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매년 신학기가 시작되면 한 2주 정도는 상담이 뜸해서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진로 교사에게 수업 시수를 적게 배정해 준 건 다른 선생님이 수업하는 동안 많은 상담을 하라는 취지일 것이기에 선생님들이 수업에 들어갔는데 상담하지 못하면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진다. 자격지심은 떨쳐내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렇게 학년초에 걱정과 근심을 하지만 수업하고 상담 신청 방법을 홍보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학생들이 몰려온다. 매년 그랬기에 안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비로소 아이들을 만난다. 그 이후에는 열심히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객(?) 유지와 관리는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 그렇다.
한 해에 두 번 이상 상담한 학생들이 있다. 많은 경우는 네 번까지도 상담한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는 고입과 대입 그리고 향후 진로까지 다방면의 조사와 분석, 그리고 학부모님 상담까지 거치면서 아이의 고민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아이가 기댈 수 있는 누군가에 내가 있다면 보람이 있는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문득 2학기에 두 번 상담한 2학년 여학생이 떠오른다. 방학 때 이 글을 쓰면서 학생들과 잠시 떨어져 있지만 그 학생을 떠올리니 다시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그래서 매 맞을 각오로 고백한다. 그런 학생들이 떠오르는 순간, 개학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저 멀리서 나에게 달려드는 분노한 얼굴들, 동료와 제자들에게 죄송하다.
그 아이는 장래 희망이 분명했다. 제과제빵사, 일명 파티시에(제과사) & 블랑제(제빵사). 아이는 특성화고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질문했다. 우리 지역 특성화고의 제과제빵 학과는 대부분 성적과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의 경우는 가장 점수가 높은 학과이기에 공부를 어느 정도 해야겠다고 말하고 아이의 성적을 보았다. 그리곤 잠시 놀랐다. 경기도 고입 선발 내신 성적 산출 기준으로 보았을 때 아이의 성적이 3학년까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가까운 비평준화 지역 자율형 공립고의 합격 성적에 이르는 우수한 상태임을 확인한 것이다. 다른 자사고나 특목고에 지원하기에도 충분한 성적이었다. 순간 ‘이런 성적으로 왜…?’라는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일단 성적으로는 전혀 걱정할 게 없고 지금의 점수를 유지했을 때 고등학교에 가서도 바로 취업을 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겠다고 조언했다. 제과제빵으로 유명한 전문대학교 또는 식품조리학과가 있는 4년제 대학을 알려줬다. 아이는 평소에 빵이나 쿠키를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마침, 2학기에 실시한 직업인 멘토링에서는 제빵사를 선택해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흥미만으로 학교를 정하기에 자칫 놓칠 수 있는 사항들이 있기에 몇 가지를 점검해 주었다. 이땐 학부모의 입장을 감안하며 얘기를 나눈다. 빵과 쿠키 만드는 게 좋아도 고등학교 3년 동안 주로 그 활동을 하면 지치거나 실망할 수 있다는 현실을 그려주고 훗날 진로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해 주었다. 실제 특성화고에 가서 경험할 만한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이다. 아이는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비록 중학교 2학년이지만 그 표정과 기품이 너무도 단아하고 진중해서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만일 아이가 일반고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유보한다면 업계 진출은 늦어질 수 있다. 현장 경력이 중요한 직종에서는 나이가 어릴수록 꾸지람과 질타를 받아도 극복할 여지가 크다고 본다. 우리나라처럼 연공서열 의식이 강한 나라는 그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해외 유학까지 고려한다면 조금 더 일찍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는 게 유리한 점이 있다. 평소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찾고 매진하라고 떠들면서 정작 성적이 우수한 아이가 특성화고를 간다고 하니 그걸 특이하게 여기고 걱정하는 나 자신에게서 진로 교육의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모습을 본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한 달여 기간이 흘렀다. 그 아이가 두 번째로 상담을 신청했다. 아이는 특성화고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주위의 시선을 극복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자신의 성적에 맞는 국제고나 외고에 갈지, 아니면 일반고에 가야 할지를 물었다. 