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중학교(교장 지종문)는 지난 11.1(토) 희망 신청 학생 34명, 교원 7명, 경기도평화교육연구센터에서 파견한 이성주 전문해설사와 한경준 안전요원님이 동행하였다. 615시민연대에서 버스, 학생 점심비, 해설사를 지원해 주어서 도움이 컸다. 우리는 8시 30분에 학교에서 출발하여 저녁 6시,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를 직접 현장체험으로 알차게 보냈다. 먼저 임진강 평화누리공원 망향단 앞에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소리를 내는 기관차와 그 속에서 자라던 뽕나무와 사람들이 적어둔 수많은 통일 기원 리본을 보았다. 기관차는 수많은 총알 흔적을 그대로 박은 채 거꾸러져 있다가 여기 임진강 철로에 복원하여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임진강 너머 도보다리를 재현해 둔 곳으로 케블카를 타고 넘어갔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이 만나면서 화해와 평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역사적인 도보다리를 만들어 두었는데 그곳에서는 임진강이 남북을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남북의 드넓은 들판에 먹을 것이 많아서인지 새들의 천국이었다. 특히 겨울에는 철새가 많아서 남북을 오가며 자유롭게 날았다. 이성주 해설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첫째, 남북이 분단된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다. 둘째, 통일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실향민들이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두고 온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올리는 망배단,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가수 설운도의 노래, 일제 식민 시절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평화의 소녀상’은 남북한의 두 상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중 하나를 북한에 건네주고자 같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먼저 우리는 전진대교 앞에서 군인 초소를 지나 민간인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사전에 통보한 사람만 그 다리를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비무장 지대인 DMZ안에는 남측에서 지은 세 개의 마을이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의 대성동 마을은 15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대성리에서는 남북이 각각 태극기와 공화국기의 높이를 두고 경쟁을 했다고 한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통일촌은 실향민들이 고향 땅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2000년에 형성된 해마루촌에는 60가구의 실향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평화로운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울도 담도 없고 집집마다 꽃밭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해마루촌 마을회관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동네 한바퀴를 돌며 전쟁이 남긴 지뢰의 위험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어서 해마루촌을 나와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가 주검마저 수습하지 못한 중국군, 북한군의 유해를 묻어둔 묘지로 갔다. 국군에 의해 전투가 이루어진 곳을 중심으로 유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굴한 적군의 묘지다. 그들은 비록 적으로 왔으나 그 유해를 본국으로 보내기 위해 만든 묘지이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젊은 넋을 애도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 숙연했다. 중국군 유해는 모두 본국으로 송환하였으나, 북한군 유해만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로 오두산 전망대에 올랐다. 오두산 전망대에서 가장 눈시울을 붉게 만든 것은 이산가족들이 직접 그린 ‘그리운 나의 집’,‘그리운 부모형제’에게 보낸 편지와 사진을 전시한 벽면 앞에서 그 사연을 읽노라면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글 염경미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