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통이 불편해 접근이 어려운 산간이나 도서벽지를 일컬어 ‘오지’라고 한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오늘날, 이 개념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근래에 오지라고 느껴질 만큼 정말 무엇인가 불편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IT 강국 인도에 와서 뜻밖의 강적을 만났다. 그것은 인도예술유목을 위해 3주 동안 꽤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진정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불편의 요인은 교통이 아니라 바로 인터넷이었다. 대부분 여행한 지역이 인도의 서북부 변방의 비교적 인구밀도가 낮고 수요가 적은 지역이라 그랬겠지만, 인터넷망이 전혀 구축되지 않아 오프라인을 통해 우리의 유목을 널리 알리려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 매일 같이 쾌청한 광명천지를 다녀왔지만, 인터넷만큼은 암흑의 터널을 지나온 것 같았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리 깊은 산중에 은거한다고 하더라도 지구촌 어느 곳과도 교신이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필자는 인도예술유목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의 생활 속에 이미 익숙해진 것 중 어느 것이든 예고 없이 없을 때 얼마나 불편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나름 기계치이고 컴퓨터에 익숙지 못함을 개인적 결함으로 알고 지내온 터지만 장기간 인터넷 불통 때문에 심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나 스스로 그 문화에 깊이 젖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IMT 유니버스는 건축, 기술, 예술로 특성화된 대학이다. 그런데도 인터넷망이 원활하지 않고 모바일 인터넷 접속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앞으로 또 어떤 문명의 이기가 우리를 편리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 ‘오지’는 교통이 불편한 곳이 아니라 인터넷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곳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어느 식당의 추억과 인도 사람들
인도는 중국과 함께 인구 대국이다. 사람들 말로는 정확한 인구의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림잡아도 14억 명은 될 것이다. 국토 면적으로도 세계 5위 이내에 들 것이다. 필자는 30년 전 처음 인도여행을 시작으로 이번이 다섯 번째며 특별히 구자라트에 국한되긴 했지만, 전과 다른 변화를 느낀 것은 새로 건설된 도로망과 산업시설, 그리고 깨끗해진 거리를 꼽고 싶다. 물론 모든 도시의 거리들이 다 청결해진 것은 아니지만 방문했던 여러 마을과 도시가 전보다 월등히 청결함을 느꼈다.
오래된 경험 하나 소개하면, 그러니까 30여 년 전 소설을 쓰는 지인의 권유로 한 달 동안 인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캘커타의 ‘둠둠’ 공항으로 처음 입국할 때 사람보다 소가 먼저 환영을 해준 일, 거리의 매캐한 먼지, 질척거리는 골목길, 길을 가득 메운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과 도구와 차량,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구걸과 호객행위 등등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시장 안에 있는 어느 식당의 추억이다. 배가 고파 찾아간 허름한 밥집이었다. 우리네 시장의 국밥집처럼 저렴하고 실속 있는 음식을 기대하고 찾아갔는데 주인의 행색이 음식점 주인답지 않게 너무나 꼬지지해 멈칫거렸지만 반갑게 맞아준 성의 때문에 그냥 식탁에 앉았다. 하지만 그것이 최악의 선택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고 두고두고 후회했다.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었지만, 겨우겨우 밥과 카레를 주문했다. 눈만 빼곤 유난히 검은빛의 남자 주인이 벽에 드리워진 천을 왼쪽으로 젖히자, 한 떼거리 파리가 우르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밥을 유난히 검은 남자의 손으로 접시에 담아주었다.
부부는 식사하는 내내 맞은편에서 나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내가 비상용으로 준비한 짜먹는 고추장이 마냥 신기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밥 먹는데 턱 쳐들고 구경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깔끔치도 않은 사람들이... 나는 그날의 충격으로 오랫동안 인도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었다.
선과 악처럼 상반된 개념이 공존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어느 집단이나 사회, 국가도 장단점, 긍정과 부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한다. 필자에게 있어서 인도의 긍정적인 면은 첫째 물가가 싸다는 점이다. 둘째는 다양한 자연과 문화, 셋째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개념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도시의 일부 지역과 계층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도 사람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았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오랜 전통적 가치관과 생활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원초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길에서 마주치면 말을 걸어 온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이다. 드물게는 “당신은 어느 동네에서 왔나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어디서 왔나요?”라고 묻고서 정작 “한국서 왔다.”라고 대답하면 한국이 어딘지 모르는 경우가 반쯤 된다. 그리고 드물게는 “어디서 왔나요?” 뒤에 “일본?”이라고 되묻는 경우 적어도 일본은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북쪽, 남쪽?”이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한국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그러면 “북쪽에서 온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하며 겸연쩍게 웃는다. 나는 그런 인도 사람들에게서 풋풋한 사람 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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