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집을 지은 사람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토목공사가 끝난 땅을 사서 집을 지으라는 이야기가 꼭 나온다. 한 마디로 집 짓기 전의 토목공사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토목이란 집의 경계를 확인하고 집이 들어설 자리의 땅 아래에 상하수, 우수, 전기, 통신 등의 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 낮은 땅은 성토를 하여 땅을 높여야 하고 높은 땅은 땅을 낮춰 도로에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 토목설계사는 집 지을 대지의 규모와 모양에 맞게 설계를 하여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토목시공업자는 허가받은 설계도에 따라 정밀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 즉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사 또는 건축시공사(집장사), 토목설계사, 토목시공업자의 원활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삼자 간의 협조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공사 진도에 차질을 빚는다.
그런데 이 삼자 간의 협력이 잘 이루어진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땅이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땅 주변의 다른 사람의 땅이나 집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공사를 시작하면 옆 땅이나 집 주인의 간섭을 받게 되기가 쉽다. 간섭이 심하면 토목공사를 핑계로 이거 해달라 저거 해 달라 각종 부탁이 들어오고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건을 빌미로 면사무소나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게 된다. 대개의 공무원들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이 민원이어서 공무원은 민원인과의 원만한 타협을 유도하고 민원이 해결되기까지는 공사를 중단시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도 돈이지만, 속도 부단히 썩혀야 하고 아까운 시간을 쓸데없이 허비하게도 된다. 공사에서의 시간 지연은 당연히 비용 지불을 수반하게 된다.
한 사람이 한 필지의 땅 위에 자기 집 하나를 짓는데에도 이런 공력이 필요하건만, 여러 필지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토목공사에 훨씬 더 큰 공력이 필요하게 된다. 더욱이 집 짓는 사람이 집 짓기에 대한 전문성이 없으면, 그리고 함께 집 짓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의사 결정하기가 훨씬 어렵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집 짓기의 갑을관계가 바뀌거나 공사 일정이 하염없이 늦춰져 더 많은 비용을 물게 된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비싸더라도(맨땅의 대략 2배) 토목공사가 완료된 땅 위에 집을 짓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증언이다.
우리의 경우는 본격적인 토목이랄 것도 없는 성토하는 첫 시작 단계에서 들여온 흙의 질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들여온 혼합골재를 보고 기겁한 주민이 공사를 먼저 중단시켰고 토목업자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토목업자와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언어가 다르고 대화의 문법이 서로 달라서 요구와 대답이 일치하지 않았다. 우리는 원상회복을 요구하였고, 토목업자는 우리를 업계의 관행 1도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로 취급하였다. 상식이라는 말을 함께 쓰고 있지만, 의미는 서로 달랐다. 우리는 상식을 원칙과 합리성으로 생각한 반면, 그는 업계의 관행을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를 계약 위반이라고 말했고 비용은 계약을 위반한 사람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는 토양 성분 검사서를 들이밀며 자신이 한 일은 합법적이며 해약 시 들어간 비용은 당연히 우리가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들여온 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 측의 몇 사람이 포클레인을 불러 반입된 흙을 한 곳으로 긁어모으는 일을 했고 업자는 업무 현장 훼손이라는 주장까지 했다. 의견은 팽팽했고 결론은 나지 않았다.
업자뿐만 아니라 우리 측의 문제도 금방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토목이나 건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우리 쪽에 한 명도 없다는 점이었다. 집 짓는 현장이 대개 그렇듯이 토목업자나 건축사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둘째는 현실적인 문제와 도덕적인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형국이 벌어진 것이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논의는 업자의 도덕성을 성토하는데 치우쳤다. 업자를 바꾸게 되면 공기 연장은 물론이고 반입 토사의 반출 문제와 그 비용처리까지 원래 성토할 비용의 몇 배가 들어가는 데도 약속 위반을 한쪽은 업자이니 원상회복뿐 아니라 손해배상까지 청구해야 한다는 매우 도덕적이고 원론적인 주장으로 치달았다. 이러는 동안 발생한 공기 지연에 대한 비용은 결국 우리가 물게 되었다. 셋째는 우리 회의구조의 문제였다. 몇 시간의 회의가 진행되어도 결론을 내기가 어려웠다. 전체 회원이 참여하는 회의체의 비효율성이 드러난 것이다. 14 가구가 모여 논의하는 과정은 결론을 내기가 어려웠고 결론이 나더러도 시행하기 전에 누군가에 의해 뒤집히거나, 결론과 관계없이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제한 없이 마을의 이상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별적인 행동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만, 마스터플랜을 수행하는 건축사나 토목업자와 같이 계약을 하고 진행하는, 즉 계약 상대가 존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별적인 행위는 상당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회의하다 보면 업자와 마을 대표의 약속도 뒤집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의 약속이 주민의 반발로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식이었다. 농지를 대지로 형질 변경하는 것이 집 짓는 과정인데 일일이 시청 농지보전과에 전화해서 이렇게 해도 되느냐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가 아는 업자에게 일일이 자문하여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밤늦게까지 회의에서 내린 결론이 아침에 눈 뜨면 뒤집히고, 회의의 결론과 관계없이 자기 식으로 또 다르게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있었다. 넷째, 리더십의 문제였다. 리더십이 전혀 발휘되지 못했고 오히려 때때로 부정되었다. 경험과 지식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현실판 ‘봉숭아 학당’의 재현이었다.
일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긴 시간의 논란 끝에 현 업자와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토목업자와 업무 대화를 하기 위하여 대표자를 구성하기로 하여 업체를 방문하기로 했고, 우호적인 분위기 가운데 우리가 지향하는 마을에 합당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날 또 터졌다. 마을 사람들이 합의를 또 뒤집은 것이다. 다시 회의가 열리고. 결국 이 업체와 일을 하지 않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이 업체는 성토가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돈이 걸려있는 토목시공을 목표로 이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더 이상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들은 우리 마을이 생태마을을 추구한다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설명을 들은 바 없다고 거짓말을 했고, 성토 과정의 농지 훼손 절차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 마디로 업체가 정직하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부 측량과정에서 얻은 GPS 값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성토작업과 그들이 작업한 반출 비용을 지불했다. 그 사람들, 나중에 GPS 값도 넘겨주지 않았다. ‘꼬장’을 부린 것이다. 우리는 덤의 비용과 두 달간의 공기 연장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대신 우리가 배운 것은 ‘무대뽀’ 앞에 합리성과 상식이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현실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먹물들의 논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한심한 것인지 확인한 것뿐이었다. 업자들의 '곤조'와 업계의 관행을 배우는 데에는 나중에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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