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너도 일베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제자가 3학년이 되어 상담을 신청했기에 편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물었다. 그 애가 1학년일 때 다른 반 반장 아이는 장애인들의 지하철 지연 투쟁을 비판했더랬다. “선생님, 아무리 약자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나쁜 거 아닌가요?” 난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된 그 아이의 사회적 시선에 ‘그건 이렇다!’라는 결론을 내려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사회적 약자라면 조건 없이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대해야 한다는 전제조차 비판할 수 있는 건 민주 시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비판의식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일차적으로 느낄 감정으로써 측은지심의 발로를 떠올리면 답답한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못한 채 남아있다.
“그거, 대부분 허세일 거예요.” 아까 질문했던 제자로부터 돌아온 답변이었다. “그렇지, 아무렴 애들이 다 그럴 리가.”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나름 반듯한 제자의 답변만으로는 충분히 안심되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 한 국립대 교수의 글을 보고 내 불안함의 근거를 확인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현재 고등학생인 아들의 주변 모든 남자아이들이,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단 한 명도 안 빼고, 100%의 남자아이들이 신남성연대를 추종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고등학생 아이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뭘 안다고 '빨갱이', '빨갱이'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아들을 보고 '빨갱이'라고 한단다.”(‘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 왔다’, 교육언론「창」,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 역시 친구끼리 도색물 즉, 포르노그래피를 몰래 구해서 보거나 짓궂은 농담과 음담패설, 그리고 욕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그러나 그건 철저히 머슴아들끼리만 있을 때였다. 남녀공학이었던 중학교 때 여학생들과 함께 있던 교실에서는 거의 욕지거리를 하지 않았고, 어른들이 다니는 길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실과 복도에서 좀처럼 욕 없는 대화를 듣기가 어렵다. 일시적이냐고? 어느 순간부터 한 번에 무너지는가 싶더니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만큼 주변 눈치를 안 보고 자유로워진 거라면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라는 아이들의 철없는 모습에 변함이 없다고 여유 있게 봐 줄 수도 있다.
1969년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약 3일 반나절 동안 뉴욕 북부의 베델 평원에서는 3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록 음악 축제를 즐겼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이었다. 당대의 유명 록 음악가들이 참여한 이 축제는 3일간의 평화와 음악(3 days of peace and music)을 주제로 내건 행사였는데 기성세대의 가치에 대립하며 반전, 사랑, 평화를 외치던 히피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비록 현실 도피와 안위적 삶을 추구하며 마약과 환각에 빠지는 등 비판을 받는 측면이 있지만, 훗날 1999년 행해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혼란과 난장판에 비하면 오히려 안정적인 행사였다고 평가받았던 69년 행사는 젊은이라면 응당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평화와 자유라는 인류의 보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상징적 행사로 남아있다. 그 이후 록 음악은 거대 권력에 대한 저항과 평화의 의미로 활용되었고 1985년 Live Aid 행사에서도 빛을 발한다.
굳이 오래된 축제의 사례를 드는 이유는 젊은이들은 언제나 기존 질서와 제도의 불합리나 모순에 대항하며 일탈을 꿈꿔왔기에 그 시절의 저항과 반항을 지금에 대비해서 보면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유별난 문제로 볼지, 아니면 세상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볼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렇게 보니 기성세대가 지닐 안정과 여유와 반대되는 불안, 혼란, 어지러움은 젊은 세대에겐 당연한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안정과 여유가 감춘 이면의 권력과 억압, 그리고 모순을 ‘엄숙, 근엄, 진지’로 여겨 조롱한다 해도 그 비판이 인정을 받을 토대는 자유와 평등, 사랑과 평화와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더욱 참신하고 순수한 접근의 경우일 것이다. 때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도전할 때 ‘세상 물정을 몰라서’라고 어른들의 염려를 받아도 그게 청춘의 아름다움이었다. ‘젊음’이나 ‘청춘’이라는 단어에서 기득권에 타협하고, 약자를 조롱하며, 충실한 자기 이익을 갈구함은 결코 떠올리기 어려운, 어울리지 않은 내용들이다.
