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후 태양의 도시, 공중도시,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로 향했다. 천사의 치맛자락 같은 구름이 산자락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얀따이땀보역으로 가서 잉카 레일을 탔다. 좌석은 다가오는 풍경보다 흘러가는 시간을 볼 수 있는 역행 자리였다. 흘러가는 시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살아온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의 순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차 경내는 우리에게 친숙한 엘 콘도로 파사(El Condor pasa)라는 잉카인들의 한을 담은 전통 민요가 원주민 악기인 산뽀니아의 음률로 울려 퍼졌다. 산과 산을 넘나들며 안데스의 영혼을 씻어 주던 산뽀니아의 맑은 소리가 운무雲霧에 휩싸여 잉카 왕조의 슬픔과 전설을 뇌리 속에 각인시키며 더욱 신비롭게 들렸다. 기차는 산허리를 돌때마다 기적을 울려 주었다. 오래전 대학로에 있던 카페가 양수리 강변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지나가는 기차마다 기적을 울려줘서 명소가 된 봉쥬르라는 카페가 떠올랐다.
잉카 레일에서 내리자 추적추적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추픽추를 못 보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사실 마추픽추에 오기 전 눈앞에 마추픽추가 나타나면 어떻게 그 상황을 감당할까? 털썩 주저앉아 울게 될까? 아니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될까?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안개가 끼었다 걷혔다를 반복하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마추픽추를 못 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감동은 반감했지만 그러나 사진에서 보던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가 자욱했던 안개를 걷어내며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험준한 고지대에 건설된 잃어버린 도시의 뼈대인 돌만 남아서 잉카의 역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잉카 제국 속으로 들어가 어딘가에서 날고 있을 콘도르를 상상해 보았다. 알파카실로 만들어진 빨간 망토를 입고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시그니처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다시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돌길이 미끄러워지자 서둘러 내려왔다.
그토록 가슴 조이게 했던 마추픽추를 보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내려오는 기차는 다시 낭만의 기적 소리를 울려 주었다. 기적 소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겐 그 사람이 오는 기척인 것 같고 이별을 앞에 둔 사람에겐 대신 울어주는 슬픔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긴장한 탓으로 올라갈 때는 들리지 않았던 계곡 물소리가 굉음으로 들리기도 했다. 오얀따이땀보역에 내려서 걸어오는데 사람은 많고 길은 복잡했다. 삼거리 좁은 골목에서 아저씨 한분이 SIGA라고 써진 팻말과 PARE라고 써진 팻말을 번갈아 들고 내리며 직접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인간 신호등인 것이다.
공중 도시인 마추픽추는 케추아어로 '오래된 봉우리'라는 뜻으로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산 아래에서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없다고 해서 잃어버린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마추픽추는 황제의 수발을 들거나 종교 제례를 위한 사제들 약 750여 명 정도의 거주를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일반적인 도시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우루밤바 숙소로 돌아와 1박을 더하며 고산증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다. 이튿날 아침해가 쨍했다. 어제 날씨가 이랬으면 마추픽추에서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고산증을 이겨내고 버킷 리스트였던 마추픽추에 올라 직접 두 눈으로 잃어버린 도시를 보았고 잉카인들이 세운 도시의 아름다운 돌담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