지금까지 특별한 생기부 관리를 한 게 아니었음에도 성적뿐만 아니라 충실한 학교 활동을 한 게 보였다. 각 학교의 장단점을 비교해 주며 만일 국제고나 외고를 간다면 갖추어야 할 학교 활동과 자소서 및 면접 준비법을 알려주었다. 조심스럽게 아직 제빵사의 꿈을 유지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그렇다고 한다. 공부 위주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꿈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다면 대학에 가서 전공을 하라고 조언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대학 가서 하라는 그 시답잖은 얘기를 또 하고 말았다. 그래도 현재 제빵사가 꿈이기에 1차 상담 때처럼 우리 동네 개인 제과점을 알려줬다. 빵 맛이 좋아 손님이 제법 있는 가게인데 매장에는 주인장이 외국 유학으로 얻은 졸업장과 자격증이 뽐내듯 걸려있다. 점원에게 물었더니 매장 지하에 빵 만드는 작업장이 있다고 했다. 직접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한계를 아쉬워하며 아이에게 한번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아이가 직접 요청하면 오히려 쉽게 인터뷰를 이뤄낼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성적이 크게 상관없는 길을 간다고 하니 걱정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일까? 지속되는 자문 속에 마음이 편치 않다. 만일 제빵사라는 직업이 보수와 처우가 좋은 일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좋은 대학, 상위권 학과에 배치될 것이다. 아이와의 상담을 떠 올리며 다시 한번 제빵사라는 직업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조리 분야가 대부분 그렇듯이 자격증을 따고 학교에서 실습을 했어도 현장에 가면 처음부터 경험하는 일이 많은 걸 확인했다. 그나마 개인이 운영하는 빵집에서는 기술을 전수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대기업 프랜차이즈보다 열악한 근무 환경이 많았다. 호텔 등지에 취업해도 전반적인 보수와 처우는 그리 좋지 못했다. 대부분 이 분야의 종사자들이 꿈꾸는 건 자기 사업이었다. 자신만의 빵집을 차리고 잘 경영해서 돈도 벌고 인정을 받고 싶은 것. 나는 아이에게 소개해 준 나름 성업 중인 동네 개인 빵집이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낼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 빵집에서 그런 질문을 한들 알려줄 리 만무하니 주변에 있는 “P”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수익을 살펴보았다. 해당 프랜차이즈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30평형 기준의 개설 비용이 나와 있었다. 인테리어, 베이킹 장비, 간판, 가구, 부대 시설, POS, 디지털 메뉴 보드, 초도 물량 등을 합하니 약 2억 4천만 원에서 2억 9천만 원 정도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가맹사업 정보제공 시스템에 따르면 2023년 현재 해당 프랜차이즈의 전체 가맹점당 연평균 매출액은 약 7억 1천만 원, 월평균으로는 약 5,900만 원이었다. 여기서 재료비, 인건비, 임대료, 공과금, 세금과 각종 수수료 및 기타 비용을 제하면 순수익은 335만 원이 된다(BUTTERFLYINVEST.COM). 이마저도 초기 투자금에 상가 보증금이나 가맹비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물론 이는 대략적으로 추정한 평균 수익이고 매장에 따라서는 훨씬 많은 수익을 내는 곳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개설이나 운영에 관련된 자료와 유튜브를 찾아보면 수많은 관련 댓글과 후기들이 실제 업무 여건과 수익이 매우 열악한 상황임을 재차 확인하게 해주는 게 현실이다. 만일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지 않고 개인 빵집을 운영할 경우, 저 정도 금액을 상회하는 정도의 금액에서 수익이 나야지만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권 분석이나 메뉴와 운영의 전문성을 갖춘 대기업의 노하우와 견주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매장을 경영한다는 것은 절대 녹록지 않은 일일 것이다.
공부가 최고는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만, 우리 사회만큼 공부로 세상 모습을 깔끔하게 재단하는 곳도 없다고 본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으면 다른 일을 찾아서 하라는 조언이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무심한 빈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무엇을 하던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자신에게 행복한 일만을 추구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여러 사회적 여건과 전망이 진로 진학 상담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중학생이다. 그들에게 세상의 험한 짐을 온전히 지우게 할 순 없기에 상담할 때도 애써 감추며 암묵적 사과를 해야 한다. 그것은 선생이기 앞서 시대의 어른으로서 지울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의 발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