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만일 두 가지 삶 중 결정하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평균을 뛰어넘는 우수한 두뇌에 보통 정도의 열정이나 근성을 가진 사람 A와 평균을 뛰어넘는 열정이나 근성에 보통치의 두뇌를 가진 사람 B 중에서 한 명을 결정하라면, A인가, B인가?
A라고! 두뇌가 우수한 게 태생적으로 유리하다고. 열정이나 근성은 충분히 기를 수 있지만 두뇌는 그렇지 못한 거 아니냐고. 무슨, 열정이나 근성이 그리 쉽게 길러지는 거라면 왜 수많은 사람들이 작심삼일을 두려워하며 삶을 바꾸는 데 그리 힘들어하겠는가? 그래서 A보다는 B가 나은 거 아니냐고. 그것도 맞는 말일 것 같은데, 두뇌가 뛰어나서 조금만 노력해도 쉬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면 열정이나 근성을 기르는 것도 충분히 쉬울 거라면 어떨까? 과연 여러분의 선택은?
아이들의 적성 검사 결과를 파일로 받아보았다. 때때로 비교해 보길 학업 성적과 적성과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건 통계 프로그램으로 분석하고 비교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비교적 높은 성적의 아이들이 적성 백분위도 높다. 언어 이해, 논리 수학, 공간 지각, 그리고 과학 이해 영역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수로 정반대의 학생들이 보인다. 적성 백분위가 낮은데도 성적이 전교 상위권을 차지하는 학생들, 그와는 달리 적성 백분위가 높은데도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학생들. 과연 공부는 머리인가? 노력인가? 어찌 보면 이 뻔한 질문에 그렇지만은 않다고 희망을 주는 사례들로 인해 우리는 괴롭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다만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거란 생각으로 위로할 뿐이다.
머리가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높은 건 그냥 상수(常數)이다. 그런데 그게 막상 부모로부터의 유전자로만 결정되는 건 아닐 것이다. 때론 조부모나 다른 요인들로부터도 기인할 것이다. 가능성의 측면에서 부모로부터 받는 유전적 인자가 강렬하기 때문에 거길 주목할 뿐이다. 어떤 경우든 태생적으로 영특하게 세상에 나온 아이는 당연히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높다. 공부를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한없이 약해지는 측면이 여기에 있다.
거기에 환경적인 영향을 더하면 상황이 개선될까? 부모가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했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는데 자녀가 그것을 닮았다면, 그리고 큰 개선이 없이 그 상황이 유지된다면, 부모의 좌절은 더 할 것이다. 유전적인 혜택을 못 주어도 후천적인 환경에서 노력과 근성, 열정을 키워줄 지원마저도 실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태어난 모습으로 미래가 결정된다고 한정 지으면 상심한 부모를 애써 두 번 죽이는 상황은 없지 않겠나 싶다.
나는 마이클 조던의 체격과 체형이 아니다. 우린 각자 다른 체형과 모습으로 태어난다. 물론 그런 특성에 따른, 각자에게 맞는 종목이 있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나처럼 사지가 짧다면 좋은 운동이 있다. 바로 이스포츠(e-sports)이다. 오죽하면 타고난 체형을 극복할 수 없는 종목을 동경하며 ‘덩크 슛’ 같은 노래도 나왔을까! 그러나 다행스러운 사실은 축구 선수가 농구 선수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또한 뚱뚱한 야구 선수 중 장타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한편, 생각할수록 인간적인 운동은 체급 경기이다. 그리고 성별을 나눈 게임들이다. 그건 운동이라는 경쟁이 애당초 태생적인 한계가 큰 분야라는 방증이다.
그런 강력한 태생적 영역에서도 부모의 유전자와 환경을 동시에 얻어 성공한 사례들을 우리는 쉽게 목격한다. 야구 선수 누구의 아들은 이미 ‘바람의 손자’가 되었고, 축구 선수 누구의 아들은 대표팀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으며, 또한 프리미어리그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태생적인 재능과 함께 환경적인 영향이 제공된 모습들이다.
가정에서의 경험은 어느 분야이든지 진입 장벽을 낮추어 후세들에게 용이한 도전 환경을 제공한다. 일례로 할아버지, 아버지가 의사인 의가(醫家)에서 커 온 아이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본인도 충분히 노력하면 그런 지위에 오르리란 기대를 한다. 전교 1등? 태어난 후로 늘 보는 사람들이 이룬 성취이기에 자신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가시권에 놓는다. 사업이나 창업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보통의 월급쟁이 가정에서 커 온 아이보다 사업을 통해 부를 일구고 성공한 가정에서 커 온 아이는 당연히 비슷한 꿈을 쉽게 꿀 가능성이 높다.
대학 때 한 후배는 왜 사범대에 왔는지 묻자, 부모님 사업이 망해 너무 고통스러워 꼭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런 비슷한 사람들이 훗날 어떤 기회로 내재된 열망을 끌어냈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추구하는 모습을 본다. 사업이 아니더라도 근성이나 도전 역시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거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전하는 부모 밑에서 큰 사람이 역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돌파구는 공부나 성적이 머리와 재능이냐? 아니면 노력과 근성이냐? 라는 해묵은 논쟁의 답을 찾는 것보다 꼭 공부와 성적으로만 미래를 재단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전제의 해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진로와 진학 상담의 세계에서는 늘 다양성과 희망이라는 가치를 잃지 말아야겠다. 다행스럽게도 중학교에 근무하면서 고등학교에서 3학년 진학 담당을 할 때는 못 느꼈던 소중한 무언가를 아직 찾을 수 있겠다는 순간을 자주 만난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상담 중에 적성 영역을 확인하고 그게 우수하지 못한 아이에게 비슷한 정도에서도 높은 학업 성취를 이룬 선배들의 사례를 보여주며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 자체도 가능한 피하고 싶다. 요즘은 상담 전에 꼭 적성 영역을 확인하곤 들어간다. 안 되는 공부가 너의 태생이 그래서라는 일말의 단서도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좋은 적성 영역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안 좋다면 적잖은 비난에도 아이들은 안도한다. 그거면 됐다. 우리의 얘기는 그저 희망을 말할 뿐이다. 입바른 아첨과 혼동하지 않도록 수많은 근거를 준비하고 진짜 희망을 담아 아이들에게 전해줘야 하는 건 나의 몫이다. A냐, B냐 더 이상 헛된 밸런스 게임은 그만하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