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희 수필】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5.30 06:35 | 최종 수정 2024.05.30 09:24 의견 6

형형색색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5월, 성모성월에 저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던 프랑스 루르드(Lourdes)를 순례하는 은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셨을 당시 19세기 프랑스는 각종 혁명으로 대혼돈의 시기였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지역인 피레네산맥 기슭에 위치한 이곳 루르드 역시 1854년 콜레라가 발생하여 5주 동안 작은 시골 마을에서 38명이 죽는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대혼돈의 시기에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시는 하느님의 신비는 이곳 작은 시골 마을 루르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1858년 2월 11일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콜레라로 인한 천식으로 고통받는 루르드의 14살 어린 소녀 벨라뎃다(Bernadette)에게 성모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착한 벨라뎃다는 땔나무가 없다고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가브강(Gave river)가로 마른 나뭇가지를 주우러 여동생 마리와 친구 잔느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동생과 친구는 강을 건너 나무 조각을 주우며 어디론가 사라졌고, 벨라뎃다는 천식이 재발할까 봐 차가운 가브강가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용기 내어 양말을 막 벗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건너편 마사비엘(Massabielle) 동굴로부터 세찬 바람이 불더니, 금빛 구름과 함께 너무도 아름다운 성모님께서 하얀 면사포를 쓰시고, 발에는 노란 장미꽃이 장식되어 있었으며, 푸른 띠가 허리에서 길게 나부낀 채 금색 고리로 연결된 하얀 묵주를 오른팔에 들고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5월 16일 우리 순례 일행을 태운 버스가 루르드의 좁은 언덕길을 아스라이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루르드를 안내했다는 가이드도 가본 적 없는 그 새로운 길을 구글 안내에 따라 키 작은 마리오 기사님은 대형차를 능숙하게 운전하며 우리에게 루르드의 정경을 한눈에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대성당 앞에 높이 솟아 번쩍이는 황금색 성모님의 왕관이었습니다. 그 왕관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도록 좌우로 지상까지 이어지는 인도는, 마치 두 팔을 크게 뻗어 앞에 펼쳐진 드넓은 광장을 품어 감싸 안은 듯 보였습니다. 루르드 성모 성지의 최고 절정은 성지 한가운데 흐르는 가브강이었습니다. 동생 마리와 친구 잔느가 건넜다는 그 강은 지금은 수로를 정비한 탓인지 마치 부드러운 여인의 머릿결처럼 풍성히 넘실넘실 흐르고 있어 어린이들이 어떻게 저 강을 건넜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던 마사비엘 동굴에 다다르니, 발현하셨던 바로 그 장소에 발현 당시 모습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고, 성모상 오른쪽 바닥에는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대형 촛대에 365일 꺼지지 않는 촛불들이 환하게 붉은빛을 춤추듯 밝히고 있었습니다. 매시간 미사도 봉헌되고 있었고, 많은 순례객들이 오고 갔지만 전혀 소란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였습니다.

루르드의 첫인상은 천국이 따로 없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19세기 암울했다던 그 작은 시골 마을 루르드는, 내세울 것 없었던 벨라뎃다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심으로써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며 미사와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평화로운 지상낙원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기에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천상에 있는 듯 감미로웠습니다. 갑자기 세상의 온갖 근심 걱정이 마법처럼 사라져버렸고, 알지 못할 평화가 그 자리를 가득 채우며 한마디로 베드로가 말했듯이 초막을 지어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였습니다 .

성모님께서는 벨라뎃다에게 그해 7월 16일까지 18회 발현하셨는데, 2월 25일에는 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벨라뎃다가 흙 웅덩이를 파자 엄청난 양의 맑은 물이 쏟아져 나왔고, 성모님을 볼 수 없었던 군중들은 벨라뎃다가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자 모두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물로 씻고 마신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치유되는 것을 보고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후 수천 건 이상의 난치병이 치유된 사실이 보고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이유들로 다수의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고 이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저녁 9시 촛불 행렬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광장을 닮은 드넓은 광장에 8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 초를 들고 운집해 서 있었습니다. 강 건너편 어디선가 흰 테 두른 수건을 쓴 봉사자들이 장애 환우들을 태운 휠체어를 다리 위로 끝없이 밀며 등장했습니다. 대부분 혼자서 생활이 전혀 불가능한 중증 환우들이었습니다. 그들 앞에서 나의 작은 기적의 소망은 극히 미소한 것이어서 성모님 앞에 부끄러워 차마 꺼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저들의 소원을 먼저 들어주시길 청하며 온전히 당신 뜻대로 하시길 기도하였습니다.

9시가 되자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촛불을 밝히며, 안내 방송에 따라 스페인어와 영어, 라틴어와 한국말로 번갈아 드리는 묵주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사제들이 어깨 위로 커다란 성모상을 모시고 앞서가고 그 뒤로 순례객들이 앞 사람을 따라 광장을 천천히 돌며 한 손에 붉게 타오르는 촛불을 높이 치켜들고 아베 마리아를 크게 외치며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순례자들의 거룩한 모습은 아름답고도 장엄해 보였습니다. 많은 군중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앞서가시는 성모님의 좁은 어깨가 갑자기 안쓰러워 울컥했습니다. 모두 한마음으로 성모님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과 응원, 감사와 사랑을 담은 기도 행렬은 감동 그 자체, 목울대가 많이 아파왔습니다.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시는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고 성모님께서 부르셨던 노래 "마니피캇(magnificat)"을 벨라뎃다 성녀도 천상에서 이런 루르드 광장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노래하리라 믿습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고 예수님은 반문하십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가지지 못한 그 모든 것도 은총임을 깨닫고, 우리 주 하느님께서 주시는 매일의 소중한 시간을 거룩하신 우리 어머니 성모님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주어진 삶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지는 은총을 주십사고 기도드립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시인, 수필가)

※ 최현희 시인은 작년에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체험을 본지에 실은 바 있습니다. 올해 다시 스페인 성지 순례 다시 참가하며 은총과 감사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특정 종교의 입장이 아닌 문학작품으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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