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58. 행복의 문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8.09 07:58 의견 1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일전에 적었던 일의 종류를 무심코 꺼내 보았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일의 종류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인정받는 일, 뿌듯한 일, 힘이 솟는 일, 오래할 수 있는 일, 어려운 일, 성취감이 큰 일, 재미있는 일, 보람 있는 일, 돈을 많이 받는 일, 도움이 큰 일, 안정적인 일, 반복하는 일, 늘 새로운 일, 창의적인 일, 활동적인 일, 차분한 일, 함께하는 일, 혼자 하는 일, 국내에서의 일, 세계 속의 일 ……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저 위에 어떤 일에 해당하는지 동그라미를 쳐보면 일정한 공통분모가 그려질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파악할 때 시도해보고 싶은 활동이다. 그러나 솔직히 하나 더 첨가하고 싶은 일이 있다. 교육적으론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이라 감춘 측면이 있는, 바로 ‘억지로 하는 일’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 저 위의 일들보다는 억지로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불만이 크면 창업이라는 신세계로 들어서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청년들에게는 창업이 새로운 돌파구로 권장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건 일단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무언가 경험을 쌓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게 안정적인 전략이라고 본다. 그리고 창업의 시도는 직장 생활을 하는 것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위험 요소가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유명한 웹툰 ‘미생’의 대사가 있지 않은가. “회사가 전쟁터라고? /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 밖은 지옥이다.”

오래 전 아침에 등교하면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빵집을 보았다. 동네 빵집이어서 조금 늦게 여나 싶었는데 버스 정류장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나 같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침에 토스트나 간단한 빵과 커피를 만들어 밖에 나와 매대에 올려 놓고, 향기를 퍼뜨리면 그래도 얼마는 팔지 않겠나 싶었다. 내 가게를 열게 되면 혼신의 힘을 다해 장사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만 몇 만원이라도 벌면, 그래서 매출이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 댁의 사정을 모르고 전적으로 혼자서 벌인 상상이다. 자영업이건 무엇이건 간에 내 일을 온전히 하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자기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사장(대표)님들은 과연 몇 명일까? 다소 거친 추측을 해본다. 일단 고용원이 있건, 고용원이 없건 흔히 자영업자라고 불리는 비임금 근로자는 2024년 6월 현재 664만 명이다. 이는 총근로자 2,890만 명 중 23%에 해당한다(2024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거기에 임금 근로자에 해당하는 법인 사장님들을 더해보면, 2022년 현재 우리나라의 회사법인 수 93만개(2022년 통계청 전국사업체 조사결과)를 더해 약 757만 명 정도가 사장님 소릴 듣는다고 볼 수 있다. 온전히 자기 책임으로 일하는 분들이 그리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자영업 비율이 높은 나라이다. ‘OECD 회원국별 2022년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 현황’을 보면 비임금 근로자 비중 1위는 콜롬비아로 53.1%에 이르고 브라질(32.1%), 멕시코(31.8%), 그리스(30.3%), 튀르키예(30.2%), 코스타리카(26.5%), 칠레(24.8%) 등 순이었다. 주로 중남미 국가들이 상위권에 있다. 우리나라는 7위(23.5%)를 차지했다. 노르웨이는 4.7%로 최하위고 미국(6.6%), 캐나다(7.2%), 덴마크(8.6%), 독일(8.7%), 호주(9.0%), 일본(9.6%) 등은 비중이 작은 편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3.6배, 일본의 2.4배였다. 문제는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들의 운영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폐업 사업자 추이가 2019년 92만 명에서 2022년 86만 명까지 줄다가 2023년에 98만 6천 명으로 늘어나 거의 100만을 육박하는 상황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8만 2천 명이 ‘사업 부진’을 이유로 폐업을 했는데, 주변에서 공실인 상가가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이 이런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자기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숫자들이다.

자신이 온전히 책임을 지는 일에 보람과 정성이 크겠지만 실패할 경우 겪을 부담감 속에서의 큰 긴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어려움이다.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각자의 영역에서 겪는 각자의 역경들이 있다. 문제는 어디에 있던지 무언가를 스스로 전개해 나가는 주도적 역량이 있느냐이다.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그런 토대 위에 하는 업무는 신이 나게 마련이다.

