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진로 교육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돈을 추구하는 욕망을 장려할 순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을 벌고 향유하는가를 가르치는 건 필수적인 주제이다. 돈을 벌기 위한 행위 자체의 고됨은 ‘경제적 자유’라는 유혹을 키운다. 그러나 극심한 양극화와 빈부격차 속에서 돈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일터에서 탈출하고 싶은 우리네 욕망은 많은 상처와 아쉬움을 낳는다. 오늘날 진로 교육에서 오직 일만을 논하는 고매한 태도는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돈과 일의 관계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가치투자’. 이미 단기간에 요행을 바라는 이윤 추구는 ‘투기’라고 부르며 ‘투자’와 견주어 비판해 왔다. 투자라는 말에는 절제와 기다림, 그리고 합리성에 근간을 둔 판단이라는 ‘가치’가 들어있을 텐데 그런 투자가 현실에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가치라는 타이틀을 붙여 단어를 만들었을까 싶다. 그럼, 돈을 벌긴 하되 과연 가치 있게 버는 건 어떤 모습일까? 성장하는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믿고 일시적으로 폭락한 가격이 오길 기다려 이른바 ‘안전 마진’을 확보한 후 투자한다, 그리곤 오랜 기간 인내하며 기다린다는 전략. 많은 사람에게 이미 잘 알려진 투자 방식이다.

그런 투자에는 다른 투자자들을 속이는 기만이나 불법이 없어야 한다. 좋은 기업들을 발굴하고 장려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성장을 돕고 건전한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조작과 사기는 투기보다 더 큰 죄악이다. 그런 비리가 의심되어도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나라의 시장은 신뢰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이 떠난다. 이미 자본에는 국적이 없으니까. 다시, 그렇게 가치 있는 투자로 돈을 번 모습을 인정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과연 돈을 어떻게 쓰고 누려야 할지에 관한 고민이 생긴다. 그래서 20세기를 넘어 현존하는 투자자 중에 그 두 가지를 제대로 행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를 생각하며 우리도 더 이상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라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바람도 함께 했다.

‘오마하의 현인’, 주식 투자만으로 세계적인 부자의 반열에 이른 사람, 바로 워런 버핏을 일컫는 말이다.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출생, 현재 나이 94세, 2024년 기준 블룸버그에 따르면 추정 순자산 1,360억 달러(약 199조 원)이다. 세계 10위 안에 드는 부자. 그러나 1958년에 3만 1,500달러(약 4,100만 원)를 주고 산 이층집에 아직도 살고 있고 캐딜락 XTS 중고차를 타고 다니며 애플에 투자해서 팀 쿡이 아이폰을 선물할 때까지 삼성의 구형 휴대폰인 SCH-U320 폴더폰을 썼다. 투자자들이라면 한두 번 이상 들었을 그의 삶을 통해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게 된다. 그럼으로써 일과 돈에 관한 제대로 된 가치 정립에 도움을 얻는다.

요즘은 미국 주식을 사는 게 편해진 세상이라 그가 경영하는 투자 자문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를 살펴보았다. 편한 마음에 한 주 사려다 가볍게 웃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주가는 한 주에 약 79만 달러(약 11억 6천만 원)이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돌리니 그 주식을 쪼갠 class B가 있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주가를 보고 또 한 번 가볍게 웃었다. 한 주에 525달러(약 77만 원)였다. 그가 왜 세계적인 부자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투자를 했을까? 가치투자의 대가로서 그가 말한 바람직한 투자의 길 중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한다.

