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중학교 진로진학 코너 31. Working President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2.02 09:23 의견 0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일: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Working:What We Do All Day (2023)’을 보았다. 중년의 눈과 허리는 장시간의 영상 시청을 허락지 않는다. 그래서 일명 요약 유튜브를 애호하다 보니 요즘엔 아무리 재밌는 시리즈물도 전체를 보는 게 힘든데 명색이 진로 교사로서 그럴 순 없다고 긴장해서인지 네 편의 영상을 한 번에 끊지 않고 시청했다. 우리가 일을 대할 때는 종교적인 노동관에서 비롯된 엄숙주의와 하기 싫은 어떤 것에 대한 거리두기가 느껴져서 책이나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다 저렇게 건조하다. 마주하고 있으면 두 손을 모아야 할 것 같고 숙연해지는 그런 제목이다. 그러나 제작자를 보면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총괄 제작에 무려 버락 & 미쉘 오바마라니!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퇴임 후 방송 활동에 천착하여 이미 넷플릭스에서 ‘애덤 코노버:정부가 왜 이래?’라는 작품을 제작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직접 내레이션을 하고 출연까지 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이다.

영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인상 깊게 접한 것은 일찍이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러브스토리(2009)’를 통해서였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부터 비롯된, 탐욕적 자본주의의 산물임을 날카롭게 비판한 무어 감독의 작품은 당시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장면을 후반부에 보여줌으로써 그를 금융 위기 해결의 희망으로 제시한다. 그전까지의 백인 중심 기득권 사회가 보여준 무능이 젊고 진보적인 새로운 대통령으로 극복되리라는 기대가 그의 당선에 일조했을 것이다. 당시엔 금융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이 갖는 상징도 컸다. 그렇게 재선까지 8년을 집권하면서 전임 행정부가 남긴 파탄 직전의 경제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고 오바마케어, 부자 증세 등을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두 관철하는 등 개혁적 성과를 다수 이루고 퇴임한다. 그리하여 퇴임 시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3번째인 60%였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그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는 사람들의 불만은 어쩌면 그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출현을 야기시킨 반동이었으리라. 익히 알고 있듯 그다음 당선된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였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는 브렉시트가 있었고, 우파 또는 극우 정당들이 세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난세를 평정해 줄 영웅을 원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리 쉬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비합리적 선동이 들어설 공간은 커지는 것 같다. 정치인들의 진정성을 존중한다 해도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임기 내 개혁은 다 고만고만할 수밖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본다.

다큐멘터리는 1부 서비스 직종, 2부 중간 관리자, 3부 꿈의 직업, 4부 리더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낮은 임금으로 불안정한 삶을 사는 노동자들부터 중산층을 대변하는 중간 관리자,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을 소개한 후 끝으로 스타트업 상장사 대표와 인도 국적의 세계적인 기업 회장까지 각 영역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직업인들을 소개한다. 회차마다 간간이 오바마가 등장해 직업인들과 직접 대화하고 애환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영상에는 저임금 노동자들보다 CEO나 리더들의 일이 더 훌륭하다는 편견을 잊게 해주는 다양한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뉴욕 피에르 호텔의 업무를 통해서 그곳이 수많은 사람이 각각의 역할을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하나의 생태계임을 알려주는 장면 등이다. 객실 담당원(하우스 키퍼)부터 세탁 담당자, 페인트공의 일을 보여주고, 호텔 전화 교환원, 총지배인과 같은 중간 관리자의 일을 연이어 보여준 후 이 호텔을 관리하는 인도 최대 기업 타타그룹 회장인 찬드라세카란을 보여주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느낌을 저절로 받게 된다. 높은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절대 무시하지 않고,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단순한 게으름과 노력 부족이 아니라 기회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점도 따뜻하게 여겨졌다. 인상적인 장면은 흑인 여성 노동자가 흔들의자가 있는 집에서 공과금 걱정 없이 냉장고가 가득 차 있는 삶을 동경한다며 오바마에게 ‘평안하냐?’고 물었을 때, 그 자신은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고 평안한 상태지만 그건 자신에게만 해당하면 안 되는 것이고 따라서 다음 세대가 걱정된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양극화가 걱정되십니까?”라는 타타 그룹 회장의 질문에 일자리에 관한 오바마 자신의 문제의식과 견해를 답변하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재임 기간에 지지리도 인기가 없었지만, 퇴임 후 국제 해비타트 운동 등에 참여하고 분쟁 지역 갈등 해결에 큰 역할을 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처럼 아마 오바마 대통령도 퇴임 후에 시민들의 보다 나은 일과 삶을 위해 계속 노력할지 모른다. 등장하는 직업인들 모두에게 연민과 존중을 표하는 그의 모습에 화면상으로나마 진실한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 권력자도 개선하지 못하는 직업 세계의 모순을 나 같은 평범한 선생이 어떻게 해결하겠느냐는 자조가 위로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줄곧 떠나지 않은 것은 1화에 나온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에 힘들어하고 있는 서민들의 모습이었다. 솔직히 진로·직업 교육을 하면서도 어쩌면 미래에 상당수 아이에게 해당할 수 있는 이 부분의 직업과 삶은 애써 외면해 왔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밝은 면만 얘기해 온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우린 과연 어떤 일을 무시할 수 있을까? 사회적인 직업의 위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힘들지 않은 일은 없고 하찮은 일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저임금 반복 노동이라고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건 동네에 흔한 다국적 커피숍에만 가도 확인이 가능하다. 거기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다량의 주문 정보를 처리하는가를 보면 경탄할 때가 많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당장의 생계를 어느 정도까지 지탱해 줄 수 있느냐이다. 앞서 오바마에게 질문한 흑인 여성의 경우도 어릴 때 변호사를 꿈꿨었고, 고등학교에서는 만점의 성적을 받는 등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현재 그녀에게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가 전무한 듯 보였다.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인턴으로 시작하여 회장이 된 찬드라세카란도 형편이 어려워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젊은이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보다 성장시키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그게 공부건, 기술이건, 어떤 분야이건 간에 해당 분야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처우가 보장되고 그래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가 많아지면 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선택지를 줄 수 있어서 기쁠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만족스러운 분야가 너무 협소해 유독 ‘의치한약수’로 몰리는 현상이 심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고민을 더 하다 보면 많은 부모님들의 걱정과 또 만난다. 바로 어떤 분야라도 좋으니 제발 무언가에 노력하는 아이를 만들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어려운 문제다. 어떻게 하면 열정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열심히 노력할 수 있을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온전히 일치하는 삶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정답을 알 수 없기에 근사치만이라도 알고 싶은, 먹먹한 질문은 끝이 없다. 진로 교육의 숙제이면서 인격 완성의 영원한 숙제인 그 질문의 해답을 오늘도 별처럼 헤며 밤을 보낸다.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