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심각하다. 기온 1.5° 상승을 막기 위한 실질적 행동을 위해 국제적인 협약이 생긴 지 오래다. 협약의 시행을 위해 각국 정부도 이에 대행하는 ‘의제 21’ 같은 관련 기구를 만든 지도 오래다. 이것은 단순한 또는 당위적인 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정말로 시급한 정책시행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타난 조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직속의 ‘지속가능 위원회’를 두고 시도, 시군별로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관련 협의회를 두고 관련 정책을 시군의 행정과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한 지가 20여 년이 되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더욱 심각해지고 각 지역마다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같은 단체들이 비상한 행동을 하고 위기를 호소해도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뜨뜻미지근하고, 세계적으로 무슨 유행처럼 극보수주의자들이 집권하면서 기후위기정책은 코웃음 속에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대통령 후보는 RE 100이 대해 묻자 아무런 부끄럼 없이 그게 뭐냐고 되묻기도 하고, RE 100 때문에 당장 수출 규제를 당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마당에 집권당의 대표는 RE 100을 모르면 또 어쩌냐는 말을 유세현장에서 아주 자랑스럽고 천연덕스럽게 내뱉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정부 차원의 노력과는 별도로 민간차원에서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되었다. 200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총회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경제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한 바, 그 내용은 협동조합이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 및 공급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에너지 기업의 독과점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여 에너지 민주화와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생산량 변화로 지구적인 차원의 경제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전 세계 협동조합 진영에서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를 위한 발판이 마련된 것이었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에너지협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태양광발전을 하고 있는 곳이 여러 곳이다. 다른 시도는 잘 모르겠지만, 2011년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어 경기도의 경우 전체 31개 시군에 모두 에너지협동조합이 설치되어 있고, 몇 개 시군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금은 이미 태양광발전소가 가동 중에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파주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늦게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나는 여기에 교육이사로 참여했고 이것은 퇴직하고 난 첫 번째 사회활동이었다. 하나는 다른 하나로 이어지듯이 에너지 협동조합 참여는 탄소중립 도민 추진단 파주지역 대표로 이어진다.
2021년 10월에 발족한 파주해시민발전협동조합은 창립선언문에서 자연에 대한 문제의식과 실천적 다짐을 아래와 같이 하고 있다. “(......) 지구 곳곳에서 산불이 몇 개월씩 이어지고, 더운 지방에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이 찾아오고,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며 댐을 무너뜨리고, 남극의 빙하가 녹고.... 이런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건만 왜 이렇게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까요? (......)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풍족하게, 그것도 모자란다며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부족하다’, ‘늘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고 욕망을 부추깁니다. 우리가 여기 모여 '파주해시민발전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이 욕망을 끊고자 함입니다. 자신이 소비하는 살아가는 삶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입니다. 내가 쓰는 전기를 내가 만들고, 내가 만든 만큼만 소비하겠다는 약속을 지구에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맑은 하늘을 보며, 걱정 없이 숨 쉬고, 햇빛 먹은 채소를 맛있게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에너지협동조합을 설립한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조합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동지를 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업을 운용할 수 있는 출자금을 확보하는 일이다. 협동조합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조합원을 확보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협동조합은 한 조합원이 출자금 전체의 1/3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 보니 소액 출자자 조합원이 많을수록 좋다.
다음으로는 태양광 판넬을 올릴 수 있는 사업부지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업부지는 민간 시설과 관청의 공공 시설이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먼저 공공부지를 사업대상으로 하는 것이 명분상 좋다. 그런데 공무원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단체장이 보수적일수록 공무원은 더욱 움추려 들어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복지부동을 실감하게 된다. 공장이나 개인 건물의 지붕을 활용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전기요금에 대한 불만은 있으나 새로운 재생 에너지원에 대한 확신도 없다. 지붕 같은 경우 제일 염려하는 것이 방수 문제다. 몇몇 학교를 접촉해 보았으나 임기 몇 년 있다 가는 교장으로서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태양광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문제다. 논밭이나 산을 깎아 태양광을 설치하도록 허용한 전 정부의 안일하고 착취적이고 무책임한 재생에너지 정책 시행 탓도 크다.
아무리 조합원이 많아도 조합원의 출자금만으로는 사업 시행을 위한 충분한 재원이 되지 못하다 보니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기존 은행들의 대출대상이 되지 못한다. 여전히 부동산 담보를 요구한다. 에너지 생산량에 대한 담보로 대출해주는 신용협동조합이 있으나 이율이 높고 그마저도 그런 곳이 많지 않다. 조합의 영세성 때문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전임 직원을 두지 못하는 것도 야심 차게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요인이다. 우리 조합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 민간 건물에 태양광발전소 하나를 조합설립 2년 만에 겨우 건설했다. 현재는 RE 100 정책에 대한 강한 추진력을 보이고 있는 도지사의 드라이브로 시에서 내준 체육관 건물 옥상에 2호기를 건설 중에 있고,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임대로 내준 지붕 위에 3호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삶을 바꾸는 일이다. 인간의 욕망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나 중심의, 소비 중심의 생활 패턴을 바꾸는 일이다. 중앙집권적인 에너지공급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멀리에서 전기와 물을 끌어오지 않고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그리고 지역에서 전기를 생산해서 쓰고 가능하면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일이다. 나부터, 우리 마을부터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 마을은 가정용 태양광을 설치하고 남은 지붕은 지역 에너지 협동조합에 임대하기로 했다. 전기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서 지열냉난방을 시행하고 원거리에서 오는 수돗물 사용을 줄이기 위하여 빗물순환장치를 설치했다. 알아보면 이런 것들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지원사업들이 있다. 햇빛과 바람을 모으고 빗물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이것이 하나의 모멘텀 즉 기세로 작용할 수 있도록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혁명이고 혁명의 시작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햇빛을 모아
- 햇빛발전소 준공을 기념하며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그대 두 손에 담아드릴 수는 없지만
파주 하늘에 반짝 반짝이는 햇빛을 모아
당신의 가슴에 환한 꽃등을 걸겠습니다
따뜻한 햇빛 다발 튼튼한 어깨로 쏟아져
마음을 묶어주는 한 뿌리 사랑으로 피고
세상의 꽃밭은 숨 가쁜 숨결로 달아올라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 힘껏 움을 틔워
멀리서 돌아온 꽃들의 환한 웃음과 수다로
태초의 첫날처럼 다시 세상이 밝아지듯
임진강 너머 출렁이는 남북의 햇살을 모아
집집마다 빛이 되고 마을마다 불이 되어
일 나가는 식구들을 위해 따순 밥을 짓고
어린아이들은 공부방에서 내일을 밝히며
피곤한 하루의 노동을 온전히 풀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되겠습니다
하늘을 어지럽히는 고압선 전깃줄의 불안도
이웃나라 핵발전소 사고도 걱정할 필요 없는
깨끗하고 편리한 손바닥 안의 햇빛전기가 되어
골목골목마다 열광熱光의 길을 찾아가겠습니다
※ 지금까지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심신의 휴식기를 갖고 이후의 일들은 이후에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