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철학, 노자 도덕경 산책(40)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2.27 07:15 | 최종 수정 2023.12.27 07:39 의견 0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칭찬이 지나치면 조금 의심하게 되고 더 지나치면 그것은 이미 칭찬이 아니다. 사람의 일이 모두 그러하다.

자신을 모욕하는 일은 누구라도 불쾌해한다. 그런데 모욕으로 불쾌한 지점과 위에서 말한 과한 칭찬으로 불쾌한 지점이 비슷한 위치에 존재한다.

그런 이유로 노자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총욕약경 귀대환약신) 『도덕경』 13장 부분

총애와 모욕은 깜짝 놀란 듯이 대하고 큰 근심을 자기 몸처럼 귀하게 대하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모욕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다. 하지만 칭찬이나 총애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왜냐하면 칭찬이나 총애는 자신을 높이 혹은 귀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 처음에서 보듯이 총애는 칭찬의 마지막 단계다. 즉 항상 모욕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보통의 우리는 그 지점에 서 있으면서도 늘 그 지점의 위치를 망각하고 언제나 자신이 총애의 대상일 것이라고 착각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총애라는 것이 가지는 위계성이다. 도덕경이 쓰일 당시는 분명 계급사회였고 동시에 왕이 천하의 주인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계급적인 말들이 도덕경에 즐비하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표면적으로 분명히 계급은 없다. 정말 표면적으로 계급이 존재하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도덕경 당시보다 더 세분화된 계급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계급적 사고로 본다면 상급자가 하급자를 총애하고 칭찬하는 것은 하급자를 상급자인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일 수 있다. 아니 분명 전략이 존재한다. 교사인 나도 학생을 칭찬할 때 순수함과 전략을 동시에 가진다. 사실 이때 전략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다음에도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학교나 교육 이외의 장면에서 칭찬이나 총애는 분명 이 정도의 전략으로 그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역시 완벽히 순수하지는 않다. 아주 분명한 사실은 춤추는 고래는 어떤 이유든 간에 절대 자유롭지 않다.

하여 다시 도덕경의 이 말이 더 또렷해진다. "총애와 모욕은 깜짝 놀란 듯이 대하고 큰 근심을 자기 몸처럼 귀하게 대하라." 누군가로부터 총애받는 일과 모욕 당하는 일은 거의 비슷한 지점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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