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꽃 : 부추는 여름의 막바지 8월 중순에 우산살 같은 꽃을 피운다.
부추꽃 다발


텃밭에 부추를 심었다. 얼마나 좋은 채소인지 그 이름도 많다. 부추는 정구지, 졸, 솔, 파옥초 등 지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특히 파옥초(破屋草)는 중국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집을 무너뜨리는 풀’이라는 뜻이다. 이야기인즉 시아버지가 갓 시집온 새 며느리에게 부추 몇 포기를 건네며 “원기에 아주 좋은 채소니 울안에 심어 네 남편에게 자주 해주거라.”라고 당부한 것이다. 그날 이후 신부는 시아버지의 분부대로 열심히 부추를 뜯어 남편을 섬겼다. 그리고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조금씩 부추밭을 늘려갔다. 몇 년 후 뜨락까지 확대된 부추밭 때문에 결국 집이 무너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부추는 벨수록 더 부드러운 새순이 돋으므로 자주 베어 먹어야 한다. 부추김치, 부추전은 물론 계란찜과 오이김치는 부추가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 그 밖에도 각종 탕과 죽에도 이것이 들어가야 맛도 좋고 색감도 좋아진다. 한동안 더위에 지쳐 돌보지 않았더니 웃자란 부추 끝이 누렇게 마르고 꽃대마저 제법 곧게 올라왔다.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꽃대와 마른 잎을 제거하고 새순을 받으려고 일제히 베어냈다. 빡빡머리처럼 밀어낸 부추밭 옆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부추 더미 속에 창끝처럼 뾰족이 날이 선 꽃대가 눈에 들어왔다. 오라! 저 녀석을 가지고 놀다 보면 뭔가 얻어질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꽃대 한 묶음

뙤약볕을 피해 그늘로 옮겨 다니며 한나절 부추 꽃대를 만지작거렸다. 제법 탄력이 있는 꽃대는 수분이 빠지며 더욱 매력적인 소재가 되었다. 마침 광복절이라서 당시의 국제정세와 한반도의 분단 등을 생각하며 꼿꼿한 꽃대를 평상 위에 바둑판같이 가로 세로가 겹치도록 나열하였다. 그러나 바둑판은 눈의 크기가 제멋대로라서 더욱 예술적 감흥을 자아냈다. 내친김에 작은 솔방울을 따다 면적이 넓은 눈에 배열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더 이상 바둑기사가 아니고 땅따먹기 하는 열강처럼 바둑판 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열강들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입장에 따라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가르고 말았다. 이때 결정된 ‘분단’이라는 질병은 80년이 지난 오늘도 치유되지 않고 응어리는 깊어 가고 있다.

나는 이 작업을 “지정학적 놀이/Geopolitical Games)”라고 명명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지정학적 위기는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경제력이 괄목할 성장을 거듭하고 최근 대중문화를 선봉으로 한국의 문화적 역량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깊어진 이념 갈등 보혁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우리 주변에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면 우리의 장래도 분명 밝아질 것이다.

지정학적 놀이

지정학적 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