“당신이 10년 동안 주식시장을 떠나 있을 거라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시장을 떠나기 전에 무엇인가에 투자를 하고 싶어 합니다. 떠나 있는 동안에 투자를 변경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업을 선택할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전에 포항제철 공모주를 샀다가 장롱 속에 두고 잊어버려 수십 년이 흐른 뒤에 찾았더니 큰 수익이 났더라는 사연이 떠오른다. 그는 주식 투자에서 탐욕과 감정에 휘둘린 사람들의 혼란을 늘 경계해 왔다.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 “경기는 점수판에 눈을 고정한 사람이 아니라 경기장에 집중하는 선수들이 이긴다.”와 같은 말에서 주가의 변동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 기준과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선택을 강조한다. “이발사에게 머리를 자를 필요가 있는지 물어보지 마라.”라는 조언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독립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투자일수록 휩쓸리기 쉽다는 경고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게 투자만 해당하는 덕목은 아닐 것이다. 그의 투자 철학은 그대로 삶의 철학으로 가르치기에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라.” 이런 역발상이 확고한 자기 철학이 없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지나간 역사의 교훈을 믿지 않고 당장의 급한 성취만을 바라는 마음 역시 위험하다. 미래를 예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언제나 백미러가 앞 유리보다 선명하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1999년 닷컴 버블기에 기술주를 외면했던 그의 수익률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조롱했다. 이후 2000년에 버블이 붕괴되면서 다시 한번 그가 옳았음이 증명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이 빠져나갈 때까지는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진로 교육의 관점에서는 그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표현들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가 출근하며 매일 맥 모닝을 먹는 모습과 직접 투자한 제품인 코카콜라를 입에 달고 다니고 햄버거, 스테이크 등을 먹는 초딩 식습관을 보이는 정겨운 모습은 유튜브를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94세의 노구이며 세계적인 부자이지만 일터로 향하는 그의 즐거운 모습에서 나는 일과 돈의 덧없는 연계가 실재함을 확인한다. 돈에 억압당하지 않은 진정 자유로운 ‘일하는 자’의 모습이다. 대학생들과 대화하기 좋아하는 그는 자주 얘기한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다. 당신에게 재능이 있다면,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 “습관의 사슬은 너무 가벼워서 느껴지지 않았다가, 끊기에는 너무 무거워질 때까지 계속 쌓인다.” “쉽게 번 돈만큼 합리성을 마비시키는 것은 없다.” “삶의 수준은 생활비 상승에 비례해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의 비결은 항상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그는 특별한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내가 주관한 복권 추첨에서 여러분이 당첨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당첨으로 여러분은 매우 특이한 상을 받게 됩니다. 그 상은 한 시간 내에 동기생 중의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남은 생애 동안 그 선택한 사람이 올리는 수익의 10%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자본주의와 올바른 인간상을 동시에 고려한 질문이다. 결국 삶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사고방식이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가 위대한 점은 자신처럼 즐거운 일을 찾으라고 호소하면서 정작 본인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주식 중개인을 했던 부모를 만났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행운아임을 고백한 일이다. 삶에 있어 특별한 운을 무시하지 않는 겸손함. 그것 때문에 그는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업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거기엔 오래전부터 빌 게이츠가 함께하고 있다. 세계 부자 순위에서 계속 밀려나는 이유도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후에 99%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 공헌한 바 있다. 많은 책을 읽고 기업으로 대변되는 세상에 관심을 잃지 않으며 자신이 하는 일이 즐거워 ‘매일 아침 탭댄스를 추는 기분’으로 출근한다는 그에게서 일이란 무엇인가를 거듭 생각하게 된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는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잔치를 벌인다. 오전과 오후에 주주들의 질문에 답하는 Q&A 세션이 있는데 무려 5시간 동안이나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주주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정성을 엿볼 수 있다. 2023년 주주총회는 버핏과 함께 앉아 특유의 유머와 위트로 현답을 주었던 그의 영원한 단짝이자 회사의 부회장인 찰리 멍거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행사였다. 그는 그해 말 100세 생일을 한 달여 앞두고 생을 마감했다. 찰리 멍거가 없이 행사를 진행한 2024년 주주총회의 마지막 말에서 버핏은 진정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제대로 돈을 벌고 쓰는 현명한 투자자로서 간절한 인사말을 남겼다.

“여러분이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만으로도 부자들이 기부를 할 때조차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여러분이 부자인지, 가난한지의 문제는 아니고요, 여러분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오늘 참석해 준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내년 이 자리에 여러분뿐 아니라 저도 올 수 있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