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진사라고 불린 소년은 열여섯 나이로 급제한 황사영이었다. 붉은 뺨에 엷은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웃음기는 몸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기쁨과 자랑인 듯싶었다. 공손하면서도 두려움 없는 얼굴이었다. 한 번도 억눌리거나 비틀린 적이 없는, 타고난 모습 그대로였다. 눈이 맑고, 입술이 단정했다. …… 내 백성 중에 저런 아이가 있었구나. 아, 평생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권세를 다투던 자들과는 어찌 저리 다른가. 어찌 저리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저 아이는 자라도 저럴 것인가?’(김훈 「흑산」 중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 중에서 유독 눈이 깊고 맑은 남자아이를 만났다. 한 학급의 반장을 하고 있었고 친구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성심껏 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선생님들께 무언가 전할 일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는 으레 그 깊고 맑은 눈가에 웃음을 지으며 세상 천진한 미소로 말한다. 올해 내가 맡은 동아리 부원이기도 하고 나에게 또한 그 모습은 변치 않았다. 그 아이는 영재고에 진학하길 원하고 있고 거기에 걸맞은 총명함이 수시로 돋보였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풋풋함을 약간 ‘시골스러운’ 면이라고 귀여워했다. 학교에는 개구쟁이들이 많지만, 기특한 아이들도 여전히 많다. 저 소설의 임금처럼 나도 어린 영혼의 힘에 때때로 매료되곤 한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굳이 관심이 안 가는 대회의 소식에 나라 안팎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간혹 국가주의의 현혹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감추거나 망각하게 할 수 있겠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국위 선양이니, 땀과 눈물의 결실이니,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니 하는 클리셰이들을 회피하리라 마음먹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관심을 끊기도 쉬웠다. 그러나 보기 싫어도 뜨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문제였다.
대회 초반 우리나라가 펜싱, 양궁, 사격 등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삶이 곧 전쟁인 나라답다는 우스운 생각을 하던 중에 한 어린 소녀의 금메달 소식에 이번 올림픽을 대하는 내 마음에 반전이 일어났다. 바로 올해 나이 16세의 고등학교 2학년으로 우리나라 하계 올림픽 최연소이자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인 반효진 선수의 소식을 듣고서이다. 양궁이나 사격 종목의 선수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모습에서도 그렇지만, 어린 나이답지 않은 조숙한 인터뷰와 미소가 나에겐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원래 태권도를 했었는데 친구의 권유로 사격으로 전환해 3년 만에 이룬 성과다. 타고남이 노력과 만나면 그 속의 시간은 다른 차원으로 흐르나 보다. 그리고 그 어린 메달리스트의 모습에서 저출산과 고령화의 늪에서 암울하기만 한 우리나라의 미래를 대비할 희망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못살던 시절에 겪었던 멀고 먼 이역만리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와 태극기의 가슴 저미도록 아련한 모습이, 그 진부한 감동이, 다시 한번 나를 바로 앉게 만들었다. 비로소 나는 이번 올림픽에도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진지해졌다.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선진국을 분류하는 수많은 지표가 이미 그걸 말해주고 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21년, 나라 밖에서 온 소식은 우리끼리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님을 알려주었다. 바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우리나라에 개발도상국 지위를 변경하여 선진국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유엔 총회 산하 정부 간 기구인 이 회의는 아시아‧아프리카 등 주로 개도국이 포함된 그룹 A(99개국)와 선진국 그룹 B(31개국), 중남미 국가가 포함된 그룹 C(33개국), 그리고 러시아 및 동구권 그룹 D(24개국) 등 195개의 회원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1964년 3월 가입한 이후 지금까지 A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이번에 B 그룹으로 지위가 바뀐 것이고 이는 그동안 여러 나라들이 시도했지만,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다. 이 변경이 단순히 국가가 잘 살고 경제 규모만 크다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모두 동의를 해야 가능한 것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가 최초로 가능했던 이유는 가슴 뭉클한 배경이 있었다. 바로 2차 대전 이후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뀐 전무후무한 국가라는 이유에서이다. 이런 배경에서 마치 형편이 어려운 동네 사람들이 살림이 나아져 좋은 동네로 이사를 떠나는 가족에게 모두가 축복해 주는 모습을 떠올리는 건 너무나 감상적인 연상일까? 한국이 개도국과 선진국을 모두 경험한 나라이니만큼 국제무대에서 이들 나라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 아울러 미래 국제 환경에 새로운 리더십을 제공하리라는 바람을 회원국들이 공유하였기 때문에 이런 결정이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달라진 우리의 위상을 실제적으로 확인케 하는 사건이다. 현대사에서 가난과 궁핍의 극복을 증명하는 희망의 사례로 국가적 단위로는 거의 유일한 나라, 그게 대한민국인 것이다.
