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철학, 노자 도덕경 산책 (41)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1.03 07:15 의견 0

학교에서 수업하는 교사들이 교실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인데, 세월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어려워지는 이유에 대한 의견은 너무나 많고 분석 또한 다양하다. 하여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주고받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上德, 不德, 是以有德. 下德, 不失德, 是以無德.(상덕, 부덕, 시이유덕. 하덕, 부실덕, 시이무덕)”

“상덕(높은 수준의 덕)은 덕이 아니라 하니(내세우거나 강조하지 않으니), 이로써(오히려) 덕이 있게 되고, 하덕(낮은 수준의~)은 덕을 잃지 않으려고 하니(덕이라고 억지로 내세우니), 이로써 덕이 없어진다.” (도덕경 38장)

진심이란 결코 내세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즉 수업장면에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향하는 진심은 크게 내 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민다. 마치 노자께서 덕을 묘사한 것처럼. 덕은 저절로 스미어 덕이 덕인 줄 몰랐을 때, 비로소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학교 자체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좋은 장소와 시설을 제공하고 또 누군가 가끔 해주는 멋진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순간적으로 감동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수업 중에 감지할 수 있는 교사의 진심이다. 아이들에게 진심을 보이는 것은 다양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도덕경 이야기처럼 억지로 뭔가를 강조하면(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은 더 빨리 더 쉽게 잊어버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교사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사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장면이다. 매일, 매주 그 수업시간에 교사와 아이들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일정한 주제를 통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려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사의 진심은 아이들에게 쉽게 읽히지 않고 역시 교사 또한 아이들의 진심을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나는 교직 생활 내내 만난 모든 선생님들은 늘 자신의 진심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하시는 분들이었다. 진심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사의 방법 오류도 있을 수 있고, 도덕경에서 말한 자신의 진심을 너무 강조해서 오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진심 어린 교육은 어렵다. 일단 아이들이 교사의 진심을 발견하는 순간 모든 것은 거의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교사가 아이들에게 진심을 보이기 어려운 이유도 의외로 많다. 교사인 우리는 늘 알 수 없는 벽과 마주한다. 학교 안, 그리고 교실 안에는 보이지 않는 제도, 관계, 조직, 세상과 사회의 분위기…… 수많은 벽이 있다. 때로는 벽을 허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 벽을 억지로 타고 오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늘 벽은 거의 그대로 우리 앞에 있음을 알고 우리는 가끔 좌절하고 그 벽으로부터 등을 돌릴 때도 있다.

당연히 벽 양쪽에는 교사와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과 교사 사이 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하여 아이들이 교사의 진심을 알아내고 감화되는 순간, 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그것은 순간이기도 하고 때론 요원해 보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이 졸업한 후 세월이 흐른 뒤에라야 느낄 수도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2023년 내가 다시 만난 교육현장, 수업과 교사와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교사와 아이들에게 학교 밖의 모든 상황은 공기空氣와 같다. 늘 공기가 상쾌할 수는 없다. 심지어 공기청정기를 켜야 할 때도 많다. 청정기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아주 무겁고 답답한 공기가 2023년 우리 학교를, 교실을 감싸고 있다. 2024년에는 지금보다는 조금 부드럽고 편안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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