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철학, 노자 도덕경 산책(45)

자연, 道, 실체, 그림자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2.29 07:19 의견 0

진주고등학교 교사(전 지수중학교 교장)

『장자』 ‘제물론’ 끝 부분에는 재미있는 그림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두 명(개)의 그림자가 대화하는 장면은 실체 없는 그림자들이 마치 실체인 것처럼 대화를 주고받는다. 짙은 그림자(‘경景’)에게 옅은 그림자(‘망량罔兩’)가 깐죽대며 말한다.

망량: “당신(景)은 왜 그리도 불안정해 보이는 것이오.”

경: “무엇인가를 의지하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데, 내가 의지하는 그 무엇도 또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 같아서 그런가 보오.”

그림자는 반드시 실체가 있어야 되는 것이므로 실체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자를 만든 그 실체조차도 확실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경’은 이미 도에 경지에 이른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경’의 모호한 이야기에 깐죽대는 ‘망량’은 사실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 ‘망량’ 자신이 더 희미한 그림자이기 때문에 애당초 그런 말(당신(‘景’)은 왜 그리도 불안정해 보이는 것이오.)을 할 처지도 되지 못하지만 그 말 자체도 매우 타당하지 못한 말이다.

세상은 매우 상대적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지식에 의해 평가되고 표현되고 있는 모든 것을 ‘장자’는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나아가 깨끗하게 부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새롭게 이야기하려 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또 원인이 있으며 결국 궁극적 원인은 ‘도道’ 일 것이다’라고 ‘장자’는 추측하지만, 그 ‘도’의 구체적 작용과 내용은 ‘장자’ 자신도 또 우리 역시도 ‘망량’이나 ‘경’이 하는 말처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장자’는 인간들이 느낄 수 있는 무형無形의 물질조차도 실체가 있다고 상정하고, 그것은 의지적意志的인 행위를 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이며 우주의 발생, 생장, 소멸의 초보적 질료라고 생각하였다. 『장자』 ‘천지’에 이런 이야기가 '장자'의 그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즉 “형체를 가진 존재 중에서 무형무상無形無狀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다 함께 존속存續할 수 있는 존재는 전혀 없다.”(즉 도만 존재한다라는 이야기다.) 이 道와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存在란 道와 함께 영원한 생명生命을 누리는 자란 뜻이다.

그 무형의 실체는 유有를 예비하는 전 단계로서 무에서 유로 변화하는 이런 전환 과정이 바로 도道라는 것이다. 즉, 도를 자연이 가진 보편적 법칙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도와 자연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자연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세계를 부정한다. 이를테면 ‘장자’는 냉정하게 감정을 억제하고 보편적 법칙인 자연이라는 도를 상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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