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식 교육칼럼 】학교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고민(5) .

상급기관의 태도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1.22 07:18 의견 0

푸념을 해 본다. 푸념이란 말은 국립국어원 표준 대사전에 의하면 ‘마음속에 품은 불평을 늘어놓는 말’이라 정의되어 있다. 한자 '앙怏'이나 영어 'complaint' 와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한자 '怏'은 원망에 가깝고 영어 'complaint'는 '요구'에 가깝지만 우리말 ‘푸념’은 자조적 성격이 강하다. 이를테면 누구를 향한, 또는 대상이 있는 말은 아닌 것이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오는 ‘공직 기강~ 어쩌고’ 하는 공문이 온다. 다른 기관은 몰라도 학교는 이 시기가 제일 바쁘다. 성적 처리 등 학기말 업무가 이 시기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기관도 바쁜 연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기강紀綱’이라는 준엄한 단어를 쓰며 은근히 위협한다. 도대체 이 단어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 말을 공문으로 전파하는 자신들도 기강의 대상일 텐데 ……

‘기강紀綱’이란 말을 좀 더 자세히 보자. ‘紀’는 ‘법’이라는 뜻이다. 綱은 ‘벼리’라는 뜻이다. 벼리는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이라는 의미이다. 뭉쳐서 이야기하면 ‘법망法網’이라는 의미다. 그 망 범위 내에 있으라는 이야기가 ‘기강紀綱’ 확립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기강’을 잡는 주체는 국가이고, 이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주체들은 행정 각 부, 그리고 그 부처의 공무원들일 텐데 그들의 기강과 우리의 기강이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공문상으로만 본다면 그들은 그 기강 위에 서 있는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상층의 기강이 하층의 기강보다 훨씬 더 중요한데…… 아침 뉴스에 의하면 신임 모 부처 장관 후보자의 불법행위가 참 많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법인 카드를 남용했다 하는데…… 교장이었던 지난 4년 동안 나는, 학교 법인 카드를 구체적으로 사용해 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신임 장관 후보자의 법인 카드 사용 이력은 꽤나 질펀해 보인다.

또 있다. 여러 방송사의 보도에 의하면 고위 공직자들의 근무 기강은 그야말로 개판에 가까운데 우리처럼 항상 일찍 출근하고 복무를 성실히 하는 사람들에게 기강을 운운하니 이것은 분명 부당한 위협에 가깝다. 교장 시절 학교 보안 감사를 나와서 선생님들의 책상 서랍의 시건장치施鍵裝置(어려운 용어다. 열쇠가 맞다.)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학교 교무실은 퇴근 시부터 철저하게 잠기고 심지어 학교 전체가 경비되는데, 교무실의 서랍 잠금장치가 없다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서 약간 화를 낸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아랫사람에게는 엄하고 윗사람에게는 관대한 문화가 아직 우리의 현실인 것을 감안해 볼 때 연말 공직 기강 어쩌고 하는 말은 완전히 아랫사람용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이해될 뿐이다.

민주주의는 아랫사람에게 관대하고 윗사람에게 준엄할 때 이루어지는 제도다. 어차피 계층화, 계급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윗사람의 명령이 더 강하게 실현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신에 위배된다. 특히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조직 사회에서 이런 공문은 학교가 여전히 공고한 계급사회임을 깨닫게 하고, 동시에 학교 구성원의 민주적 의지나 결정보다는 일률적인 공문 한 장이 더 지배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소한 2024년에는, 학교에 이런 위협적 권위적 공문이 뿌려지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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