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경숙(파주민보 기자)

충칭에 있는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장 터 (가릉빈관)를 가리키는 필자


슬로건 ‘임시정부로’와 함께한 중국에서의 7박 8일, 총 25곳의 사적지를 찾아간 뜻깊은 여정을 되새겨봅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해입니다. 난징, 충칭, 청두, 시안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역사를 직접 확인하며,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번 탐방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외교·군사 거점이었던 현장을 찾아가며, 희미해져 가는 역사적 흔적을 다시 기억하고 새기는 엄숙한 시간이었습니다. 출발 전날, 저는 용산 효창원을 찾았습니다. 김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조성환, 이동녕, 차리석 지사님의 묘소 앞에 서서 숙연히 고개를 숙이며 “잘 보고, 잘 듣고, 잘 느끼고 오겠다”는 다짐을 드렸습니다.

난징에 있는 '항일항공기념탑' 독립운동가 전상국, 김원영 영렬비


중국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항일항공열사기념관'이었습니다. 수많은 중국인과 외국 전사자들의 이름 가운데 전상국, 김원영 두 한국인 항일 비행사의 이름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물며 깊은 숙연함에 잠겼습니다. 교과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분들이셨습니다. 난징 중앙반점에서는 1933년 김구 선생께서 장제스 주석과 회담을 준비하시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 교섭 과정에서 큰 역할을 맡은 파주 출신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의 발자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안공근, 엄항섭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장제스와 김구 선생의 만남으로 설립된 난징 중앙군관학교 한인특별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 깊이 자부심이 밀려왔습니다. 이곳에서 훈련받은 청년들이 훗날 한국광복군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난징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 복성신촌10호)'


비록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아직 건물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도 발걸음을 멈춘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광복 직후 임시정부가 중국 정부와 협의하며 교민 보호와 귀국 문제를 담당했던 뜻깊은 공간입니다. 주화대표단 단장에는 우리 파주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 대표에는 우리 파주독립운동가 민영주 지사의 아버지인 민필호 선생과 지청천 장군이 활동하셨습니다. 특히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는, 85년 전 1940년 9월 17일 충칭 가릉빈관.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이 열렸던 그 역사적 현장에 섰을 때, 시간의 벽이 무너지고 당시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개회사를 했고, 파주 출신 조소앙 선생은 성립 경과를 보고했습니다. 지청천 총사령관을 비롯해 이범석, 김학규 장군,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 요인, 한국독립당 당원, 중국 국민당/공산당 인사들, 충칭에 있던 외국 사절이나 신문사 대표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며 내빈들은 방명록을 작성했고, 여성광복군 민영주 지사는 광복군기를 지청천 총사령관에게 헌기했습니다.

충칭 연화지 임정 청사, 복원된 광복군 총사령부건물 등 당시의 흔적을 직접 확인하며 깊은 감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연화지 청사는 현재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지만, 그마저도 역사적 무게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어떤 곳은 공사 중이거나 터만 남았고, 다른 곳은 새 건물과 담장에 가로막혀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자리마다 이름 없는 수 많은 독립지사들의 땀과 희생이 배어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파주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이 미군 OSS 훈련을 받았던 장소 앞에서는 들어갈 수 없어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 순간, “그래 잘 왔구나”는 속삭임 같은 울림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충칭청사(연화지) 전시실 안에 김구선생 흉상

충칭에 있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2019년 복원.개관)



이번 탐방 기간에는 저녁에 세 차례의 특별한 세미나도 이어졌습니다. 20대 세 명, 30대 한 명, 그리고 50대인 제가 함께한 우리 조는 세대 차이를 넘어 한마음으로 역사 앞에 섰습니다.

첫 번째 세미나에서 우리 조는 ‘여성 광복군’을 주제로 했습니다. 32명의 여성 광복군을 되새기며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을 본뜬 발표 자료를 제작했고, 여기에 QR코드까지 덧붙여 현장감을 더했습니다. 작은 배지를 획득하는 기쁨도 있었는데, 이는 숨겨진 역사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듯한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임정 골든벨’이었습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역사,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묻는 문제들이 이어졌고, 저의 활약 덕분에 우리 조는 또 한 번 배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탐방단 해설 강사이신 홍소연 선생님(전 백범김구기념관 자료실장)의 “정말 잘했다”고 저한테 하신 칭찬의 말씀은 이번 여정을 더욱 뜻깊게 해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서명포 만들기’였습니다. 저는 흰 광목천 위에 제 손바닥을 그리고, 다섯 손가락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주화단대표,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하신 파주의 윤기섭, 박찬익, 조소앙, 장준하, 민영주 지사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또한 신채호, 안창호, 김규식, 최재형, 이동휘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며 역사 앞에서의 빚과 앞으로의 다짐을 적었습니다.

마지막 밤, 시안 개원대극장에서 뮤지컬 <아리랑–승리의 노래>를 관람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해인 1919년을 뜻하는 오후 19시 19분에 막이 오른 공연은 우리를 80여 년 전 독립투쟁의 현장으로 이끌었습니다. 탐방단 한종수 선생님의 부친, 독립운동가 한유한(한형석)선생이 항일 예술구국투쟁의 한 획을 그은 작품에 창작 참여한 뮤지컬이어서 더욱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또한 광복 80주년 학술대회 참석차 시안을 찾으신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님의 말씀이 오래 남습니다.

“오늘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몫이며, 우리의 결의가 내일로 이어지길 바란다.”

우리는 난징에서 시안까지 25곳을 걸으며 이름난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희생을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탐방단은 ‘임시정부로’라는 이름 아래 모여, 끝내 '한국광복군 제6지대'라는 특별한 답을 함께 맞이하며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탐방은 단순한 답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지워져가는 역사 앞에서 오늘 우리의 책임을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중국에 남아 있는 임시정부 사적지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표지석 하나, 안내판 하나를 세우는 일조차 한국의 의지뿐 아니라 중국 정부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충칭에 있는 한국광복군 초모활동지(남천집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