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41. 세상의 모든 층위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4.12 06:54 | 최종 수정 2024.04.12 14:01 의견 1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다. 어릴 때 가끔, 아주 가끔씩 어머니, 아버지가 다투시는 걸 보았다. 잠깐 동안의 역정이 오가고 침묵은 좀 더 오래갔다. 그러나 2~3일 내로 곧 회복되었다. 부모님의 다툼이 흔치 않았고 짧았던 건 내 유년의 정신 건강에 분명히 좋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The Wonder Years’란 미국 드라마를 일전에 소개한 바 있다. 한 에피소드에서 겉보기엔 평온한 지구 속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그마가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사소한 투정으로 주인공의 부모님이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싸늘한 침묵 속에 갇힌 가족의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저녁을 차리다 뜨거운 주방 기기에 손을 데고 깜짝 놀라 찬물을 흘리면서 서러움에 흐느낀다. 이내 지켜보던 아버지가 어깨를 감싸며 둘은 포옹하고 에피소드 내내 유지되던 부부의 갈등은 해소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연에 무언가가 있다는 내용으로 부모님을 겉으로만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도 이해하려 한다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흐르며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컬트 거장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블루 벨벳’에서는 다른 영화에서도 보여준 일관된 감독의 철학이 시작 장면부터 표현된다. 땅속 기괴하고 징그러운 곤충들의 생태계를 보여주다가 그게 어느 풀들의 뿌리와 흙을 클로즈업한 것임을 알려주고 카메라는 점점 뒤로 물러나 밖으로 나온 후 그곳이 사실은 깔끔한 잔디밭임을 보여주다 이어 아름다운 꽃잎들로 올라간다. 영화의 내용과도 연관이 깊은 이 장면은 우리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고 안온해 보이는 것들도 그 속내로 들어가면 복잡하고 기괴한 어떤 면이 함께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옳음과 그름, 선과 악, 미와 추, 성스러움과 속됨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로서 공존한다는 동양 사상과도 통하는 이미지이다.

그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층위의 모습이 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곳에 오늘도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오늘은 그 층위의 어느 한 지점을 경험한 특별한 추억을 소개하고자 한다. 몇 주 전 지원한 ‘고졸 검정고시 감독’의 단상이다.

학교 밖 청소년이란 말이 있다. 2022년 고등학생 학업 중단 학생 비율은 역대 최대인 1.9%(23,981명)였다(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 교육부 요구 자료). 또한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학업 중단 학생 수는 코로나19 이후로 계속 늘어나 2020년 3만 2,027명에서 2022년 5만 2,981명을 나타냈다. 무려 65.4%의 증가이다. 정시모집 확대로 고졸 검정고시 응시자가 역대 최대 규모라는 뉴스도 나온다.

아이들은 왜 학교를 그만둘까? 경제적 이유, 가정으로부터의 소외, 학교 부적응, 폭력과 따돌림 등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교육부와 여가부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투자와 사업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공부 또는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성적과 실적을 발휘하는 아이들에 대한 칭찬도 중요하지만 경쟁에서 잠깐 비켜선 아이들을 챙겨주려는 노력 역시 공동체가 살펴야 할 사항이라 믿기에 좋은 모습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에는 일찌감치 정규 교육이라는 울타리 안에 품지 못한 아이들에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놓았다. 바로 초, 중, 고졸 검정고시 제도이다. 이번에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에도 고사장이 배치되어 감독관 요구 공문이 왔다. 약간의 수고료로 용돈도 벌고 진로 교사로서 검정고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지원했다. 결론은, 몸은 힘들었지만 많은 상념을 일으킨 소중한 시간이었다.

고졸 검정고시 시험 감독은 모든 게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우선 시험 감독관의 출근 시간이 동일하다. 두 시험 모두 7시 30분까지 출근하고 교시별 쉬는 시간은 20분씩 같다. 고사본부와 감독관실 위치, 그리고 고사장 동선과 학생들 자리마다 붙은 수험 번호 및 선택과목 스티커, 감독관이 수험생 신분 확인용으로 이용하는 응시 원서철 등 수능 감독을 해본 경험이 있는 감독관이라면 그 유사성에 묘한 느낌을 얻을 것이다. 유사한 공간에서 유사한 형식으로 시험 감독을 치르지만, 시험을 보는 학생이나 내용이 상이한 점에서 오는 당혹스러움 때문이다.

