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 교수의 노자 이야기, 노자사상과 초기 도교의 민중성(6)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2.20 07:30 | 최종 수정 2023.12.20 08:29 의견 0

경기대학교 교수

천사도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상사회를 구현했다. 이들은 군사적 교구를 형성하지 않았지만, 정치와 종교를 일치시킨 조직을 구성하였다. 이들 역시 부수치병으로 신도를 모았다. 이들은 신도들에게 쌀 다섯 되, 신미信米를 받는 조건으로 신도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오두미도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천사도는 장를張陵이 개창하였고, 손자이자 제3대 교주 장로張魯에 와서 오두미도의 조직과 체제가 완성되었다. 장로는 한말의 혼란을 틈타 한중(漢中, 지금의 산서성 부근)을 점거하고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이상사회를 건설하였는데, 정부에서도 결국 그를 인정하여 한녕태수를 맡겼다.

이들은 24치를 두고서 각 치에는 평신도인 귀졸(鬼卒, 도를 믿는 사람)이 있고, 귀졸들을 통솔하는 좨주祭酒가 있다. 좨주는 귀리鬼吏좨주와 간령奸令좨주로 구분되는데, 귀리좨주는 신도들의 치병과 기도를 담당하고, 간령좨주는 노자를 강의를 담당했다. 또한 이들은 의사義舍를 세우고 관리했다. 좨주의 위에는 수령首領이 있었다. 수령은 좨주를 통솔했다. 그리고 수령을 통솔하는 치두治頭좨주가 있었으며, 이들의 위에는 가장 높은 지위인 사군師君이 있었다.

이들이 종교 활동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의사義舍’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좨주는 도로의 여러 곳에 의사義舍라는 일종의 무료 숙박소를 설치하고 거기에 쌀과 고기를 비치하여 각각 의미義米, 의육義肉이라 하고 나그네나 굶주린 자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임무 중에 하나였다.

“여러 좨주들은 모두 의사義舍를 설치했는데 마치 지금의 정전亭傳(공문서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묵어가는 숙박소)와 같다. 또 의미義米과 의육義肉를 마련하여 의사義舍에 비치해둔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배고픈 정도에 따라 마음껏 취하는데, 만일 지나치게 많으면 귀신이 그를 병나게 한다.”

‘의사義舍’제도에 관해서는 쿠보 노리따다(窪 德忠)는 무료 숙박소이면서 일종의 작은 교회당 같은 기능도 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오쿠자키 히로시(奧崎 裕司)는 이를 상호부조의 전통으로 보았고, 이를 앞서 언급한 태평도의 재물관과 연결시키고 있다. 특히 그는 태평도나 오두미도는 모두 민중이 스스로 조직한 사회라는 점에서 평등분배와 상호부조의 성격을 갖는다고 본다. 또한 그는 이러한 전통이 이후 권선서를 중심으로 한 민중도교의 원형이라고 본다.

초기 교단 도교가 형성될 당시의 상황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백성들은 유민이 되어 떠돌아다녔고, 사망자는 길에 넘쳐났고 사람이 사람을 먹는 지경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촌락의 공동체가 붕괴되고. 촌락 공동체 신앙인 사社도 해체되어 새로운 의지처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이 신앙공동체인 태평도와 오두미도가 생겨나게 된 가장 큰 사회적 원인일 것이다. 쿠보 노리따다의 지적처럼, 사社를 대신할 신앙공동체와 생활의 안정을 위해 종교조직에 가담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고, 태평도와 오두미는 이러한 경향에서 생겨난 것이다.

천사도의 근거지였던 파군巴郡과 한중漢中지역은 관중關中과 관동關東의 난민들이 대거 사천지역으로 몰려오는 관문이었다는 연구가 있다.

어쨌든 천사도가 관할하였던 지역은 후한시기의 혼란한 반란과 전쟁 속에서도 매우 평화롭고도 안정된 사회였다. 천사도의 관할지역에 유랑민이 유입되면 그들은 의사에 거처하다가 종교적 의식을 치르고 교도가 되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의 능력에 맞는 삶을 살았다. 천사도가 이러한 종교적 공동체를 건설한 것은 적어도 노자의 사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상사회를 지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자의 사유에서 보이는 이상사회란 초기 도교에서는 ‘태평한 세상’이다. <태평경>에서는 태평한 세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태(太)’는 크다는 의미이고, 하늘처럼 위대한 행위를 쌓는 것을 말한다.…‘평(平)’은 그 다스림이 크게 공평하여[太平均], 모든 일이 잘 다스려지고, 다시는 사적인 이익을 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평’은 비유하자면 땅이 아래에 있으면서 공평한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 땅이 공평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사람이 선한 씨앗을 뿌리면 선한 결과를 얻고 악한 씨앗을 뿌리면 악한 결과를 얻고, 사람이 농사를 지을 때 마음을 쏟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수확물의 질이 좋고 양이 많게 되며, 사람이 농사를 지을 때 어영부영하면서 힘쓰지 않으면 수확물의 질이 떨어지고 양이 적게 되는 것과 같다. ‘기’란 천기(天氣)가 아래쪽으로 만물을 낳는 것을 기뻐하고, 지기(地氣)는 위쪽으로 기르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말한다.…중화의 기와 더불어 세 기가 하나로 합해져 모든 사물을 기른다.…‘태(太)’는 크다는 뜻이고, ‘평(平)’은 올바르다는 뜻이고[正], ‘기(氣)’는 융통과 화합으로써 만물을 기르는 일을 맡는 것을 뜻한다. 이 법칙을 얻어서 다스리는 데 적용하면 태평하고 화합할 것이며, 또 매우 공정해질 것이다[大正]. 그래서 태평의 기가 최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초기의 두 도교 교단은 노자의 사상을 다른 각도에서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태평도의 경우는 군대조직과 종교조직을 일치시킴으로써 무력에 의한 새 세상 세우기였다면, 천사도는 종교와 정치를 일치시킨 종교적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노자의 사상을 실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태평도와 오두미도의 이러한 민중적 성격을 복지의 관점에서 해명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 의하면, 노자의 ‘자기이연自己而然’의 사유, 아자연我自然의 사유가 이들 도교 교단에서 자신의 자발성의 사유로 드러나 태평세계와 의사에서 자율적 자치를 형성하게 하였다고 보았다. 필자의 관점에서 이 논문의 논리적 구조가 초기 교단 도교의 공동체에서 보이는 상호부조와 평등분배와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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