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말은 앞으로 갔다 뒤로 왔다 해도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한 단계가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고도 시간에 밀려서 다음 단계로 나간다. 물론 일이 엎어지기도 하지만, 일정이라는 게 있어 어떤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는 논의하는 문제에 대해서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서도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앞으로 떠밀려가기도 한다. 마을과 집과 건축의 이상에 대해 주민 전체가 완전하게 서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 만들어 갈 마을의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는 시간이 왔다.
마스터플랜은 일반적으로 종합적인 기본계획을 말한다. 어떤 사업을 실시함에 있어서 그 사업의 목적 또는 목표에 따라서 그 대강의 개요를 밝힌 계획으로, 국가 규모의 큰 단위에서부터 작은 사업 규모까지 적용 범위는 천차만별이다. 주로 건축 분야에서 많이 쓰이지만, 국방 분야에서도 쓰이고 밑그림이라는 의미의 은유로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인다.
우리 마을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는 생태주의, 평화주의, 공동체주의로 마을에서의 삶과 농사짓기로 이를 반영하려고 한다. 약 1,000평 되는 밭에서 퍼머컬처로 농사를 함께 지으며 이를 실현하고, 마을의 공유건물인 ‘마을센터’에서 농업법인 ‘평화로가게’를 운영하면서 마을의 선주민과 더 나아가 인근의 파평면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6차 산업을 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을의 마스터플랜에서 이런 가치를 반영하려고 했다. 그래서 마스터플랜의 기본 컨셉은 ‘몸과 집과 자연이 섞인다’는 것이다. 적재적소의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을 배치하고 다양한 풍광이 입체적인 스펙트럼을 갖고 펼쳐지도록 계열적(sequence)으로 구성한다. 이를 위해 마스터 플래너(건축가)의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네 농촌은 왜? 어수선하거나 난데없거나, 어수선한 와중에 난데없는가?”
첫째, 농촌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농부의 일상에 최적화된 공간구조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마을 주민이 사정상 전업농으로서의 문제의식보다는, 도시인으로서의 농부의 삶, 농업+α의 반농반X의 도시농부의 일상에 최적화된 공간구조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고, 전원의 낭만과 아파트의 효율성과 농촌의 생산성을 함께 고민하면서 다용도실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둘째, 단순하게 농촌에 각각의 전원주택을 짓는 것이 아니라 생태주의적 삶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집단이므로 각자가 사유하는 땅의 25%를 마을에 내놓고 그 부지 위에 마을공동체가 운영하는 마을센터를 만들어 공동의 쉼터와 사업을 운영한다.
셋째, 에너지 자립 문제였다. 물은 빗물로 완벽한 자립을 가능하게 하고, 식량은 우리 마을 단위의 자체 식량 생산 모델 실천을 수립한다. 에너지는 태양광과 지열을 활용하고 열 순환, 단열을 통한 난방, 자연을 통한 냉방 계획을 수립하여 에너지 자립을 실천하되 추위와 더위에도 노출하여 자연적 수용력을 키운다. 원전에 의존하는 한전 전기와 가스를 쓰지 않고 빗물을 재활용하여 장거리 소재의 물을 끌어오는 상수도의 양을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다.
넷째, 집의 실외(파고라형 온실), 옥상 등을 활용하여 빨래 널기, 퇴비 만들기, 음식물 찌꺼기 발효하기, 메주 삶기, 생선 말리기, 해먹 매달기, 고추 말리기, 콩 까서 말리기, 각종 야채 데쳐 말리기, 장작 지펴 숯 만들기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다섯째, 주택부지 협소함으로 최소의 소유와 최대의 공유라는 원칙을 적용하여 담장 또는 펜스를 설치하지 않음으로 사적 공간의 공유화, 차경의 개념을 도입, 추구한다.
여섯째, 전 건축공정에 적정기술의 개념을 도입하고 공사 과정에 건축주도 직접 참여하여 건축을 몸에 익히고 경비도 절약한다. 최대의 노력으로 최소의 비용 최선의 결과를 도출한다.
한마디로 물과 불과 바람이 통하는 마을은 만든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토지를 분할하고 분할된 필지에 모양과 방향을 잡은 집들이 도면과 모형으로 제시되었다. 포도나무나 기타 넝쿨식물로 뒤덮인 마을 안길과 빗물 순환로 역시 마스터플랜에 반영되었다. 이런 생각은 마음의 항상성과 동시 건축 동시 입주를 상정한 것이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히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나무가 잎을 다 버리고 나서야
한여름 무성한 가지 사이
숨겨 놓은 까치집을 보았습니다
다른 이의 눈을 피해
잎사귀 숲에 감춘 숨 가쁜 사랑과
마침내 새끼를 낳아 길러 낸
어미 아비 까치의 분투와
그사이 다 자라 집을 떠난
싱싱한 진초록 목숨의 어린 까치네
질기고 풋풋한 가족사를 읽었습니다
잎을 모두 떨구고
찬바람 속 온전히 홀로 서서
하늘을 이고 있는 느티나무가
벌거숭이 겨울이 되어서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생명은 언제나 치열하였다
증언하고 있음을 겨우 알았습니다
- 졸시, 나무의 증언, 시집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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