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우리 아파트는 매년 한파가 몰아치면 친절하게 방송이 나온다. “밤새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예정이오니 수도 동파 등에 대비하고 세탁기 사용 등을 자제해 주세요. 특히 000동, 000동, 000동은 동파에 취약하니 수돗물을 틀어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주세요.”라는 내용이다. 취약한 동에 우리 집이 포함되니 얼마나 요긴한 정보인가. 그러나 저 친절한 방송이 나올 때마다 깊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집에 이사하기 전 인테리어 공사를 대대적으로 해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신경이 많이 가는 일인지 잘 안다. 내 경우도 그랬다. 관리사무소에 공사 일정을 통보하고 사전에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며칠 동안 소음과 진동이 불편을 줄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가벼운 선물(종량제 봉투, 화장지)을 건냈다. 지난한 날들이 지나 어찌어찌 공사를 마치고 첫 겨울을 만났다. 그리곤 저 위의 방송을 처음 들은 날, 바로 수도가 얼었다!

수도가 오래 얼었다 녹으면 자칫 파이프에 균열이 가서 대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해동 업체를 불렀다. 스팀 기계의 노즐이 수도관으로 들어가서 얼음을 녹였다. 그러다가 오래된 그 기계가 터져서 온 집안이 수증기로 잠식되었고 이내 화재경보기가 작동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출동해 화재경보기를 해제하고 내려갔는데 한번 울린 경보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재차 울어대서 이웃집 사람들도 놀라 뛰쳐나오고 난리가 아니었다. 임시로 화재경보기 전원을 내리고 나서야 안정을 찾은 그 겨울날의 기억은 악몽과 같았다. 이후로는 추운 날만 되면 수돗물을 똑똑 떨어뜨리고 새벽에 일어나서 동파를 확인하곤 했다. 노이로제가 걸릴 뻔했다. 북쪽 공원을 향하고 있는 우리 집 싱크대 외벽에 수도 배관이 바로 닿아 있어서 한파가 몰아치면 얼어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이는 인테리어 공사할 때 난방재를 한 겹만 벽에 대었더라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공사가 다 끝나고 바로 앞집 아주머니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 아주머니는 겨울마다 수도가 동파되어 이번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난방재를 두껍게 대었다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세입자를 두고 있었던 앞집 아주머니는 우리 집이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줄 몰랐다. 만일 알았더라면 나에게 얘기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관리사무소에 대한 원망이 안 날 수 없었다. 수많은 세대가 인테리어 공사를 했을 것인데 그런 팁을 묵인한 것이었다. 매번 인테리어 공사를 신고하고 동의서 양식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그 한마디를 안 했다. 참으로 한심하고 나태하며 무능한 업무 태도이다.

웬만하면 얼굴 붉히는 일을 피하고 싶기에 그냥 넘어갔지만, 다른 이웃들을 위해서라도 얘기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관리사무소에 갔다. 입주 예정인 세대가 인테리어를 신고할 때마다 난방재 공사를 얘기하는 게 귀찮을 수 있으니 입주민 동의서 양식에 공사 시 유의 사항으로 몇 자 적어 놓으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모두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리곤 우리 집도 싱크대 안에 난방재를 넣는 보강 공사를 했다. 다행히 그 이후론 아무리 추운 날이어도 수도가 어는 일이 없어졌다.

몇 해가 지나 바로 아래층 아저씨가 입주민 동의를 받으러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동의서를 보았다. 내가 제안한 주의 사항은 일절 무시된 채 이전의 동의서 양식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었다. 분노한 마음으로 이웃 아저씨에게는 꼭 난방재를 보충하라고 권했다. 아저씨는 좋은 정보에 감사하다는 말을 했고, 나중에 물으니 동파가 안 일어난다고 했다. 이웃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의 행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찾아가서 따져야겠지만, 들를 일이 있으면 말하겠다 생각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보내고 있다. 모범 시민의 자격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다.

관리사무소 일이 힘들 수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겉보기엔 별거 없을 것 같아도 직접 해봐야 그 일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내 의견에 보였던 호응이 실제 업무로 이행되지 못한 점은 학교에서 일하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때 누군가의 조언이 탐탁지 않게 여겨져 바로 실천에 옮기지 못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한다. 누구에겐 삶에서 겪은 뼈저린 경험에서 온 충고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용력이 빈약하다면 그저 잔소리로 읽히기 쉽다. 핑계가 아니라 진짜 바빠서 이행하지 못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누군가의 충고와 조언은 그 자체로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발로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문득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충고와 조언을 들었는지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땐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 몫을 했다. 식습관, 등하교 시간 관리, 어른을 대하는 태도, 친구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 배움에 임하는 자세, 나태와 게으름에 대한 경고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선배와 선생님들이 있었다. 공부를 통한 성장과 미래의 대비, 정직하고 바른 행동, 공동체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배우고 익힐 것 등을 들었다. 혼도 많이 났지만 그래서 고친 행동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런 조언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이젠 조언과 충고를 되레 누군가에게 해줘야 할 입장이기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조언과 충고가 어려워진 세태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아이들을 혼 내는 게 조심스럽고, 나름 사려 깊게 한 충고와 조언이 잔소리로 여겨지며, 급기야 일명 ‘꼰대’스러운 취급을 받게 된다면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바라건대 작은 경험이나마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소중히 전할 수 있는 여력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다른 사람의 조언과 충고가 때론 하찮은 잔소리로 여겨질지라도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여길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상기해야겠다. 그렇듯 좋은 과거의 경험이 현재와 맞바뀌어(trade) 전해지는 게 곧 ‘전통’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우리 관리사무소는 또 무심한 방송을 한다.

‘특히 000동, 000동은 수도관 동파에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리 방송할 시간에 차라리 내 말이나 듣지…’

미력한 조언자의 구시렁거림은 멈추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