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중학교 진로진학 코너 28. 다중 직업 시대 찬가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1.12 07:15 | 최종 수정 2024.01.12 07:53 의견 2

어린 시절,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듣는 게, 정말 싫었다는 사람의 연설을 들었다. 그러면서 되고 싶은 건 없었지만,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고 한다. 진로 교사로서 그 연설을 들으며 하고 싶은 게 곧 되고 싶은 걸로 이어지는 삶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연설을 떠올리니 이상하게 내 글도 꼬이는 것 같아 빨리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대학 시절 전공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쏟은 정성이 더 컸다. 나는 당시 학교를 대표하는 록밴드 동아리 활동을 했다. 처음 접하는 악기(전자 기타) 연습을 많이 해야 했고, 공연 준비를 위한 합주와 각종 동아리 행사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었지만 그런 고된 준비 후에 행한 공연의 짜릿함이 좋아서 더 정성을 들였다. 다전공 개념으로 본다면 주전공은 윤리 교육이지만 부전공은 록밴드 동아리였다고 봐도 좋겠다(주변에선 정반대였다고 핀잔을 많이 들었지만).

법학전문대학원, 일명 로스쿨이 개설된 대학은 학부에 법학과가 없다(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그래서 ‘저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은 바로 잡아줘야 한다. 그럼, 로스쿨에 가고 싶은 사람이 학부는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싶다면 무슨 학과에 입학해야 할까? 통상 로스쿨 입학 준비에 유리한 학과로는 정치외교학이나 국제관계학, 사회학, 행정학, 철학 등을 든다. 그러나 로스쿨에는 결과적으론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학생들이 많이 들어간다. 통계로 인한 오해인데 결국 대학 입학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잘 들어간다는 뜻이다. 전국 로스쿨에 입학한 대학별 인원도 이른바 SKY 등 상위권 대학이 많은 게 대학 입학 때 좋은 성적을 보인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도 잘한다는 걸 알게 해준다. 이 바닥에 반전은 별로 없다. 로스쿨 얘기를 꺼낸 건 처음 인가될 당시에 법학과 정원을 전환해서 만든 학(부)과를 말하기 위해서다. 바로 ‘자유(자율)전공학부’이다.

자유(자율)전공학부가 설치된 대학들의 정시모집 성적을 보면 대학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높은 위치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도 인문계열 최고 점수가 자유전공학부이다. Holland 직업흥미검사를 하면 여섯 개 항목이 다 높은 점수를 보여 육각형이 꽉 찬 아이들이 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이다. 육각형이 너무 적은 경우보다야 무엇이든 관심이 많고 의욕이 충만한 게 좋아 보이지만 이 아이들도 고민이 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결국 안정감 있는 진로 방향이 잡히지 않는 것. 그러나 진학에 유리한 일관된 진로 활동을 갖추어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면 이 점은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사항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가 뭘 해야 자신에게 적합한지 고민이 될 때 선택할 수 있는 학과(부)가 바로 ‘자유(자율)전공학부’이다. 얼마나 좋은가! 1학년까지 다양한 교양과목을 듣고 전공을 천천히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대학별로 이 학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다가 입학 점수가 높은 이유를 알고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설립 취지와 무색하게 법학과의 빈자리로 만들어진 학과답게 로스쿨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들이 많아서 인기가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이점, 오직 쓸모 있음으로만 쏠림이 강한 모습은 상아탑에도 예외가 아니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에 그런 성향이 다소 약해지고 있다는 보도들을 함께 확인한 점이다.

