈과 관계된 일을 업으로 삼은 나머지 학생은 17%(225명)로 나타나서 80여년 전 미국인들도 오늘날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 확인하니 소위 백만 장자 반열에 오른 사람 101명 중 돈을 추구하는 직업을 선택한 학생은 단 한 명 뿐이었고 나머지 100명은 사회에 발을 디딜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택했던 사람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좋아하는 꿈을 추구할 때 결국 돈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연구에는 설계자가 그렇게 되길 원하는 가설이 있다. 저 연구의 가설에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그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더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연구의 방점은 ‘꿈’이 아니라 ‘돈’. 결국은 ‘돈을 많이 벌려면 좋아하는 일을 해’라는 게 아니겠는가.

예체능 분야로 가고 싶다는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제일 먼저 하는 걱정이 해당 직종 분야에서의 수입이나 처우다. 아이들은 부모나 주위에서 들은, 돈이 안되는 직업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나로서는 해줄 말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가 살 만한 나라가 되었으니 그리고 선생님 때와는 다르게 여러분들이 부모님의 노후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자기 하나 앞가림할 정도라면 굳이 많은 돈이 필요치 않으므로 긴 인생 속에서 좋아하는 일 하나는 해봐야 억울하지 않겠냐는 정도의 격려를 해줄 뿐이다. 아이들과 공유하는 지점도 있다. 예체능 분야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므로 다른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일부의 사람들이 모든 걸 갖는 승자독식이 심해서 평균적인 처우는 좋지 않으리라는 예상 말이다.

우리 학교에는 야구부가 있다. 어린 학생들이 뙤약볕에서 매일 고된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 저 많은 선수들 가운데 나중에 우리가 이름을 알게 될 정도의 스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렇지 않다면 보통의 평범한 선수들은 생활인으로 어느 정도의 벌이를 하게 될까?

직장 개념으로 운동 부문을 본다면 대기업에 해당하는 건 프로야구 구단이 아닐까 싶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임금 처우를 살펴보고 일반 직장과 비교해보고 싶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LG 트윈스 팬이다. 현재 LG 트윈스 구단에 등록된 선수는 51명이다. 이 중 1군 등록 선수 인원은 팀마다 동일한 28명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18세 이하부)의 야구 선수는 3,655명이다. 이 선수들이 계속 운동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프로야구 1군 등록 선수가 되려면 약 7.5% 안에 들어야 한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그럼 1군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어떨까? KBO 보도자료에 제시된 LG 트윈스 고액 연봉 선수들 상위 7명의 총액은 36억원이었다. 이를 전체 51명 연봉 총액에서 제외하면 나머지 44명의 평균 연봉은 약 8,700만원이 된다. 우리나라 2023년 4인 가구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인 760여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1군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들만을 놓고 보면 하위 23명 평균 연봉은 약 3,900만원으로 상당히 낮아진다. 팀 안에서도 극명한 임금 격차가 나타나는 것이다. 자유계약(FA) 선수들과 비교하면 임금 격차는 더욱 심해진다. 4년간 최대 115억, 95억, 60억 등의 계약금을 받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팀 덕아웃에서도 엄청난 임금 격차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난 후 선수들을 바라볼 때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LG 트위스에는 발 빠르고 날렵한 선수 S가 있다. 1군에서 주로 있지만 타석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고 주로 경기 후반에 대주자로 들어가 도루를 한다거나 적시타에 빠르게 득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올 시즌 이 선수를 눈여겨 본 감독은 시합에 여유가 있을 때마다 타석에 세워 기회를 주었다. 결과는 대성공. 현재 인정 타석에는 못 미치지만 3할 중반의 타율을 보여주고 있고 훌륭한 내야 수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빠른 발로 팀 공격에 활력을 주는 건 기본이다. 나는 이 선수의 연봉이 궁금해서 LG트위스에 이메일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야구부가 있는 현직 중학교 진로교사입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에 나는 구단 선수들과 프런트 직원들의 임금 또는 처우에 관한 문의의 글을 남겼고 구단은 예상외로 빠른 답변을 주었다. ‘프런트 직원들의 임금에 대해서는 민감한 사안이라 알려드릴 수 없으나 구단 선수들의 연봉은 홈페이지에 선수 사진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선수 연봉이 올려져 있었다니! 너무도 놀란 나머지 직접 확인해 보았다. 현재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만 9년 차 선수 S의 연봉은 얼마일까? 금액은 4,900만원이었다. 물론 활약상에 따라 내년부터는 다른 연봉으로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수가 프로야구 선수를 시작한 6년 차까지는 3,000만원 이하의 연봉을 받았다.

우리가 입시 지도에 활용하고 있는 대학별 입시 결과 백분위에서 대략적으로 상위 8%대 학생들은 약 2등급 중후반의 위치이고 이는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 중 상위 15개 안팎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대학 알리미에서 공지한 2021년 취업률 상위 15개 대학이 딱 여기와 일치한다. 조금 거칠게 봤을 때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는 여건으로도 볼 수 있는 위치이다. 고등학교 등록 선수 인원 중 프로야구 1군 엔트리에 들어가는 인원(7.5%)이 비슷하다. 종합하면 프로야구 선수들의 전반적인 처우는 일반 직장인의 그것보다 열악했다. 앞서 말한 승자 독식이 예술과 스포츠 분야에서 특히나 두드러짐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대한민국 야구협회 홈페이지에서는 클릭만 하면 선수들의 연봉을 확인할 수 있다. 무덥고 습한 여름날 운동장에서 땀 흘려 경기하는 선수들의 이른바 몸값을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회.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는 한 사례로 충분하다. 어떤 분야든지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접을 받고 설령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실패했을 때엔 그다음의 기회가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또 최고가 아니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로 우리 사회의 직장들이 좋아지길 소망한다. 끝으로 선수 S의 말을 인용한다. “작년하고 재작년에 2군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야구를 그만둘까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코치님들이 야구를 그만두기에는 좀 아깝지 않냐고 말씀을 많이 해주고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야구를 그만두더라도 2군 경기를 1군 경기라고 생각하고 뛰자고 스스로 주문을 외웠어요. 그래서 지금 1군에서 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