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핀란드

산타클로스의 고장!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2.06 07:15 | 최종 수정 2024.02.13 06:12 의견 6
핀란드의 초여름
도로 대부분은 직선으로 뻗어 끝이 보이지 않는 평지의 길이며 수없이 많은 호수가 있으나 호수 대부분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로바니에미와 오랑키 미술 축제

6월 5일 인천공항을 떠나 8시간 비행 끝에 헬싱키 공항에 도착하여 Oranki의 작가 Thuomas를 만나 6시간 이동, 핀란드 동부 러시아 접경지역 작은 마을 Ilomantsi에 도착하여 1박을 했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초행길은 멀게 느껴진다. 더구나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경험하고 나면 그런 생각을 추가하게 된다. 실제 현지에 와보니 핀란드는 생각보다 큰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만 큰 땅의 면적에 비해 인구가 턱없이 적을 뿐이다. 그래서 땅값도 아주 싼 모양이다. 수도 헬싱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제곱미터당 7유로”라고 쓰인 토지 매매 광고를 보며 이 넓은 대지에 겨우 5백만 인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재의 날씨는 환상적인 초여름의 녹음과 최적의 기후와 밤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로서 하루 24시간 야외활동이 가능하지만, 11월부터 시작되는 겨울은 이듬해 4월까지 장장 6개월이나 되며, 한복판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상온 영하 15~20도로 매우 춥고, 때로는 영하 35도까지 내려가며 낮에도 해가 뜨지 않는 흑주가 계속되는 혹한이라고 한다. 이쯤 되니 왜 사람들이 이 넓고 아름다운 호수의 나라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대지는 대부분 평원과 구릉이지만 배수가 잘되는 사질토양으로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표층 밑은 생각보다 단단한 암반으로 형성된 지형이다. 아마도 빙하기 끝 무렵 해빙기에 북극에서 흘러내리는 상상하지 못할 크기의 빙산들이 이 지역을 미끄러지며 굴곡 있는 지형을 다림질하듯 평평하게 펴놓고 간 모양이다.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필란드어지만, 스웨덴어, 영어, 러시아어와 북부지방의 토속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일로망치의 범선
강변에 서 있는 거대한 목선이 눈길을 끌었다. 잘 만들어진 범선이 현재 식당과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헬싱키에서 동북방 5~6시간 거리의 Ilomantsi의 Mohko라는 과거에 제련소가 있던 마을에서 Thuomas가 참가한 전람회 개막식을 함께하고 오후엔 다시 서북방으로 핀란드를 가로질러 약 7시간 동안 6백 킬로미터를 달려 반경 2백 킬로미터나 되는 유럽 최대의 도시 Rovaniemi에 자정 넘어 도착했다. 로바니에미는 큰 면적에 비해 인구수는 약 6만 명이 사는 아주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등의 후유증으로 모든 건물이 파괴된 후 재건과 재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데 큰 강을 낀 도시는 때마침 만발한 노란 민들레꽃과 암갈색 물빛의 강변에 정박한 선박과 산책 나온 노년의 부부와 젊은 사람들의 건강달리기하는 모습에서 평화로움이 묻어나는 아침이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문화적으로는 구색을 갖춘 도시라서 시립 미술관이 버젓하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비엔날레가 개최되며, 전시장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Tuomas의 집에서 하루를 더 묵고 이튿날 밤 최종목적지인 오랑키에 도착했다. 밤이라지만 백야로 인해 날이 밝았다. 한 가지 우리와 달라서 흥미롭게 생각되는 것은 오후 8시 이후는 모든 주류판매가 금지되며, 9시 이후는 맥주조차도 판매할 수 없다고 한다. 야간 주류 판매 금지 조치는 아마도 백야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밤이지만 해가 중천에 있다 보니 취중에 낮으로 착각하고 계속 마시게 되면 다음 날 일을 모두 망치게 되니 처한 조치가 아니겠나!

오란키(Oranki)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웨덴과 마주한 국경 마을 펠로(Pellow)에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그중 일부가 백가(Pekka)라는 화가 소유의 땅으로 2001년부터 이곳에서 미술 행사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만 14년이 되는 셈이다. 해마다 10여 명의 작가가 참가하여 현장에 작품을 남기다 보니 이제는 200여 점 이상의 작품이 있다고 한다. 다만 오랫동안 작가를 선정하거나 초대하지 않고 자유 참가로 진행하다 보니 군데군데 좋은 작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느낌이 왠지 어수선하여 임펙트가 강하진 않았다.

그리고 한가지 아주 특이한 것은 현장 어느 곳에도 전기설비가 되어있지 않은 점이었다. 심지어 작가 숙소 겸 현장 본부에도 전기시설이 전혀 없었다. 불편하긴 했으나 그 나름의 특색이 있었다. 전기 없이도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백야라는 특수한 혜택(?)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연이란 생각할수록 참 오묘한 데가 있는 것 같다. 한겨울엔 흑야로 일조량이 겨우 3~4시간밖에 되질 않지만, 상대적으로 여름엔 밤새도록 해가 지지 않으니 결국 연간 일조량은 균형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주일 짧은 기간 동안 지름 4미터의 큰 바퀴를 만들어 설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재료구매부터 작업을 지원하는 시스템 등이 원활하지 않아 걱정되어 잠을 설치기도 했다. 게다가 계속 달려드는 모기떼도 작업을 방해했으며, 도착 이튿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매일 한두 차례씩 상습적으로 내려 일을 더욱 어렵게 했다. 결국 여러 가지 현장의 상황이 만만치 않아 개막식 날에야 기중기 대신 트랙터를 동원하고 모든 사람이 달려들다시피 하여 겨우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법륜 작업 중
현장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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