다시 한번 약자의 철학을 떠올린다. 그들의 위악(僞惡)적 표현은 가진 게 없음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 수 있다. 그게 예술로 승화하면 거친 록 음악일 수 있고 때론 선을 넘는 저항과 투쟁일 수 있다. 그렇게 투박한 표현이나마 연대하고 단결해야 세상을 그들의 의도로 조금씩 바꿀 수 있다. 그게 시민과 민중의 역사였다. 반면 강자들의 현장은 법정이다. 검은 법의(法衣)의 엄숙성과 정숙성이 압도한다(신영복, 「담론」). 그들은 위선(僞善)적 표현으로 충분히 약자들을 꾸짖을 수 있다. 기득권이 갖고 있는 품위와 우아함은 더 많은 수단을 갖고 있다는 여유를 감안하면 필수적인 양태일 것이다. 반면 약자들이 연대와 단결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이자 강자를 대할 유일한 무기는 ‘도덕적 우위와 자부심’이다. 가진 게 많아 누릴 것도 많은 이들이 애써 갖추려 하지 않아도 되는 저 가치가 약자들에게는 필수적인 가치이다.
영화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이 월세도 못 낼 정도로 힘든 시절 동료 감독으로부터 솔깃한 영화 사업 투자 제안을 받고 이를 정중히 거절하며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평생 그렇게 쉽게 돈 번 사람들 욕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그 재미마저 잃고 싶지 않아…” 가난한 약자가 강자들을 조롱할 수 있는 힘은 저런 자부심뿐일지 모른다. 그러면 강자는, 그런 조롱과 비난을 감내한 채로 품위와 우아함으로 안정된 질서를 갈구하면 되었다. 그 정도도 참을 수 없다면 어찌 약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그들이 누리는 세상의 현상 유지를 이뤄낼 수 있겠는가.
한편 강자나 약자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기 힘든 저속한 풍속은 언제나 음지(陰地)에서 가려진 채로 존재했다. 흔히 ‘서브컬쳐(subculture)’로 대변되는 비주류 문화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주류 문화가 갖지 못하는 참신성과 파격으로 때때로 주류 문화에 편입되곤 한다. 하지만 강자들이 표현하는 품위에는 걸맞지 않아 무시되어 왔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강자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여유를 누리는 데 있어 사회적 불만과 충동을 양해하지 않는 일이 나타난 것이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어느덧 강자들의 야박함과 불안, 그리고 집착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사회의 보편 가치가 될 수 없는 음지(陰地)의 내용들, 우리가 애써 누르며 살고 있는 어두운 마음의 한 측면을 전면에 부상시키고 인정하고 격려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에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어느덧 우리 아이들의 어두운 일면을 다그치거나 타이르기보다 격려하고, 그동안은 애써 감추며 조심스레 행해왔던 자신들의 이익을 이젠 대놓고 추구하기까지 이르렀다. 거기엔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관한 직관적 판단 마저 혼란하게 만드는 수많은 법률의 공방이 난무하고 힘과 세를 과시하면서 ‘그래서 니들이 어쩔 건데’라는 안하무인이 함께한다. 그런 모습들이 보이면 그나마 이전의 위선(僞善)적 표현에 존중과 인정을 보였던 대다수의 약자는 허탈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다. 십수 년째 보고 있는 모습들이다.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대놓고 드러나는 탈세, 논문 표절, 병역기피, 위장전입 등을 볼 때에 그렇다. 검사들의 ‘99만 원짜리 불기소 세트’와 ‘800원 횡령 버스 기사 판결’의 뉴스를 함께 볼 때 그렇다.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 행위’라는 말을 들을 때도, 법원을 점거하는 폭동에 ‘국민 저항권’ 운운하는 주장을 들을 때도 그렇다. 강자의 강퍅함과 저열함은 약자를 슬프게 한다.
약자들은 도덕적 우위와 자부심을 품고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며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되길, 강자들은 약자가 행여나 잃어버릴 수 있는 품위와 교양을 간직하며 그 속에서 약자가 누릴 수 없는 여유와 즐거움을 안정감 있게 향유하길, 그리하여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언제나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편안한 세상이 되길, 나는 소망한다. 끝으로 지난 올림픽 때 국민적 칭찬을 받은 협회의 수장인 재벌 3세의 말을 통해 강자들의 예전 모습을 그려보며 글을 맺는다.
“존경하는 양궁인 여러분. 저는 우리 양궁인들께서 더 큰 포부와 꿈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시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어느 분야든 최고라는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정하게 경쟁했는데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습니다. 보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도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진정한 일인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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