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불교에 사성제라는 것이 있다. 먼저 삶은 고통이라는 현실의 진단이 있고 그 고통의 원인은 다름 아닌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집착임을 말한 다음 해탈의 가능성과 그 방법인 팔정도를 제시하는 내용으로 네 가지의 진리를 뜻한다. 인간의 고통이 욕심에서 비롯됨을 싯다르타는 오랜 수행과 깊은 내면의 성찰로 깨달았다. 그래서 깨달은 자(覺者, 붓다)가 되었다.

인간의 욕심이 만족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며칠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간은 천지가 물인데 먹을 물이 없다는 역설에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때 목마름을 해소하겠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순간 죽음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삼투압으로 인해 염도가 높은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은 심해진다. 이는 인간의 무한한 욕심이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그 바닷물을 끊임없이 먹어댄다. 무한한 갈증을 채우겠다며.

욕심의 대상을 대표하는 건 ‘돈’이다. 그래서 돈에 관한 욕심 또한 끝이 없다. 재벌들을 보라! 인간의 욕심이 무한하다는 증거는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모아도 만질 수 없는 돈을 이미 충분히 가진 그들이 더 많은 돈을 원하며 핏줄인 형제, 자매와 일상의 다툼을 넘어서 법정 분쟁까지 하는 모습을 수많은 언론에서 확인한 데 있다. 굳이 그런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도 그런 현상은 인간이 가진 한계 때문이라고 추측하지만 정말 그 입장이 되면 나도 그럴지 확인하고픈 간절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주도 로또를 한 장 사야겠다고 다짐한다.

문제는 가만히 있어도 건드는 상대적 박탈감인데 일명 ‘벼락 거지’로 통하는 절망적 상황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린 열심히 노력해서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의 성취를 부러워하고 시샘할지언정 그리 고통스러워하진 않는다. 상대적으로 더욱 고통스러운 경우는 운 또는 혜택에 의한 타인의 성취를 접했을 때이다. 다시 말해 비즈니스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많은 돈을 번 사람과 어디 아파트를 하나 샀더니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을 비교할 때 전자보다는 후자에 훨씬 배가 아플 수 있다. 그건 우리에게 오래전부터 장착된 건전한 노동관과 노력이라는 가치에 기인한 불편함 때문이다.

그런 불편함에 매몰된 날들 속에서 문득 한 줄기 빛과 같은 인물을 만났다. 그는 진주에 있는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불우한 학창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고, 이어 우리나라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을 대행한다. 최근에 그 자리를 위한 청문회에서 자신의 재산 규모를 공개한 장면이 회자되었다. 보통 사람들의 평균적인 자산 규모를 추구한다는 그의 철학에 나는 비로소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사회의 최고 지도층 인사라는 ‘저 사람도 저럴진대’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위안이었다. ‘벼락 거지’의 불안과 암울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정상에 있을 때 좀 더 추구하지 않고 내려놓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다면 그곳이 지옥이다. 오래전에 한 진보 정치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1987년 학력고사에서 인문계 여자 수석을 차지한 후 최고 대학의 법학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일했다. 그 후에 2007년부터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에 가입하여 제18대 국회의원이 된다. 그 강연은 그녀가 초선 의원일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보 정치의 선두에서 날 선 정치활동을 하던 그녀에게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분하고 겸손한 톤의 강연을 듣고 문득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왜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고 윤택한 삶을 추구하지 않느냐?’라고. 나라면 학력고사 수석을 하고 제일 좋다는 대학을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애써 힘든 삶을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서 드는 궁금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정당이 해산되는 상황을 겪고 결국 정계를 은퇴한다. 내란 음모의 혐의 때문이었다. 그때 그 질문을 하지 못해서 다행이었을까. 그녀에 관한 추억마저도 떠올리기가 불편할 만큼 현실은 매끄럽지가 않다.

‘배스킨라빈스’의 창업주 어빈 라빈스의 외아들 존 라빈스는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후 아버지의 가업 승계를 거부하고 상속을 포기한다. 1987년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Diet for a new America)>라는 책을 쓰고 채식주의자와 환경주의자로 활약하며 아버지 회사의 아이스크림을 포함해 사람의 몸에 해를 끼치는 많은 제품을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외삼촌(배스킨라빈스의 공동 창업주인 버트 배스킨)이 아이스크림을 너무 먹어 100kg이 넘는 체구로 54세에 세상을 떠난 후 충격을 받고 일어난 일이다. 그의 권유로 아버지인 어빈 라빈스도 아이스크림을 끊고 식생활을 개선하여 악화된 건강을 개선한다. 세계 최고의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사장과 아들은 더 이상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회사가 성장 가도를 달리던 중 돌연 퇴사를 한다. 억만장자의 삶보다는 엔지니어의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상당수 애플 주식을 동료들과 엔지니어들에게 나누어 주고 기술 독점에 반대하며 영원한 개발자로 남길 원했다. 훗날 공립학교에서 본인의 신분을 숨기고 무급 교사로 활동하기까지 하는 등 공동체를 위한 나눔의 삶을 살며 잡스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어 귀감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큰 부자이지만 돈을 추구하지 않은 채 얻은 자산이다. 욕심을 내려놓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뿐인가! 평생을 병원 옥탑방에서 살며 기꺼이 가난한 병자의 벗이 되었던 성산 장기려 선생, 독립 운동가이며 동포를 위해 기업을 일구었지만, 자녀 및 친인척에게 경영권이나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거의 유일한 기업 총수인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 가난한 형편에 상고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성공했지만,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변론으로 부산 지역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떨쳤던 노무현 변호사, 그리고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성취를 사회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할애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속 나타나고 있을 그들을 동경하며 성공이 중요하고, 돈이 중요한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생각이 주는 다른 차원의 울림을 아이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 사람들이 더는 갈증을 해소하려 바닷물을 먹지 않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