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진로와 직업’ 교과의 수업 중 직업윤리 단원이 있다. 직업인이 지켜야 할 윤리에 관한 내용은 내가 윤리 교사였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따분하게 여겨지기에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곤 한다.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얘기하면서 일반적인 윤리와는 다른, 직업별로 부여될 특수한 윤리에 관해 얘기를 해준다. 전문직 윤리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에서 비롯된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더욱 직업인의 양심과 윤리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피해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융 전문가가 만든 파생 상품이 고객들에게 이익을 준다고 판매했지만 교묘하게 수익을 조장하여 묵시적인 피해를 주거나 의료인의 과잉 진료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등의 모습들이 그렇다. 흔히 혼란한 소비자 입장에서 ‘눈탱이’ 맞는 일들도 다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돈 앞에 양심을 파는 행위들이다.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칠 때는 그 유명한 막스 베버의 ‘책임 윤리’를 다뤘다. 그는 행위자의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위의 결과가 나쁠 경우 그 책임은 행위자에게 있지 않고 세계 또는 타인에게 있다는 ‘심정 윤리’를 인정하면서도 예견할 수 있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엄중한 책임을 묻는 ‘책임 윤리’를 강조하였다. 우리는 어떤 이념이나 선호에 확신을 가질 자유가 있지만 그것으로 일을 할 때는 그 행위에 따르는 결과에 강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만 올바른 직업인일 수 있다. 수많은 직업 중에 ‘책임 윤리’가 특히 필요한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 정치인이다.
우리나라 헌법의 계엄령에는 헌법 제5호(1960년) 까지 국회의 해제 권한이 명시되지 않았다가 5차 개정헌법(헌법 제6호)(1963년)에 제75조 4항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5항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넣었다. 그러다가 일명 유신헌법인 헌법 제8호(1972년)에서 제54조 5항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신설했고 이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왜 하필 유신헌법에서 국회의원 과반수 찬성의 조항을 보탰을까? 대통령 권한을 강화한 헌법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형식적 정의를 추가한 모습으로 읽히지만, 오히려 저 조건이 실제 계엄이 선포되면 쉽게 만들어질 수 없는 기준으로 생각해서 넣은 게 아닐까 싶다. 선의를 기대할 수 없는 악법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이들이 있다. 그동안의 계엄령 역사에서 헌법에 있는 국회의 해제 권한이 실제적 효력을 발휘한 적이 없었던 것은 일단 계엄령이 선포되면 국회의원이나 비판 세력들이 체포되고 언론이 장악되며 공포에 빠진 시민들이 숨죽이게 되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러한 억압에 저항한다면 구타와 유혈 사태를 감내하면서 고통을 겪을 수밖엔 없었다. 그렇게 계엄령은 우리 역사에서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줄곧 악용되어 왔다.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헌정사상 17번째 계엄령 선포에 속보를 보고 있는 나 역시 심장이 두근대고 떨리는 상태였다. 그건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가장 큰 걱정은 ‘국회의원들이 많이 모이지 않으면 어떡하지’하는 불안이었다. 이미 군과 경찰이 국회를 포위하고 있던 상태, 상공으론 군 헬기가 이동하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동안의 역사를 떠올릴 때 국회에 간다는 건 때론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도전으로 여겨졌다. 국회의장의 소집 요청에 미리 겁을 먹고 국회에 모이지 않은 의원들이 많으면 어찌할까 하는 걱정이 들면서 순간 만일 나라면 과연 과감하게 그곳에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감정을 이입하니 국회의 계엄 해제 요건이 더욱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결과적으로 기대한 것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본회의장으로 들어왔으며 지체하지 않고 자신을 던진 190명의 인물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충실한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과 윤리적 소명을 다한 모습으로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고마운 결과였다.
윤리를 가르치다가 이번을 계기로 또 하나 떠오른 내용이 있다. 과연 우리는 법이 우리의 양심과 어긋나더라도 무조건 준수해야 하는가? 상관의 명령이 나의 양심과 어긋나더라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 라는 의문에 희망을 부여해 준 이론 ‘시민 불복종’에 관한 내용이었다. 일찍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의 사상가들이 주창했던 정신이다. 그는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조차도 불의의 하수인이 될 상황이라면 그 법을 어겨라. 양심에 따라 그 법에 저항하라.”라고 주장하며 개인의 양심을 불복종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런 시민 불복종은 당연히 처벌을 감수해야 하고 비폭력적 방법을 써야 하며 가능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누가 불복종을 했는가? 부당한 명령에 최소한의 태업(sabotage)으로 보이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떻게 가능했던가? 주인공은 국회를 감싸고 있던 경찰과 군인들이었다. 일부 군인들이 보여준 어쩌지 못하는 행동, 즉 측은의 마음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불복종’이었다. 의원들이 담을 넘어서라도 국회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굳이 끝까지 말리지 않았던 사례들, 본회의장으로 향하며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시간적 여유를 벌어준(?) 지체와 소극적 침투의 모습들,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 속에서 봐왔던 공포스럽고 강력한 계엄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비록 화면으로나마 가슴 졸이며 지켜봤던 나도 일말의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충돌이 없는 미수로 그친 계엄령을 만들고 말았다.
시민 불복종은 이름이 갖는 숭고함과 의로움의 이면에 공포와 두려움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내 양심에 따라 위법을 감행하는 것이기에 처벌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그 처벌은 때론 개인에게 너무도 가혹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그걸 증명해 왔다. 그런 어려운 일을 어젯밤에 누군가는 해냈다. 그 결과가 어떨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파국을 막기 위해 계속 멈칫하고 주저하고 괴로워했다면 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 영혼에게 기꺼이 한 인간으로서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가장 강한 권력의 명령을 어딘가에서 온전히 수행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을 기리며 응원하고 싶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어떠한 억압에도 소멸하지 않는 양심의 숭고한 저항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니 그랬다고 기대하면서 직업윤리와 시민 불복종의 이상을 떠올리는 새벽이었다. 그들이 만들어 준 소중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분명히 어제와는 다른 새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