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인 시인, 첫시집 <마침내 사랑이라는 말> 출간
순수한 존재의 따뜻함이 만들어 내는 ‘그늘의 공학’은 시를 움직이는 영혼의 나침반
하무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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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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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마침내 사랑이라는 말』이 시작시인선 0441번으로 출간되었다. 박정인 시인은 경상북도 청도 출생으로 2020년 『시와산문』 신인상으로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그늘의 공학’으로 제17회 김포문학대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는 김포문화재단 지원금을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방승호 문학평론가는 “박정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 속에 남겨진 공간, 그곳에 새겨져 있는 존재들을 우리는 하나, 둘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는 흘러가는 시간의 근원으로 그의 언어가 향해 있는 까닭이다”라고 그의 감상을 밝힌다. 그는 “박정인의 언어는 타자를 위한 그늘을 만들어 낸다. 그의 언어는 늘 빛과 함께하므로. 그의 마음이 수놓은 기표들을 따라가면 우리는 타자를 위해 마련된 조그마한 공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늘. 이곳은 시인의 사랑이 새겨져 있는 공간이다. 타자를 위해 아파할 수 있는 따뜻함이 숨 쉬는 장소이다. 물론 모든 것은 조금씩 희미해져 가겠지만, 그늘에 새겨진 시인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순수한 존재의 따뜻함이 만들어 내는 ‘그늘의 공학’은 박정인의 시를 움직이는 영혼의 나침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시인의 언어가 향하는 그곳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게 박정인이 준비한 그늘을 따라 걸어가 보면 우리는 마침내 마주치게 될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 '그늘의 공학'/ 박정인
느티나무에 출입금지판처럼 옹이가 나붙었다
옹이는 막힌 길,
가지가 방향을 바꾸는데 걸린 시간의 배꼽이다
다다르지 못한 초록에게서
필사의 아우성이 이글거릴 때
직박구리 한 마리, 옹이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수액 길어 올리던,
이제 사라진 가지의 길을 물고 대신 새가 가지를 친다
빼곡한 이파리들을 그늘의 아비라 믿은 적 있다
자드락비가 다녀가고,
아비는 제 몸에다
개칠(改漆)에 개칠을 더해 눈부신 여름을 예비했지만
나무 아래엔
그늘을 덮고 누운 햇살의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린다
이파리를 빼닮은 이파리 그림자가
그늘 한 칸 짜는 동안
말매미도 손마디만 한 제 그림자를 그늘에 보태겠다고
둥치에 업혀 맹렬하게 울어댄다
저 맹렬이면
광장을 들어 하늘에 띄울 수도 있겠다
맹렬을 심장이 내는 발톱이나 이빨, 때론 그윽한 눈빛으로 쓰는
한낮의 이파리가
흠씬 땀을 흘렸을까 나무 아래 서니
소금 냄새가 난다 그늘에 드리운 자그맣고 서늘한 염전이다
그늘을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오후 두 시
느티나무 아래엔 아직도 그늘이 모자란다
매미가 제 소리의 그늘까지 내려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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