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학교에서 새 학년 맞이라는 집단 의례가 생긴 지 십 수년, 각 학교에서는 2~3일, 어떤 학교는 3~4일을 모든 교사들이 모여서 교실을 정리하고 신 학년 교육과정을 의논하고 자리를 정리한다. 나도 이제 마지막으로 학교 안에서 자리를 옮겼다. 우리 학교는 월화 2일 동안이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학교를 가지 않고 온전히 나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제법 큰 연못이 있고 그 연못 주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집에서 출발하여 연못을 한 바퀴 둘러오면 약 7Km쯤 된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약 10여 년, 새벽에는 거의 매일 이 길을 걷는다. 방학 동안에는 낮에도 걷는다. 오후 2시쯤 졸음이 몰려올 때 걸으면서 생각을 하기에는 그만이다.

연못에 철새들을 본다. 얼음이 거의 녹은 찬 물에 철새들이 천천히 유영을 한다. 우리가 보는 위는 참으로 고요하게 물 위를 미끄러져 가지만 물에 들어 있는 부분, 특히 발은 매우 바쁘고 나머지 배도 아마 차가울 것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이해할 일은 아니지만 저 겨울 철새는 분명 편안한 상태는 아닐지도 모른다.

물은 4도에서 가장 밀도가 높아진다. 만약 얼음이 어는 0도나 영하에서 밀도가 더 높다면 얼음이 어는 겨울에는 모든 물속 생명체들은 모두 얼어서 죽게 될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얼음은 물보다 밀도가 낮아 물 위에 뜬다. 그래서 외기의 차가움을 막아 물속 생명들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연못 주변에 벚나무들이 아직은 앙상한 가지 그대로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꽃 눈을 부풀리고 있다. 찬 바람 속에서도 붉은 기운을 조금씩 더해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온도가 적당해지면 여지없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하기야 납매臘梅는 벌써 꽃을 피웠다. 납매에서 납(일)은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을 가리킨다. 따라서 납매는 동지(12월 22일경)로부터 30일 정도가 지난날이니 이듬해 1월 말쯤이 되고 그때 피는 매화가 바로 납매다. 매화 중에 이른 시기에 피는 매화가 납매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지난가을 이후 내내 꽃을 그리워하고 있다.

노자가 생존해 있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계절의 변화나 삶의 모습은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어디에 소속되어 일하고 계절의 변화를 보고 정밀한 자연의 질서를 절감하며 작은 꽃 한 송이에 감동한다. 하여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渝."(고건언유지 명도약매 진도약퇴 이도약뢰 상덕약곡 대백약욕 광덕약부족 건덕약투 질진약투.)<도덕경 41장 부분>

그러므로 격언에 있듯이: “밝은 도는 마치 어두운 듯하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나는 듯하며, 큰 도는 나뉘는 듯하고, 높은 덕은 골짜기 같고, 아주 흰 것은 더러운 듯하고, 넓은 덕은 부족한 듯하며, 강건한 덕은 구차스러운 듯하고, 진실함은 변하는 듯하다.”

노자의 예리한 눈에 천지가 그러하다는 것인데 오랜 시간이 지나 이 땅에 사는 내가 보는 세상과 큰 차이가 없다. 학교는 내 나이만큼 지나도 별 변화가 없고, 연못의 물은 지극한 법칙에 따라 생명을 보전하고, 시간에 따라 꽃은 피고 또 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봄을 기다리고 있는 어리석고 무지한 나와는 무관하게 2600년 너머에 노자께서 계신다.

유근종 작가의 스튜디오 좁은 마당에 핀 납매,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