자유(자율)전공학부와 함께 요즘엔 대학별로 다전공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고 이를 활용하는 학생들도 많다. 대표적인 게 복수전공과 부전공, 연계전공, 그리고 융합 전공 등이다. 이 역시 입학할 때 점수가 높은, 이른바 쓸모 있음이 큰 인기 학과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의 숨통을 트여줄 방안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 사람의 진로가 단편적이고 평면적이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간단히 살펴보자. 복수전공은 주전공 이외에 1개 이상의 전공을 추가로 이수하는 제도이고 따라서 졸업장에 두 개의 전공이 표기되던지 아예 하나의 졸업장을 더 주는 경우가 있다. 부전공은 그보다는 하위 개념으로 일정 학점을 추가로 이수할 경우 타전공 수업을 충분히 들었다고 인정해서 졸업장에 주전공 아래 표기된다. 이수해야 할 학점은 당연히 복수전공보다는 적다. 또한 2개 이상의 학과(전공)가 교육과정을 연계하여 편성한 새로운 전공을 추가로 이수할 경우 이를 연계전공이라 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융합 전공도 있다. 연계전공은 연계전공만의 전공과목이 없이 기존의 개설된 과목들을 연계시켜 하나의 교육과정을 구성하지만, 융합 전공은 기존에 개설된 과목 외에도 아예 새로운 전공과목을 개설하여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연계전공과 융합전공의 차이점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런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선택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로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경험을 하리라고 본다. 복잡해 보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와 사회 진출 시 유리한 공부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다전공 분위기가 전인교육(全人敎育)의 한 모습으로도 받아들여진다면 더욱 그렇다.

자유(자율)전공, 다전공 개념은 직업 세계에도 이어진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일명 ‘부캐(멀티 페르소나)’ 현상이 그것이다. IMF 이후 평생직장의 개념이 약해졌다곤 하지만 자신이 직업 활동으로 종사한 분야를 완전히 바꾸는 건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대학 전공, 첫 직업 등과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주목을 받은 사례는 국내외에 너무도 많다. 그중 몇 가지를 들어 본다. 프로듀서 크리스 카터는 대학 졸업 후 좋아하던 서핑 분야의 잡지에서 13년간 일한 작가였다. 어느 날 20세기 폭스사는 시청률이 저조한 금요일 밤 시간대에 저예산 드라마를 편성하였고 그는 각본과 연출로 이 드라마에 참여했는데, 그 드라마가 바로 90년대를 풍미했던 미스터리 시리즈 ‘X-file’이다. 가수 신해철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었고 성적을 유지하며 음악 활동을 하겠다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집안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서강대학교에 들어간다. 전공은 실용 음악과는 무관한 철학이었다. 그가 음악 외에 좋아했던 철학의 세계는 훗날 그의 곡 가사에 많은 영향을 준다. 본캐와 부캐가 이미 뒤바뀐 삶이다. 이것저것 하다가 꽂히는 무언가에 집중해 성공한 경우가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취를 다 던지고 다른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용기는 열린 진로 활동에 귀감이 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시에도 입학하기 힘들었던 경희대학교 한의대에 들어갔지만 경제적인 문제, 한의학 공부에 대한 흥미 저하 등으로 중퇴하고 일본 유학 시절 접하게 된 음악 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 훗날 유명한 가수가 된 강산에의 사례가 그렇다. 그룹 퀸(Queen)의 멤버들은 전공과 무관한 삶으로 유명하다.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경우는 그래픽 디자이너 학사이고 기타인 브라이언 메이는 천체 물리학 박사 과정 수료, 베이스인 존 디콘은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전자공학 학사를, 끝으로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는 런던 호스피탈 메디컬 칼리지의 치의예과를 다니다 음악을 위해 중퇴한다. 음악과 무관한 전공을 해도 진입 장벽이 낮은 시절이라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 편견을 떨치기 바란다.

일명 ‘N잡러’라는 명칭으로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고용 시장의 유연함을 잘 지원해 주는 제도의 발전도 이러한 흐름에 일조했다고 본다. 사회의 안전망이 잘 갖추어진다면 다른 일과 꿈을 도모해 보는 건 그 실현 가능성과 성공 여부를 떠나 즐거운 일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이게 아니면 어쩌지’라는 불안에서 해방된, 일에 관한 여유 있는 사고를 응원한다. 비록 학교 안에서지만 나 역시 가르치는 교과와 업무를 통째로 바꾼 사례이기 때문에 그 고민이 주는 떨림과 기대를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작가 gstudioimagen, 출처 Freepik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