시험 시간은 국어, 수학, 영어의 경우 40분, 그리고 사회, 과학, 한국사, 및 선택과목(내가 참여한 고사장은 도덕 또는 체육)은 30분씩이다. 수능 감독보다 육체적으로 고된 건 감독관 쉬는 시간이 단 한 과목뿐이고 나머지 여섯 과목을 스트레이트로 감독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비록 과목별 시험 시간이 짧다는 점이 위안이 된다 해도 수능처럼 20분 휴식 후 예비령과 본령의 10분 간격이 없이 바로 다음 과목이 실시된다는 점에서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감독관의 ‘허리’ 검정고시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검정고시를 치르는 학생들은 짐작할 수 없는 사연만큼이나 외모도 다양했다. 심한 머리 염색을 한 여학생, 대충 체육복을 걸쳐 입은 남학생, 문신을 한 아이도 보였지만 반면에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의 아이들도 많았다. 시험 중간에 일찌감치 답안을 찍고 잠을 자는 덩치 큰 사내아이는 중저음의 코 고는 소리로 부감독관을 불안하게 했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깨우면서 코 고는 소리가 난다고 했더니 아이는 연신 죄송하다 한다. 외모에 비해 바른 태도에 놀랐다. 앞뒤로 앉은 주변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괜찮다고 한다. 만일 수능이나 일반 정기 고사였으면 어림도 없을 반응이다.

한 여자아이는 화려한 외모를 뽐내며 계속 수험 번호 마킹을 틀려 하기에 정정해 주길 세 번째(한 교실에서 여섯 시간을 감독함), 다소 호들갑스러웠지만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걸 체크해주고 알려주는 게 내 일인데, 역시 다른 시험 감독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반응이다. 시험 도중에 느낀 건 아이들이 감독관의 작은 배려에도 수줍지만 감사함을 잘 표현한다는 점이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학교를 떠나 있지만 일정한 교육 시스템의 틀 안에 들어온 그들의 긴장됨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그 틀의 작은 요소로서 아이들과 만날 뿐이지만 제도가 갖고 있는 권위를 빌려 아이들을 대하고 있기에 좋은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혹은 감독관으로 인해 오랜만에 받아보는 공교육의 따뜻한 관심에 대한 아이들의 좋은 반응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제도의 외피를 입고 감독관으로서나마 아이들과 만난 순간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시작하면서 휴대폰을 걷고 모든 시험이 끝나서야 나눠주는 수능 시험에 비해 검정고시는 매 교시가 끝나면 교실 앞에 놓은 가방 속 휴대폰을 수험생이 가져갈 수 있다. 심지어 시험 중간에 휴대폰이 울려도 부정행위가 아니다. 그 가방만 복도로 꺼내 놓고 대처하면 된다. 수험생이 앞으로 제출하지 않은 경우만 부정행위로 처리되니 수능과 비교하면 무척 관대한 기준이다. 관대한 기준이지만 휴대폰을 매번 제출해야 하는 아이들은 번거로울 수 있다. 나는 수없이 많은 경험으로 안다. 학교에서 무엇을 걷고 낼 때 교사에게 보이는 아이들의 심드렁한 태도와 반응이 때론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오는지를. 그러나 이번에 내가 감독한 고사장에서는 아이들의 그런 태도를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들이 나올까 봐 걱정하며 미리 방어기제를 갖춘 나 자신을 꾸짖었다. 편견은 죄악이다.

시험문제는 단출했고 그 수준은 고등학교 기준으로 한없이 평범했다. 혹자는 정답이 ‘여기 있어요!’하며 일어서있는 문항들이라 했다. 명색이 수학 과목에도 어떤 문제인지 살펴본 나조차 약간은 미소가 지어지는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40분을 꽉 채워가며 매 교시 시험에 충실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아이들은 이곳이 시험장이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확인하게 해주는 대화들을 들려준다. 그 대화들이 곳곳에서 흘러나와 나는 잠시 숙연해졌다. 바로 몇 번 문제의 정답은 뭐야? 라는 질문과 맞는 답에 즐거워하는 지극히 평범한 시험 후 대화들이었다.

짧은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아이들을 위한 도시락을 준비해 나눠주는 모습에 고생하신다는 격려를 보냈다. 그러던 중에 밥을 먹고 고사장 교정 주변에서 다음 교시 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복도에서의 대화, 아무리 평이한 수준의 문제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 아이 등 여러 장면을 본 나로선 여태까지 갖고 있던 여러 시험들에 관한 고정 관념을 그대로 고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세상의 모든 시험은 평등하다고.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얻어 그보다 못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좁은 문을 통과한 후 부여되는 격한 환호와 칭찬은 없지만, 평균 60점을 맞으면 통과시켜 주리라는 여유 있는 기준은 때론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안전망이 되어 아이들을 돌봐 주리라 믿는다. 더불어, 아이들을 지켜주는 우리 공동체의 따뜻한 제도에 오랜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험 감독을 마치며 내 안에서 몇 마디 속삭임이 나왔다.

수고 많았어요. 여러분

오늘, 다시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나도

출처 뉴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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