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철학, 노자도덕경 산책(46)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3.07 07:57 | 최종 수정 2024.03.07 07:58 의견 0

김준식(전 지수중학교 교장)

벌써 20년이 넘은 일이다. 당시 교육부에서 전문직으로 5년이나 근무하다 전문직을 그만두고 다시 교사로 돌아온 그 해, 교사로서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할 필요에 따라 ‘학습연구대회’에 스스로 참가하였다. 당시 학교 분위기는 누구라도 이 대회에 참여하기를 바랐지만(교장들은 은근히 참가를 압박하기도 했다.) 아무나 쉽게 대회 참가를 결정하지 못했을 때, 이제 전문직을 그만두고 5년이나 교실을 떠나 있었던 사람이 이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말하니 여러 사람이 말리기도 하고 또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약간은 무모한 나는,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고 내 전공도 아닌 역사 과목으로 대회준비를 했다. 대회 당일 수업을 하려고 교실에 가 보니 심사위원장으로 고등학교 선배가 앉아 계신 것이 아닌가! 갑자기 긴장이 몰려왔지만 무사히 수업을 끝내고 좋은 수업이라는 강평까지 들었다. 그런데 심사위원장인 그 선배 양반이 나를 부르더니…… 자네는 이미 포기했으니(전문직을 그만두고 왔으니 승진을 포기한 것)…… 1등급을 양보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넌지시 말씀하셔서…… 내가 대회에 나간 것이 1등급을 받는 것이 아닌데…… 약간 고민했지만 수락하게 되었고, 나 대신인지 아니면 실력대로인지 몰라도 1등급을 받으신 선생님은 마침내 승진을 하셔서 올해 정년 퇴임을 하셨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 심사위원장이던 그분 역시 교장 승진을 하시고 퇴임 전에 지병으로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는데…… 기이한 인연은 내가 공모 교장으로 부임한 그 학교 전, 전임 교장이셨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공평무사는 어느 세계나 어렵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공평무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천지는 인자하지 않으니, 마치 만물을 지푸라기로 엮은 개를 대하듯 하고, 성인은 인자하지 않으니, 마치 사람들을 지푸라기로 엮은 개를 대하듯 한다. 『노자도덕경』 5장

(* 추구芻狗: ‘추구’란 옛날에 제사를 지낼 때 별 의미가 없이 의례적으로 제사상에 올려두었던 짚으로 대충 묶어 만든 개의 모형을 말하는데, 제사가 끝나면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장자』 ‘천운’에 '추구' 이야기가 등장한다. “무릇 추구芻狗는 제사상에 진열되기 이전에는 좋은 상자로 담기고 아름다운 천으로 꾸며지며 제주祭主가 경건하게 받들어 모신다. 그러나 제사가 끝나면 길 가는 사람들이 그 머리와 등을 짓밟고 나무꾼들이 주어다 땔감으로 쓸 뿐이다.”

노자의 입장에서 ‘공평무사’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곳에도 어떤 대상에게도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다. 햇빛 비추고 비가 오는 것은 무엇을 생육시키거나 혹은 무엇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천지 스스로 원리에 따라 운행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지는 지극히 무심하다.

『장자』 ‘제물론’에도 “진정 큰 인은 인이 아니다(대인무인大仁不仁)”라고 했고, ‘경상초’에서도 “지극한 인은 친함이 없다(지인무친至仁無親)”라고 했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고등학교 선배의 공평무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공평무사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을 도모했을까?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자연법칙을 본받아 성인 또한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불인不仁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이 백성에 대해 불인不仁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곧 통치자가 백성 개개인에 대해 친밀함과 소원함을 따지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도 친밀하고 소원함을 따지지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그 선배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다만 그 선배 스스로 그런 일을 주도하면서 일었던 마음에 갈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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