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출판은 제조업으로 분류되지만 출판을 서비스업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엄격하게 말해 출판에서 인쇄와 제책만 제조업이고 나머지는 서비스업일 수 있다. 나는 가끔 인쇄소 사장에게서 “이러다 한국의 제조업은 모두 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다. 원자재값이 오르는 데다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쇄소에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수 일한다. 어디 인쇄소뿐일까? 저임금의 힘겨운 일자리에는 외국인이 차고 넘친다. 산재사고의 희생자도 외국인이 적지 않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이민 당국에 대규모로 구금되어 비참한 대우를 받은 뉴스를 접하고 나는 미국의 제조업을 떠올렸다. 2011년에 월가 시위에서 등장한 슬로건은 “우리는 99%다!”였다. 1970년대에 미국의 65%를 차지하던 중산층이 2007년도에는 20% 이하로 격감했다. 부유층과 빈곤층이 각각 2배로 확대되었다. 그 당시에 이미 3명 중 1명은 빈곤층일 정도로 양극화가 격심했다. 코로나19가 엄습했을 때 미국의 빈곤층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뉴스로 지켜보면서 미국의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뭘까? 공룡기업 월마트는 ‘언제나 최저가(Everyday Low Price)’를 표방하며 소매업계를 평정했다. 납품업체들은 출혈 납품까지 감수해야만 했다. 최저가를 추구한 월마트는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아프리카에서 물품을 납품받았다. 그 바람에 미국의 제조업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당연히 시민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 시민들은 월마트에서 값싸게 생필품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일자리가 없으니 수입도 없어져 생필품이 아무리 값싸도 구입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게 빈곤층이 급증한 이유였다. 제조업이 몰락한 미국이 제조업의 부활을 꿈꾸면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린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투자 유치를 하면서 공장을 세워주러 간 한국 기업의 노동자들을 범죄자 취급을 했다. 설사 이런 방식으로 유치가 성공한다고 해도 제조업이 부활할 수 있을까? 미국은 아마존이 월마트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최저가 경쟁은 더욱 격심해졌다고 한다.
유통업체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점유율을 높이려고 한다. 쿠팡이 그렇다. 쿠팡은 반품이 없다는 조건으로 출판사의 납품가 인하를 요구한다. 광고와 판매 장려금도 요구한다. 쿠팡의 요구를 따르다 보면 다른 유통업제들이 도산할 수 있고, 결국 출판사들이 살아남기가 어렵다. 쿠팡이 책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쿠팡의 공세는 결국 제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월마트의 최저가 정책이 미국을 파탄으로 이끈 것처럼 우리도 결국 파국에 직면할 수도 있다.
독자가 값싼 가격에 빨리 책을 받아보고 싶은 욕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책의 생산자들의 힘겨운 상황을 무시해버리면 그 대가는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쿠팡의 정책은 성공할까? 그들은 정녕 반품하지 않을까? 지금 물류창고에는 책이 꽉 들어차 있어 이미 일부 출판사에 반품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적체된 재고를 파지업체로 내보내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품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출판 현장에서는 벌써 이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