고3 부장을 처음 맡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생활지도 및 진로 활동 예산으로 교육청에서 400만 원을 제공하겠다는 공문이 왔다면서 해보지 않겠냐고 학생인권부장과 나를 호출하셨다. 돈 200만 원을 어떻게 쓸지, 아니 어떤 고3 진로·진학 프로그램을 할지 자연스럽게 고민해 보았다. 우리는 온전히 스스로의 동기로 일을 할 수 있지만 자기주도성이 그리 쉬운 역량이 아니다. 저때의 경우처럼 외부의 요청이나 지시가 원인이더라도, 자신의 동기가 발현하여 조화를 이루면 그나마 일할 맛이 날 때가 있다. 며칠의 고민 끝에 몇 개 대학을 초청해서 박람회를 열기로 했다. 이른바 ‘미니 대입 박람회’였다. 큰 강당에서 대학별로 부스를 만들고 사람들이 줄 서서 대기하는 박람회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강당에서는 최초 박람회 진행 방식을 설명하고 대학별로 교실을 배정해서 입학사정관이 자리잡고 상담을 할 수 있게끔 방식을 바꿔 보았다. 교실에는 대기하면서 앉을 의자 10개를 배치하고 이게 넘으면 교실 밖에 서 있게 하였다. 긴 복도를 보면서 줄이 없는 교실에 우선 들어가셔서 상담을 받게 했다. 서서 기다리는 수고로움이 줄었고 여유 있고 쾌적하게 박람회를 진행할 수 있었다. 교육청발 공문으로 고양시 전체 학부모들에게 공문을 뿌렸고, 그것을 근거로 수도권 대학들에 공문을 뿌렸다. 예상 외로 15개 주요 대학들이 참여해 주었다. 시작은 ‘미니’였는데 꽤 규모가 큰 행사가 되어 버렸다. 교육청 담당 과장과 장학사님이 참관해서 격려해주었다. 담임 선생님들과 함께 한 달 정도 준비해서 실시한 행사였고 실제 교육청 예산은 참여한 사람들에게 줄 기념품과 다과 정도로 썼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로부터 도움이 컸다고 칭찬을 받았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 겪을 뿌듯한 느낌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추억한다.

그런데 선생님들 가운데에는 무언가 스스로 일거리를 만드는 분들이 꽤 있다. 나의 절친한 동료 교사의 예를 들자면 학년부장을 하면서 동학년 선생님들의 다양한 레포츠 활동을 주선하여 선후배 교사간의 우애와 협력을 증진하는 경우가 있고, 아무 보상이 없는 친목회장을 맡으면서 하계 교직원 연수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기획하여 배움과 즐거움이 함께 하는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지만 좀 더 좋은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창의적인 활동을 했고,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더 좋은 학교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지시와 강요가 아니라 무언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른바 ‘판’을 깔아줄 때 그 창발성은 빛난다. 각종 동아리에서 그런 활동이 두드러진 경우가 있고 최근에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회 활동에서 그런 점이 돋보일 때가 있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방학을 기다리며 무료한 기간에 끼와 재주가 많은 친구들이 간단히 공연을 하는 ‘게릴라 콘서트’를 학생회 스스로 기획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담당 선생님의 노고로 거의 모든 행사를 준비하겠거니 했는데, 물론 선생님의 도움이 컸지만 아이들은 정말 스스로 할 일들을 떠올리고 이를 칠판에 적어가며 역할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조율하는 멋진 활동들을 실시했다. 그때 그들이 칠판에 적어가며 그린 기획안을 촬영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 개학하면 꼭 해야겠다 다짐한다.

일하는 맛이 나고 즐거우려면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교장·교감 선생님 같은 관리자가 아니기에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정해진 틀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업무의 영역을 조금이나마 열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도 해야 할 일을 주되 스스로 열어갈 수 있는 여지를 일정 정도 남겨두어야겠다. 기회를 주는 것이 자발성을 뺐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돈이나 가산점 등의 흔한 보상이 없어도 과연 그게 가능할까? 최고의 보상은 일에 관한 만족과 뿌듯함이기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지난 기억과 추억들로부터 확신한다. 행복에는 그거 이상이 없다고, 세상을 떠난 김광석도 노래했다. “열심히 살고 / 보람도 얻고 / 진정한 행복을 모두 찾았으면 …… ” (「행복의 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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