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39. 오래 살고 볼 일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3.29 07:10 | 최종 수정 2024.03.29 07:33 의견 4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현대인의 불행은 장수(長壽)에 있다. 평균 수명은 늘었는데 그만큼 일을 하게 허락지 않는 세상의 모순에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의 불안이 대표적인 이유이다. 언론에 많이 회자된 연구(오스트레일리아의 분자생물학자 벤저민 메인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대의 DNA 분석)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 수명은 38세이다. 마흔을 넘기면 몸이 한해가 다르다고, 예전에 어머니가 말씀하실 때만 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평균 수명이 늘어서 인지 마흔 살에는 큰 반응이 없다가 오십을 넘기니 정말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자연 수명’은 우리 몸을 현혹하지 않는 솔직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미 마흔을 넘기면 몸의 기능은 퇴화하고 아픈 데가 많아지며 늙는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평균 수명이 그것의 몇 배로 연장되었기에 망각하고 있을 뿐, 사실 지금은 우리가 늙은 채로 너무 오래 잘 버티며 살고 있는 시대일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 흔히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은 은퇴 시기를 정하는데도 자유롭고, 은퇴한 이후 일로부터도 자유롭겠다는 부러움을 산다. 우리는 대부분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일에 묶여 있다. 일의 의미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생계유지의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의 의미에 경제적 이유만 있다면 일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뿐인 끔찍한 활동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의미는 어떤가? 자아실현과 공동체의 기여와 같은 일의 의미는 솔직히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일은 피하고 싶은 고통으로 여겨진다. 솔직히 나머지 의미들은 고통을 숨기는 알약의 당의(糖衣)처럼 보인다.

진로 교사는 그렇게 멀리 있는, 도망치고 싶은 ‘일’을 연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율배반 속에 있다. 아이들에게 백 날 가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 보람 있는 일을 얘기해도 돌아오는 건 권세 있는 일, 효용 있는 일, 경쟁력 있는 일, 그리하여 많은 보수를 받는 일이고 결국 종착점은 놀고먹는 건물주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삶에서 오롯이 즐거운 건 얼마나 되나 묻고 싶다. 끔찍하게 여겨지는 우리의 일에도 다른 경우에,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되새겨 볼 의미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순간이 있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기 며칠 전, 전근하시는 선생님들을 위한 송별회와 함께 두 남선생님의 정년퇴임 행사를 조촐하게 열었다. 교사의 정년퇴임은 만 62세이다. 2024년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남성 평균수명인 86.3세가 앞으로 20년이나 남은 나이다. 그래서일까, 퇴임하시는 두 분은 모두 건장하고 활력이 넘치셨다. 그중 한 분은 우리 학교 오케스트라를 십여 년간 지도하신 음악 선생님으로 퇴임 후에도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을 지도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아마추어 야구 심판으로도 왕성하게 활약 중이시다. 또 한 분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격증을 획득하셨고 그중 하나인 전기기능사 자격증으로 인근 신축 아파트 기전실에 바로 취업하셨다. 그곳에서 남은 시간에 더욱 공부하고 기사 자격증에 도전하시겠다는 포부를 밝히셨다. 작년에 퇴임하신 인근 학교 교장 선생님은 역시 6개월간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따시고 그것과 상관없는 지역의 소규모 공사에 진출하셔서 오랜만에 몸 쓰는 일을 하신다며 즐거워했다. 물론 이전의 지위는 비밀로 하고 활동하시는 중이다.

술자리에서 여쭤보았다. 연금도 타시고 자녀들도 장성해서 모두 제 앞가림을 하는데 왜 돈을 더 벌어야 하는지를. 세 분 모두 향후 자녀들의 인생에 들어갈 비용을 지원해 주시겠다는 바람을 말씀하셨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 역할은 끝이 없다는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집 안에서만 지낼 수 없다는, 아직은 건장한 자신들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세 분 모두 두려워한 건 행여나 집안에서 무미건조해질 당신들 삶의 무료함이었다. 물론 그 두려움의 한 축에는 공히 사모님의 존재도 있다. 나는 굳이 세 분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정 내 헤게모니를 일반화하긴 싫었다. 나도 같은 위치에 있게 될 확률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보다 너무 이른 은퇴로 당장의 생계와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분들의 일에 관한 절박한 의미가 있다. 또한 경제적 이유에 갇혀있지 않아도 일을 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분들의 바람도 또 다른 일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생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과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수업을 통해 자신의 꿈과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30개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아무리 사소한 꿈이나 일일지라도 편하게 써보라고 제안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아이들을 보며 하고 싶은 게 쉽게 떠오르지 않은 우리 사회의 답답한 현실을 느꼈다. 은퇴와 노후를 떠올리며 너무 늘어진 우리의 수명이 자칫 하나뿐이고 찰나와 같은 삶의 소중함을 잊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죽는 날이 한참 멀리 있어 삶이 애틋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아이들의 버킷리스트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쓰기엔 한계가 있겠지만 당장 며칠 뒤에 생을 마감할 분들이 쓰는 하고 싶은 일 목록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을 소중히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던가.

아이들과 좀 더 깊은 얘기를 나눴다. ‘당장 죽음에 임박한 분들의 하고 싶은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지난번 시험에서 성적을 조금만 더 올렸어야 하는데’라던가, ‘작년에 연봉을 조금 더 올렸어야 하는데’, 또는 ‘그 녀석에게 더 심한 저주를 퍼부어야 했는데’라는 일들은 없을 거라고 했다. 평소에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삶의 참모습과 거리가 먼 것들을 솎아내고 또 솎아내어 남는 진짜에는 저런 말들은 없을 거라고 했다. 아이들도 공감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같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하기’, ‘소중한 사람들에게 못해 준 일에 대한 미안함’, ‘그동안 바빠서 잘하지 못했던 착한 일’ 등일 거라고 답변했다. 기특한 대답들이다.

지금은 절판된 오츠 슈이치의 책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에는 저자가 호스피스 전문의로서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보며 정리한 삶의 후회가 다음과 같이 담겨있다. 첫 번째,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두 번째,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세 번째,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네 번째,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다섯 번째,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섯 번째,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다면, 일곱 번째,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여덟 번째,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등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나눈 예상이 얼추 맞았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가 쓴 칼럼에는 호스피스 봉사자로부터 들은, 임종이 임박한 40대 유방암 말기 환자의 사연이 나온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설거지’였다. 우연히 발견한 암을 장기간의 항암치료와 정기검진으로 이겨내나 싶다가 2년쯤 지나 전이가 발견되어 추가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남편에게만 알린 상태였는데 이미 환자는 그 사실을 눈치채고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그것은 두 자녀와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하는 것이었다. 며칠 후 잠시 집에 갔지만 기력이 없어 집 안을 한 번 둘러보기만 하고 병원으로 돌아온 환자는 1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힘겨운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 대부분은 그녀처럼 아프기 전의 일상을 그리워하고 하루빨리 돌아가길 소망한다고 한다. 청소년기의 환자들 역시 ‘병이 나으면 무엇을 하고 싶니?’라는 질문에 학교에 가고 싶고, 기말고사나 수능시험을 치고 싶다고 말한다고 한다.

소중한 것들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때로 그것들은 오히려 너무 흔하게 만연해서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감춘다. 우리에게 따분하거나 다소 고통스러울지라도 할 일이 있는 일상은 가장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작더라도 좋은 영향을 주고, 풍족하진 못해도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감당하지 못할 장수(長壽)는 없을 거라는 기대를 품어 본다.

사진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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