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느그 아부지(어무이) 머 하시노?” 이 질문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본다. 질문의 함의를 생각하고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게 요즘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역량이라고 하지 않던가. 먼저 첫 번째 의미는 부모님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느냐일 것이다. 이 경우는 간단하다. 아이는 부모님의 직업을 답변하면 된다. 그런데 두 번째 의미로 생각하면 간단치 않다. 바로 부모님이 진짜 무슨 일을 하느냐이다. “우리 아부지(어무이)는 의산데요”, “우리 아부지(어무이)는 역사 선생님인데요”, “우리 아부지(어무이)는 빵 가게 하시는데요” 첫 번째 의미로 쉽게 받아들여질 대답들인데 저 정도면 듣는 사람도 어렴풋이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아부지(어무이)는 부동산 개발업자인데요”, “우리 아부지(어무이)는 스마트팜 농장을 경영하는데요”, “우리 아부지(어무이)는 경영 컨설턴트인데요” 이 정도 되면 고개만 끄덕이게 된다.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간단히 설명할 수 없고 듣는다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런 직업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 많다.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직업은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도 편하다. 그러나 이미지로만 떠올리는 직업의 경우에는 정말 무슨 일을 하는지를 좀 더 살펴보는 정성이 필요하다. 때론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과학자를 동경하던 아이가 실제 그들이 하는 공부와 연구의 내용을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실망감이 그렇다. 과학 공부와 연구의 현장은 결코 퍼머 머리의 아인슈타인과 나비 넥타이의 에디슨이 만든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친구가 만든 독립영화에 교사 역할을 맡아 출연한 적이 있다. 비록 단역이지만 영화배우의 삶을 하루 동안 경험한 것인데 스텝들의 분주한 모습 속에서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감을 느끼는 등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하나의 씬을 찍기 위해 때로는 매우 지루하고 진이 빠질 정도로 준비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이건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멋진 영화감독과 배우가 일하는 이미지에 현타가 오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저런 질문을 하면 더욱 난감하다. “선생님, 부동산 개발업자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나요?”, “경영 컨설턴트는 무슨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요?”, “스포츠 에이전트는 어떤 일을 하나요?” 등의 질문들이다. 그러나 얘들아 ‘미안하다!’ 아무리 인터넷과 유튜브 자료가 풍부하다 해도 현실 직업인이 겪고 있는 보람과 어려움, 그리고 정말 어떤 일을 하는지를 좀 더 내밀하게 알 수 있는 건 실제론 무척 어렵고 선생님에게도 큰 소망이란다. 모든 일과 직업을 직접 경험하고 수많은 직종의 지인과 친구를 보유한, 그런 진로 교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기껏해야 학교에서의 삶이 인생 경험의 전부인 나로서는 정말 요원한 바람이다. 그 바람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편은 바로 ‘간접 경험’이다. 왜 독서가 중요한가. 간접 경험과 사색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좋은 활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행, 인터뷰 등의 좋은 간접 경험과 함께 ‘영화 감상’도 추가할 수 있다. 그렇다.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느껴 볼 수 있는 시청각 자료로서 영화는 그나마 주변에서 얻지 못한 특정 직업의 일하는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그래서 진로 교육에 활용할 만한 영화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창업가 교육은 진로 교육의 한 영역이다. 만일 상품 제조와 판매 및 경영의 과정을 이해하고 싶다면 여성 사업가 조이 망가노의 실화를 다룬 영화 ‘조이’를 추천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웨이트리스, 항공사 예약 담당 등의 업무로 생계를 유지하던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성향을 살려 봉을 잡고 돌려서 짜는 대걸레인 ‘미라클 몹(Miracle Mop)’을 발명하고 이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둔다. 이 과정에서 상품이 어떻게 발명되고 시제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투자를 받아 회사를 차려 홍보하기까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아볼 수 있다. 다소 괴팍한 가족 구성원들의 좌충우돌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회사를 세워나가는 세 자녀를 둔 이혼모의 사연이 쾌활하게 그려진 점도 좋고, 경쟁사와의 갈등 등 사업을 진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어려움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조이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그녀는 이 작품으로 2016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다. 비슷한 맥락에서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세상에 구현하는 과정을 알아보고 싶다면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다룬 영화 ‘잡스’도 추천할 만하다.

물리학자나 수학자 등의 학자들이 연구하고 활동하는 모습과 해당 영역의 천재들이 시대 속에서 겪었던 고뇌, 학계의 모습 등을 전반적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실존했던 수학자 존 내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맨허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원자 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를 추천한다. 학자들이 연구하며 협동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그 사이에서 학문적이고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겪는 모습을 확인하기 좋은 영화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알 수 없는 수식과 기호들, 그리고 학자들의 대화가 전혀 이질감이 없다면 이미 준비된 자연 과학도로 여겨도 좋겠다.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 리그나 유럽 축구 리그에서 연일 거액의 계약금으로 트레이드되는 뉴스를 접하다 보면 과연 프로 스포츠 구단에서 선수들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할 수 있다. 비록 선수는 아닐지라도 운동을 좋아해서 구단 관계자로 종사하고 싶다면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프로야구 구단 단장과 프런트 직원의 활약을 다룬 영화 ‘머니볼’을 추천한다.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가난한 야구 구단의 살림으로 최적의 선수들을 스카우트해야 하는 단장의 고뇌, 하버드대(영화에서는 예일대) 경제학과를 나왔지만, 야구 구단에 취직하여 통계에 기반한 선수 기용으로 이른바 ‘세이버 매트릭스’를 구현한 프런트 직원의 도전 등으로 구단 직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다. 게다가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일지라도 강한 확신과 노력이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멋진 메시지도 감동적인 영화이다.

직업 현장에서의 성공과 낭만만을 말할 수는 없다. 현실의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들도 아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서민과 노동자들의 힘든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늘 응원을 잃지 않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다. 그중에 오늘날 보편화된, 이른바 ‘플랫폼 노동’의 대표적인 직업으로서 택배 기사의 삶을 다룬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추천한다. 주인공은 전직 은행원이었지만 회사의 부도 이후 네 식구를 건사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자신의 사업이라는 기대로 시작한 택배 업무에서 열심히 일하는데도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안타까운 상황에 갇히게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국 택배 기사님들의 애환이 우리나라의 경우와도 매우 유사하기에 노동 현장에서 어떤 점들이 개선되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직업의 세계가 마냥 즐겁고 기쁘지만은 않다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할 수 있는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도 같은 맥락에서 강하게 추천한다.

그 밖에도 전투기 조종사의 일은 영화 ‘탑건 : 매버릭’에서, 우주비행사의 일과 항공 우주 분야 종사자들의 일은 영화 ‘아폴로 13’으로, 패션 잡지사에서의 일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끝으로 악기 연주자가 어떻게 연습하고 성장하는지는 영화 ‘위플래쉬’에서 알아볼 수 있다. 이렇듯 수많은 영화에서 직업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기에 시간이 허락하면 추가로 리스트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직업 세계를 알아보려는 의도로 영화를 고르다 보니 작곡가들이 편하게 음악 감상을 할 수 없다고 하듯이 앞으로 영화를 보면 그 속에 직업에만 집중할까 봐 걱정된다. 그러나 만일 그 걱정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걸 기분 나빠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건 그 정도로 직업 정보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