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54. 요리하는 인간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7.12 08:56 | 최종 수정 2024.07.12 11:57 의견 0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삼시세끼’라는 예능 프로가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초창기 회차에서 간신히 한 끼를 준비한 출연자가 밥을 먹고 난 후 투덜대며 “젠장, 먹자마자 다음 끼니 해야 하네!”라고 한 말에 웃음이 났다. 문명의 편리가 집중된 도시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조금만 원시의 환경에 다가가면 우리에게 먹는 걸 만드는 행위가 얼마나 지난한 것이고 중대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친구들과 모처럼 떠난 캠핑이나 펜션 등지에서 손수 지어 먹는 밥이 집에서와 달리 시간이 걸리고 정성이 더 들어가야 하는 걸 경험할 때도 비슷한 경우다. 현대에도 이런데 하물며 초창기 인류에게는 어땠을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가까운 조선 시대만 해도 어땠을까? 먹기 위한 행위는 한 인간이나 가족 집단이 온 정성을 들여서 행해야 할 중차대한 일임과 동시에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준비 과정이었으리라.

요리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호모 코쿠엔스’라는 말이 있다. 수만 년 동안 인류는 자연에서 얻은 먹거리를 어떻게 조합하고 가공하며 제조해야(요리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연구해 왔다. 거기엔 대충이 없다. 김치 송송 썰어서 만든, 일명 비빔 국수를 보자. 일단 김치 자체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걸 다 익히고 난 후에도 먹지 못해서(요즘엔 일부러라도 묵히기까지 해서) 새로운 시도로 먹겠다며 잘게 썰어 기본양념과 버무린다. 김치에 양념이 있는데 애써 또 양념을 하고 말이다. 소면은 어떤가? 한 가닥의 밀가루 면을 만들기 위해 인류는 또 얼마나 오랜 노력을 해왔는지 모른다. 일전에 국수 한 가지 주제로만 인류 문명사를 다룬 ‘누들 로드’라는 다큐멘터리가 가능할 정도이니 그 노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그렇게 비빈 국수에 또한 참기름 한 방울을 넣지 않으면 그 맛을 완성했다 할 수 없는데 처음으로 참기름을 얻기 위해 고생했을 인간의 노력 역시 지금 생각하면 위대하다. 참깨를 굳이 볶아서 식힌 후 압착하여 만든 이 기름을 처음에 만든 우리 조상은 누구였을까? 그 기름이 다른 재료와 섞여서 독특한 풍미를 내는 건 또 어떻게 발견했을까? 그런 맛의 종착지는 정해지지 않아서 인류가 추구하는 새로운 조리법과 미식의 역사는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호모 코쿠엔스는 과정을 총괄하는 사고력을 지닌 존재에 대한 경탄이다. 간단한 요리를 할 때도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순서를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마치 현명한 농부가 연 단위의 작업을 기억하고 그 순서와 과정 속에서 하루의 할 일을 진행하는 것처럼 요리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업의 진행을 꿰뚫어야 가능한 활동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향후 진행될 일들을 그려보고 거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존중받을 것이다. 부러운 역량이다. 아이와 함께 요리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런 능력을 함양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 믿기에 추천한다.

먹기 위해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겐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끼니 때이다. 몇 년 전부터 과잉 영양을 걱정한 나머지 아침은 거르고 하루에 두 끼만 먹는데 집에서 먹는 저녁도 소중하지만 더욱 다양한 반찬으로 구성된 점심 급식 시간은 행복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실력 있는 영양 선생님을 보유한 학교의 구성원이라면 그 행복은 배가된다. 지금 우리 학교가 그렇다. 난 입버릇처럼 점심 식사 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이제 끝나갑니다.”라고 말한다. 조리 실무사님과 영양 선생님께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하는 분들을 보며 나의 일도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이들 역시 학교에 관한 가장 큰 관심사는 급식이다. 오죽하면 급식 먹으러 학교 온다는 말이 있을까! 학교 급식이 맛있으면 학부모회나 학생회에서의 불만도 상당히 감소한다. 잘 먹으니 생기는 여유라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는 초중고 모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시작해 고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이 경기도는 2019년, 서울은 2021년 실시된 후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실로 무상급식 논쟁이 이루어진 지 10여 년이 지나 이루어진 결과다. 시행 초기에 무상급식을 우려하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굳이 무상급식을 안 해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지원금이 부모의 계좌로 이체되기에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르게 되고 그래서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급식에 따른 계층 간 위화감은 애당초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급식 업체들의 경쟁이 약해지므로 좋은 급식의 질이 유지되기 힘들다고 보았고, 또한 학생들이 공짜 밥에 대한 경시로 밥을 안 먹거나 잔반이 늘어날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

반대하는 주장의 기저에는 과연 우리가 모든 아이들에게 공짜로 밥을 먹이는 일이 가능할까라는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이 컸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현재 무상급식은 안정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지금의 상황만 보면 이게 그렇게 큰 논쟁이 있었던 정책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상에 안착한 모습이다. 잔반의 경우도 그렇다. 영양 선생님께 확인해 보니 그것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무상급식 이전에도 아이들의 잔반은 늘어나는 추세였다고 한다. 업체 선정이나 계약 등의 행정 업무에 소요되는 노고가 해소되어 온전히 음식 만들기에 힘을 쏟을 수 있기에 급식의 질이 좋아질 수 있고, 오히려 친환경 식자재를 보다 좋은 공급처에서 원활히 받을 수 있기에 그 전보다 편하다는 말을 전한다.

급식으로 인한 계층 간 위화감은 그것을 감추려는 장치와 노력으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감정이다. 더 어려운 건 가난을 선별하는 과정이다. 복지비 지원 선정 위원회에 참가하여 정해진 예산에서 수급 기준을 정하고 한 명이라도 우리 반, 우리 학년에서 더 받으려고 애써본 경험이 있는 교사라면 그 일이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때론 부모가 지원받는 걸 아이가 알아도 좋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여유가 허락한다면 그런 지원은 가급적 여러 변수의 영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 낫다고 본다. 기껏 지원은 하면서 부작용까지 감안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국가의 재정 상태와 복지 여력을 고민했다면 천만다행이다. 현재의 무상급식은 우리가 어느 정도 여력이 있는 나라인지를 확인시켜 줄 만큼 안정적인 상태이고 아울러 학교라는 공동체가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하기에 소중한 제도라고 확신한다. 한국 사람에게 함께 먹는 밥처럼 정감이 넘치는 활동이 또 없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밥 한번’ 대접하고자 하는 우리의 정서가 좋은 영향을 주어 무상급식이 건강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4교시가 있는 날이면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기대하며 묻는다.

“오늘 우리 급식 메뉴는 뭘까요? 아는 사람은 말해 보아요~”

출처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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