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인도예술유목 8
유종의 미를 깬 공항 직원의 해코지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9.24 06:01
의견
2
행사를 주관한 사람, 참가한 작가, 관람객 등 모두가 만족스러워하는 가운데 인도 노마드는 12월 20일 오전 11시 ITM대학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도큐메테이션을 끝으로 34일간의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튿날 바로다의 유명호텔에서 그 호텔의 경영자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아 정통 인도 음식을 원 없이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저녁엔 대학의 숙소에서 내가 솜씨를 발휘한 수제비와 함께 인도의 술로 반주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침에도 남은 양념과 채소가 있어서 또 수제비를 떠먹었다. 집에서 같으면 “뭐 이런 싸구려 음식이야!”라고 볼멘소리했겠지만 모두 맛있게 먹었다. 공항까지 가는 차를 기다리는 중 ITM대학의 젊은 이사장이 찾아와 스텝들과 잔류한 작가들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며 행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척 흐뭇해하는 그의 표정으로 보아 노마드의 종결을 자신의 대학에서 하도록 결정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듯 보였다. 이처럼 인도 노마드의 여정 중 중요하게 머물렀던 거점마다 초청한 사람들과 그 주변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것이다. 일련의 상황들로 유추하면 인도 노마드는 종결되었지만, 후속적인 프로젝트들이 이어질 것을 기대하게 했다.
잠시 학내를 서성거린 후 12시경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하고 노마드의 주최측에서 준비한 차량으로 아메다바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허름해 보였던 공항 청사가 오늘은 으리으리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노마드의 효과일 것이다. 탑승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공항 직원이 난데없이 옆줄로 바꿔서라고 했다. 그러나 옆줄 사람들이 끼워줄 리 만무한 일 아닌가? 그러자 이번엔 뒤로 가서 서라고 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얼마나 기다렸는데 뒤로 가라고 하냐?”라고 냅다 한마디 했더니 자기 잘못을 인정한 듯 별말 없이 한 줄 건너 새 줄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났다. 탑승권을 발매하는 항공사 직원이 중량 초과한 가방을 문제 삼았다. 규정에 따라 킬로그램당 1600루피의 추가료를 내라 했으나 어떤 가방은 18kg 초과다. 그러나 다른 가방은 중량 미달도 있으니 봐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가방을 다시 열어 짐을 빼내고 보안검색을 다시 받는 등 여간 분주하고 짜증이 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규정대로 무게를 맞추었고 탑승권을 받았다. 이젠 되었구나 하고 안도하려는 순간 여직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귀청을 흔들었다. “자 이제 기내로 들고 갈 가방을 한꺼번에 저울에 올려놓으세요.” “저기 저건 또 뭐요? 그것도 올려놓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젠 제법 명령조였다. 다시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한 달 동안 노마드를 하다 보니 값나가지 않는 허접한 짐들이 늘었고 더러는 선물로 준비한 것도 있고, 작업에 필요한 돌멩이 등 중량이 초과할 것이 뻔했다. 더 이상 수세로 몰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과 손가방까지 무게를 재는 일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서 뭔가 무시당하는 느낌도 들어 “이게 무슨 경우냐?”고 따졌더니, 옆에 있는 사람이 “규정에 손가방은 8kg로 정해져 있다.”라고 했다. 순간 그 작자의 얼굴을 보니 좀 전에 줄을 바꾸라고 부당한 지시를 했다가 나에게 거절을 당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 “아! 이것이 뒤끝이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규정을 들이대니 억지를 부릴 수도 없고, 우리에게 하자가 있어 힘을 쓸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자가 뒤에서 다 지시하고 있었다. 결국 돌과 허접한 것들 몇 개를 버리고 카메라는 목에 거는 등 감량을 위한 최대한 조치를 했다. 최종 39.7킬로그램이 되자 여직원이 그자를 힐끗 쳐다보며 눈짓으로 “이 정도면.” 하자 그 남자가 통과시키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직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음성적으로 해코지하는 것을 ‘뒷말’이라고 한다. 대체로 이러한 행동은 정당치 못한 경우가 많다. 아메다바드 국제공항의 그자도 나한테 채이고 한발 물러선 대신 다른 방법으로 앙갚음을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졸렬한 짓인가! 우리 일행은 한 달이 넘게 인도의 자연과 문화와 삶을 돌아보며 인도에 한껏 심취한 상태로 귀국하는 길이었다. 따라서 모두 인도에 대한 온갖 아름다운 추억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한 사람의 ‘뒷다마’로 모든 긍정적 이미지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앗뿔사!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