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마추픽추를 오르며 비를 맞아서 그런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날씨가 화창하다. 어제 날씨도 이랬으면 마추픽추에서의 감동은 더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몸은 조금씩 고산증에 적응되어 몇 걸음을 옮겨도 숨이 덜 찼다. 오늘은 살리네라스 염전과 모라이를 볼 것이다. 멀리 설산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흰 구름을 낳아 허리에 두르고 있다. 그리고 안데스 산맥은 눈이 닿는 곳마다 능선을 만들며 병풍처럼 서있다.
가까이 구릉에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야생화와 푸릇한 들판을 배경으로 알파카와 라마, 그리고 양떼들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고 있다. 상처받은 영혼들을 풀어놓으면 모두 치유되어 아름다운 영혼으로 돌아올 유목지대 같았다. 고통으로 절규하는 현대인들의 아픈 영혼들을 놓아 주고 싶은 곳이다. 살리네라스 염전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 아름다운 풍경 사이로 들어가 우선 상처 많은 나의 영혼을 풀어주고 알파카와 라마와 함께 사진 삼매경이 되었다.
살리네라스 염전은 오래전 바다였던 안데스산맥이 융기하면서 생긴 곳으로 해발 3000m 산등성이에 약 3000 개의 크고 작은 염전이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염전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웅덩이에서 사시사철 따뜻한 염수가 계속 흘러나와 우리네 시골논에 물을 대주듯 염전마다 물길을 만들어 염수를 받고 염전에 물이 차면 다음 염전으로 흘러가는 형태였다. 언젠가 방송에서 봤던 깊은 염수 우물에서 물지게로 소금물을 퍼 올려 염전을 채우던 티베트의 자다촌 염전과는 달랐다.
염전 입구에 들어서니 한 남자가 산뽀니아로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a) 연주하고 있었다. 안데스 산맥을 넘으며 상처받은 영혼들을 씻어주었을 산뽀니아의 소리에 빠진 나는 연주자 가까이 앉아 콘도르의 날개에 영혼을 실어 안데스의 구릉마다 풀어주는 상상을 하며 연주를 들었다. 딸이 “엄마 CD 한 장 사줄까” 했다. 순간 짧은 생각에 한국에선 스마트폰으로 무슨 음악이든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터치 한번으로 모두 들을 수 있는데 하며 사양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CD 한 장이 아니라 살리네라스의 추억을 사오는 것이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염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초등학교 1-2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추리닝을 입고 뛰어다니다 우리에게 다가와 꼬리아?라고 물었다. “예스 꼬레아” 라고 했더니 자기들이 입은 진초록색 옷을 가리키며 스퀘드 스퀘드하며 츄리닝 뒤에 적혀 있는 숫자를 보여주었다. 알고 보니 그냥 추리닝이 아니라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옷과 뒤에 적혀있는 숫자였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인 즉 오징어 게임이란 영화를 만든 나라에서 온 사람이란 이유로 함께 사진 찍고 싶어 했다.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어깨가 살짝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 안데스산맥의 살리네라스 염전에서 K - culture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