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50. 내 친구 운찬이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6.14 08:00 의견 0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어떤 학생에게 서울대학교 합격증을 줘야 사람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을까? 첫 번째 기준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듯이 공부 잘하는 학생일 것이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을 합격시키면 가장 무난하다는 공감대는 대학의 설립 목적과 부합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에 가는 이유는 취업, 사회적 평판,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 함양 등 현실적인 부분이 크지만 본래 대학은 학문 탐구를 위해 만든 기구이다. 따라서 공부 잘하는 학생 가운데 서울대 입학 자격을 부여하는 건 큰 무리가 없는 기준이다.

하지만 공부만 잘하는 학생에게 합격증을 준다면 오늘날 전폭적인 지지를 받긴 힘들다. 예컨대 성적은 좋은데 친구들을 많이 괴롭혀 학폭 기록이 난무하는 학생의 경우라면 타당치 않을 일이다.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인성적 측면을 기준에 넣자는 의견 역시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성적 측면을 평가할 것인가? 봉사활동이나 학교 내 활동, 그리고 교사들과 동료들의 평가로 정성적인 측정이 가능할 수 있겠다. 그걸 고도화한 게 오늘날 학생부 종합전형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학생부 종합전형(또는 학종)을 싫어한다. 2018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중에 관한 의견에서 ‘감축’ 응답이 36.2%로 가장 높았고, ‘완전 폐지’는 14.6%로 나와서 둘을 합하면 절반이 넘는 50.8%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학부모 대상으로 제한하면 두 응답의 합이 55.7%로 앞선 결과보다 4.9%가 올라간다. 학종이 성인 중 특히 학부모들에게 불만이 큰 전형임을 알 수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50주년을 맞아 진행한 교육정책 포럼에서 ‘교육에 대한 국민 인식과 미래 교육정책의 방향’ 여론 조사에는 입시전형에서 가장 많이 반영되어야 할 항목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또는 수능)이 2011년 25.5%에서 10년 뒤인 2021년 30.9%로 상승해서 압도적 1위가 되었다. 반면 10년 전에 1위였던 고교 내신은 35%에서 13.9%로 떨어져 가장 큰 하락을 보였다. 설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우리 국민이 수능을 가장 공정한 전형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서울대 입학 자격으로 공부만을 주장해도 많은 사람이 수긍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의외로 주목할 점이 있다. 입시전형에서 ‘인성 및 봉사활동’이 10년 전 12.4%에서 26.6%로 상승하여 수능 다음으로 많이 반영되어야 할 항목에 선정된 것이다. 사람들이 공정함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정량적 평가에 동의하지만, 그 동의를 얼마나 충분치 않은 것으로 느끼는지 알게 해주는 지점이다. 수능을 만족하진 않지만, 모두가 수긍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한탄이 그래서 자주 들린다.

반면 아이들은 다양한 대입 전형을 알려주고 어떤 걸 선호하는지 물어보면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학생부 종합전형에 다수가 손을 든다. 이유로는 기회를 여러 번 나눠서 얻고 싶다는 안정의 욕구를 든다. 학력고사 또는 수능 중심의 입시전형만 치른 부모 세대와는 다른 견해다. 이는 우리 학교만의 경우지만 3년간 수업 중에 물어보면 공통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부모님들이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건 이미 우리 아이들이 협업 중심, 활동 중심, 학습자 중심의 수업과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체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공부만 하면 되지 뭘 그리 다른 활동(비교과)을 많이 해서 아이들을 힘들게 하냐고 불만이시지만,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에 이내 잘 적응하고 견디고 있다. 물론 아직 중학생의 입장에서만 파악한 점이라 보편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이전 글에서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만들면 그 규칙에 대한 경의(敬意)로 구성원들의 만족을 끌어낼 수 있겠다고 말했다. 교육 분야에서 그 사례를 소개한다. 바로 서울대학교 수시모집 중 ‘지역균형선발 전형’, 그리고 ‘기회균형선발 전형’이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서울대학교는 수시모집에 학생부 교과전형이나 논술전형이 없다. 오직 학생부 종합전형만을 실시한다. 이전 정부에서 정시모집 40% 이상 확대를 강제한 학교들은 모두 학종과 논술이 합하여 모집 인원의 45%가 넘는 학교였다(서울 소재 16개 대학). 이 학교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소위 명문대인데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대입 전형에서 학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입장을 바꿔 그 대학의 총장이라면 나 같아도 학종으로 학생을 뽑길 원할 것이다. 기왕이면 공부와 인성, 공동체 의식과 발전 가능성까지 두루 갖춘 학생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학종에 지역별 편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로 도입된 제도가 바로 ‘지역균형선발 전형’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홍세화 선생이 강연 중 한 얘기다. 어릴 적에 자기보다 더 찢어지게 가난한 친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총장까지 역임하고 훗날 국무총리가 된 정운찬 전 총리였다. 2002년 서울대학교 총장 취임 직후 그는 신입생을 구·군별로 할당하는 지역 할당제로 뽑겠다고 선언했다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교수들의 반발로 결국 2004년 지역균형선발을 실시했다. 그가 지역균형선발을 실시한 최대 목적은 ‘서울대 다양화’였다. 구성원이 다양해야 학교 발전이 가능하다는 견해에서 비롯된 제도라고 주장하면서 ‘동종 교배’로는 세상이 발전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한겨레 신문 2006년 인터뷰 중).

