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안개와 구름의 나라 스코틀랜드 2

로크메리(Loch Maree)의 자연동행캠프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6.18 06:00 | 최종 수정 2024.06.18 08:24 의견 3

로크메리 캠프 : 현장 작업에서 사진기는 빠질 수 없는 동료다. 혼자 작업을 수행하다 보면 많은 이야깃거리가 발생하게 된다. 삼각대는 안정된 슈팅을 돕는 친구다.


오늘은 이곳에 온 지 닷새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초청자의 안내로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눈에 익혔으며, 몇몇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침에 일기가 좋아 미리 주문한 작품 재료 등을 챙겨 방문 기념으로 구상한 작품 제작의 기초작업에 꼬박 하루를 보냈다. 작업의 규모로 보아 2~3일 더하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저녁 식사 후엔 마을에 있는 갤러리에 마침 이곳 출신 작가가 고향을 방문하여 개인전을 한다기에 그 오프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일과를 마치듯 작업을 마치고 실내로 들어오니 한 잔 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린이 권하는 백포도주를 마시며 한국에서 배워둔 ‘건배’ 대용 구호 “너무너무 좋다.”를 같이 합창해 본다. 여러 국적의 작가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주 문화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의 얼을 살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짧게 줄여 “너무너무 좋다!”를 공식적으로 쓰기로 했었다.

하이랜드에 도착한 후 일주일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린의 정원에 설치작품도 완성했고, 베네방문센테(Beinn Eighe Visitor Center/정부 기관, 하이랜드의 자연과 환경 파수꾼)에도 들러 자연미술 워크숍에 관한 협의도 하고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등 나름의 일정을 소화했다. 아울러 인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호수인 로크매리에서는 3일간 현장 작업을 진행하였다.

호수는 스코틀랜드 비운의 여왕 때문인지 슬픔을 간직한 검푸른 물빛이었다. 가끔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물고기의 파동과 계곡을 따라 산허리까지 단숨에 오르는 찬바람에 떠는 듯 잘게 출렁이는 물결에 방문자들의 발등이 간지러울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고 가는 여행자도 각자의 목표와 방향대로 움직일 뿐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현장 작업에 몰입하여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캠프 2일 차 맑은 하늘과 함께 물빛은 더욱 푸르고 많은 작업들이 햇살처럼 쏟아졌다. 대부분 작업은 호숫가의 돌과 나무 풀잎 등을 이용한 작업이었다. 린은 모래를 모아 타원형 함지박 같은 웅덩이를 만들고 그 안에 태아처럼 웅크리고 눕는 퍼포먼스를 했다. 모든 사람이 갈망하듯 ‘대지를 어머니로 인식하고 그 품에 안기는 작업’은 한낮의 호숫가에서 숭고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관객은 나뿐이었다.

린의 퍼포먼스 : 현장의 작업은 상상력과 순발력이 잘 작동할 때 좋은 작업이 이루어진다. 린은 모래르 모아 타원형 함지박을 만들고 그 안에 태아처럼 눕는 퍼포먼스를 했다.

자연 현장의 작업은 항상 새롭고 신선한 작품을 몰아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한 아름 작품이 쏟아지는 때도 있다. 로크메리에서 나의 작업은 그 중간쯤이라고 할까? 몇 점의 흥미로운 작업을 했고 그 중 인생의 작업이라고 할 만한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작품의 제목은 “호수 안의 링(A Ring in the Loch)”이라고 붙였다. 이 작품은 호숫가에 한 무더기 돌을 발견하고 그 돌을 활용하여 바로 그 자리에 버스나 전철의 손잡이를 연상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다. 최근 고조된 자연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호수의 물은 슬프도록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현대문명의 고통스러운 틀 안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저 손잡이를 잡고 호수에 의탁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햇살이 뜨거운 한낮의 호수는 더 많은 방문객이 모여들었다. 몇몇 젊음은 차가운 호수의 수면을 가르며 행복에 겨운 듯 수면 아래로 파고들다 갑자기 솟구치며 물고기처럼 놀았다. 해그늘에 찾아온 린의 부모님들은 특별한 손님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환대하며 3일간 현장 캠프를 마무리했다.

호수 안의 링 : 로크메리 캠프에서 인생의 작업을 얻었다. 그것이 바로 호수 안의 링이다. 보는 바와 같이 작업은 매우 단순한 구조다. 그러나 그 안에 오늘날 지구환경의 문제를 담은 현장의 역사성, 아름다움과 극 대비를 이루고 주어진 환경에 거부감 없이 최대한 밀착된 경관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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