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에서

마추픽추 레일

망지기의 집



남미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이석증을 앓을 때 생겼던 어지럼증과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생기는 고산증이었다. 고산증 때문에 여행을 마치지 못하고 결국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왔었다는 지인의 얘기를 들었던 나는 만약 어지럼증이 생긴다면 어떡하지? 정말 괜찮을까? 등 불안한 마음에 떠나기 전 병원에서 고산증 약과 어지럼증 약 등 상비약을 모두 처방 받았다. 약이 한 보따리였다.

쿠스코 공항은 시골의 버스터미널처럼 마을 가운데 있었다. 비행기는 길 건너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 한가운데로 내려앉았다. 오래전 제주 공항에서 누군가를 배웅할 때 활주로 옆에 쳐진 철조망 밖에 서서 트랩을 올라가는 이에게 손을 흔들며 눈물을 뿌렸던 생각이 났다. 쿠스코를 잉카제국의 수도로 정한 잉카는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현재의 남아메리카 페루, 에콰도르 서부, 볼리비아 남서부, 칠레, 아르헨티나 북서부, 콜롬비아 남서부 등 총 6개국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고대 문명이다. 잉카인들은 해발고도 3400m에 있는 쿠스코(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를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다. 사실 잉카제국은 아즈텍 문명이나 마야문명과는 달리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지 않았으며 고산지대에 세워졌던 문명이다.

쿠스코에 도착하자 서서히 고산증세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증세는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머리가 어지럽고 매스꺼운 것에 그치지 않고 가슴이 갑갑하고 누군가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천근만근이 되는 두통이 나타났다. 그리고 각자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약한 부위에서 다양한 증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누구는 머리가 아프고, 누구는 장에 탈이 난 것처럼 설사가 나고, 누구는 무릎이 걷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나는 갑자기 왼쪽 팔이 들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아니 왜 멀쩡했던 왼쪽 팔이 아프지? 생각해보니 오래전 왼쪽 팔이 부러졌던 일이 기억났다.

세 걸음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차올랐다. 한국에서 준비한 약보다 현지의 고산증 약이 효가 있다며 가이드가 준비해준 고산증 약을 먹고 고산차를 마셨다. 그리고 머리가 아플 때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괜찮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시내의 한국식당으로 가서 한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기분 상 그런지 고산증은 처음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고산증 때문에 쿠스코 시내 여행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마추픽추를 오르기 위해 고도가 낮은 우루밤바(2870m)로 떠났다. 가는 도중에 친체로 마을에 들려 알파카 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염색 과정 그리고 잉카의 시그니처인 망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다.

알파카 실을 뽑는 여인들


일행 모두의 버킷 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추픽추에 오르기 위해 모두 긴장 상태로 건강을 조심했다. 우루밤바에서 1박을 하는 동안 몸은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 부석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아침 안부들을 챙겼다. 인간은 몸이 많이 약해졌을 때 마음이 더 많이 열리나 보다. 이제 한 팀으로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에 준비해온 약들을 나누어 주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간 느낌이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