다양성을 강조했지만, 그 소신의 근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였다. “1966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더니 50명 중에 17명이 경기고 출신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같은 경기고 출신에게서보다 다른 학교와 시골 친구들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나에게 ‘운찬아, 아버지 성묘 안가나? 같이 가자!’ 하는 녀석은 시골에서 온 친구였거든요(같은 인터뷰 중).” 본인의 어려웠던 형편을 감안하면, 오늘날 지역 간의 편차가 커지고 있는 서울대 합격률에 그런 계층적 연민이 작용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그 스스로 가난을 경험했기에 그런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고 본다.

학력이 심하게 미달 되는 학생이 ‘지역균형선발’로 입학해서 피해가 크다는 등 이 전형에 반대하는 주장은 다양하지만 실제로 이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의 평균 학점이 조금 더 높다는 분석도 있고 어찌 되었든 전교에서 2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 주로 지망하기 때문에 입학 후 적응과 능력치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대학 측 평가가 있기에 ‘지역균형선발’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거라고, 누가 지방에서 살라고 등 떠밀었냐고 불만이라면 한마디로 반박할 수 있다. 그게 그렇게 부러우면 지방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고. 실제 나의 경험으로도 수도권이지만 농어촌 지역 일반고에서 전교 1등으로 이 전형을 쓴 학생이 수능최저학력기준을 못 맞춰 불합격하는 사례를 익히 보아 왔기에 지방 학생들의 수능 적응력이 얼마나 약한지 잘 알고 있다. 이 전형이 없다면 지방에 있는 학교를 포함해 수도권에서도 일반고에서 서울대를 보내긴 쉽지 않다. 정운찬 전 총장의 바람대로 ‘지역균형선발’은 서울대 입학생을 다양하게 만든 데 일조한 바 크다. 아울러 낙후된 교육 여건 속 고등학교에서도 서울대학교를 보낼 수 있는 희망을 만들어준 공이 있다.

‘지역균형선발’이 지역 격차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라지만 앞서 말한 바처럼 서울대의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고등학교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총 44%였고 도 단위에서는 무려 49.3%인 것으로 나타났다(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자료). 10명 중 5명이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에 지역 간 격차를 보완하고자 하는 본래의 취지도 무색해진 모습이다. 그러나 수능 정시모집보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약한 기준인 최저학력기준도 맞추지 못한다면 입학 후 어떻게 적응하겠냐는 비난 속에서도 코로나19 이후 학력 저하와 인구감소로 인해 서울대학교는 꾸준히 수능최저학력기준을 낮춰오고 있다(현재 4개 영역 중 3개 영역 등급 합 7 이내). 제도를 잘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부로 읽히는 부분이다.

그밖에 농어촌 학생, 저소득 학생, 국가보훈대상자, 서해 5도 학생, 자립 지원 대상자에게 해당하는 ‘기회균형선발’ 전형이 있다. 농어촌 학교에 근무해 본 경험에 따르면 해당 전형의 커트라인은 일반적인 전형보다 한두 등급 낮은 경우가 많아 입시에 유리하다. 수능최저학력기준 역시 더 낮다.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더하여 장애 학생을 위한 다양한 배려가 있다. 수능 시험도 예외가 아니다. 시각장애의 경우는 점자 수능 문제지나 확대된 수능 문제지 및 답안지, 또는 확대 독서기 등을 제공받을 수 있고, 청각장애의 경우에는 듣기평가가 필답고사로 대체되거나 보청기 착용 등이 가능하다. 또한 시험 시간도 1.5배 연장하여 실시된다. 누구에게나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출발선을 같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규칙들은 경의(敬意)를 일으킬 만하다. 무한 경쟁의 비정함이 가득하다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공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관한 기준, 또는 그 이상의 자긍심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규칙들의 존속을 간절히 소망한다.

홍세화 선생은 총장 퇴임 시 대학 구성원들의 70% 이상 되는 지지율을 얻은 어린 시절 친구 정운찬 전 총장이 훗날 신자유주의를 천명한 행정부의 국무총리가 되어 행한 발언과 정책들에 큰 실망을 하고 이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그러나 그 칼럼에서 그는, 가난했던 시절로부터 비롯된 인간성의 발현으로서 인간 정서는 끝내 비판할 수 없다고 친구의 유약한 정서를 위로한다. 나는 적어도 서울대학교 총장 시절에 보여준, 공정한 대입 규칙을 만들겠다는 정운찬 전 총장의 당시 생각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자신의 경험적 토대 위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도 충분히 가능해지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홍세화 선생이 한 때 자신의 친구를 뿌듯하게 여기고 강연에서 인용하던 그 밝은 얼굴을 기억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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