지난한 노력으로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끝내 뜻한 바를 이루는 대기만성의 성공 사례는 숭고하다. 아이들에게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볼 수 있는 끈기를 강조한다. 삶을 사는 데 소중한 가치들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어서이다.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건 나 스스로에게도 하는 당부이다. 그러나 오늘은 한 가지 더할 희망이 있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요?’라는 불안에 대한 답이다. 모든 성취에 반드시 유구한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닐지 모른다. 우리나라가 이룬 역사적인 성취는 1973년 최고 14.9%의 경제 성장률, 그리고 1983년 경제성장률이 물가상승률을 추월하며 연 13.4%에 이르는 등 30여 년간 평균 10% 대의 경제 성장률 속에서 이룬 성과이다. 저 수치들을 보며 그저 눈부시다고밖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성공을 흔히 2차 대전 후 서독 경제의 부흥을 뜻하는 ‘라인강의 기적’에 빗대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이마저도 참 오래된 표현이다. 그러나 나는 ‘한강의 기적’과 라인강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항변한다. 2차 대전을 일으킨 공업 강국 독일이 패전하고 연합군의 점령으로 분할되었다고 해서 당시 국가가 보유한 기술과 지식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그 유명한 마셜플랜으로 미국의 엄청난 원조가 있었고 전후 복구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차 대전에 이미 항공모함을 만들었던 나라다. 태평양에서 공산 진영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에 투자한 미국의 역할과 한국전쟁 등으로 역시 전후 복구가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원자탄을 맞은 지 불과 19년 만에 세계올림픽(1964년 도쿄)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달랐다. 본격적인 경제 개발을 시작한 1960년대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기술이 무엇이었나! 그저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던 국가 경제였다. 아무런 기술이 없어 가발이나 수출했던 나라, 그런 나라가 일본의 올림픽 이후 딱 24년 만에 하계올림픽을 개최한다(1988년 서울).
지금 시작하는 게 늦지 않으냐고? 늦어도 좋다. 의지와 노력, 그리고 전략이 남다르다면, 뜻을 품고 떠나는 길에 늦은 건 없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의 성취에서 볼 수 있듯, 국가 단위에서도 저런 엄청난 일을 이룬 사례가 있으니 한 개인에게도 능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늦은 나이, 늦은 학년과 상관없다. 그 반대로 시작점이 너무 일러도 문제없다. 성공은 마땅히 그럴 만한 경우라면 시간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향상의 과정일 뿐이다.
그동안 이룬 성취들에 무색하게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는 나라라는 오명은 오늘의 우리에게 지난 시간 동안 이룬 것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망각하게 한다. 그러나 올림픽으로 보며 그 힘의 원천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하나의 실마리를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시대와 나라의 희망은 언제나 젊고 어린 기운에서 커 나간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역사의 가르침이고 시간의 순리이다. 지금 우리에겐 출산율을 높여 앞선 세대의 부양과 국가 경제의 토대를 유지하자는 도구적인 발상을 넘어 젊고 어린 영혼들이 주는 희망의 기운 그 자체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하여 미래를 위해 우리가 소중히 품어야 할 씨과일로써 젊은 세대를 대해야 한다고 본다.
마치 천주학의 가르침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어린 황사영의 모습처럼, 고등학교 2학년에 세계를 제패하고도 덤덤하게 승리를 만끽하는 어린 사수의 모습에서 그리고 천진한 미소를 띠며 성실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중학교 1학년 제자의 모습에서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읽는다. 비록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혼탁해진 세상을 떠 넘기 듯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는 못난 어른의 미안한 마음이 쉽게 잦아들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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