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 교수의 노자의 이야기, 노자사상과 초기 도교의 민중성(4)

3. 노자의 신격화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2.06 07:15 | 최종 수정 2023.12.06 07:30 의견 1

경기대학교 교수

한대 시기에 민간에서 도교라는 교단이 형성될 때, 그 처음부터 노자는 ‘태상노군’이라는 신격으로 신봉되고, <노자>라는 책은 오두미도에서 종교적으로 해석되어 <노자상이주>라는 경전이 된다.

노자가 도교에서 주요한 신이 되고, <노자>라는 책이 도교에서 주요한 경전으로 받들어지는 것은 그들의 사상 때문이다. 진나라 말기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지속되는 전쟁으로 경제와 사회구조는 파탄의 지경에 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나라 초기의 통치자는 황로사상을 채택하여 ‘여민휴식(與民休息)’의 정책을 취한다.

황로사상은 그 핵심 내용이 ‘내가 무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저절로 올바르게 되고, 내가 아무 일도 안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은 저절로 소박해진다’라는 무위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백성과 함께 쉰다라는 ‘여민휴식’라는 정책으로 이어져, 법령을 줄이고 세금을 줄이며 백성들이 스스로 삶을 영위하면서 공동체를 재건하게 만든 것이다. 한나라 초기의 여민휴식 정책은 백성들의 삶을 부유하게 만들고 국가의 재정을 튼튼하게 만든 ‘문경지치’를 이룬다. 이 시기 백성들의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하고 백성들은 대부분 말을 타고 다녔으며, 국가의 창고에는 세금으로 받은 곡식이 썩을 정도로 넘쳐났다고 한다.

하지만 문경지치가 끝나고 동한시기에 접어들면서 독존유술(獨尊儒術)이 국가의 이념이 되면서, 부국강병책과 영토 확장을 위한 오랑캐들과 전쟁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지속된 전쟁으로 민중의 삶은 다시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백성들은 송곳을 꽂을 땅도 없으며, 개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으며, 관리들의 폭정에 시달려야 했다. 하층민중은 감당할 수 없는 생활의 곤란함으로 귀족 통치자들에 대해 증오하는 한편, ‘문경지치’를 기억하면서 노장의 사상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내용을 찾았다.

동한말기의 민중들은 노장의 사상에서 평등과 자유의 사상을 찾았는데, 이러한 사상이 도교의 형성에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결국 노장 사상에서 그리는 세상과 그 세상이 잠시라도 구현되었던 문경지치의 기억들이 한나라 왕조를 뒤엎을 종교로, 소국과민이라는 종교적 공동체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이 동한 말기에 교단화된 도교가 탄생하게 한 배경이다.

동한 말기에 탄생한 도교는 태평도이든 천사도이든 모두 노자를 존중하면서 노자의 사상을 자신들의 교단에 주요한 신앙적 배경으로 사용하였다. 태평도의 소의경전인 <태평경>에는 노자의 일생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을 요약하면, 노자는 도를 얻은 대성이고, 태현에 도읍을 정하고 시방세계의 사람을 감화하였고, 주나라 초기에 인간으로 태어나고, 평왕에 윤희에게 오천자의 도덕경을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자가 천지재변의 혼란기에 메시아로 등장해 민중을 구제한다는 내용도 보이는데, 이는 노자라는 인물이 아니라 李君 혹은 李弘으로 나타난다. 이군 혹은 이홍은 원시천존과 태상노군 등의 先聖을 이어서 後聖 金闕帝君으로 말세의 재변시기에 세상에 나타나 가르침을 펴고 백성을 구하는 존재이다. 이처럼 노자가 후성이 되어서 메시아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은 이후 중국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민란과 반란에 항상 이홍을 중심축이 되어 민중을 모으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태평도들의 반란이다. 태평도는 종교집단이기도 하지만 군사집단이기도 하다.

천사도 역시 <태평경>을 주요한 경전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들 교도들 사이에서는 <노자>가 핵심경전으로 통용되었다. 천사도들은 그들의 신도들에게 <노자>를 강습하고 그것을 계율로 삼아 생활하도록 하였다. 그러한 결과 <노자 상이주>라는 신학적으로 해석된 <노자>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노자의 사상에 따라 이상사회인 소국과민의 공동체를 실제로 형성했었다.

이러한 내용들이 노자사상을 신학의 토대로 삼은 것이라면, 노자가 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노자의 도는 우주 만물의 근원자이자 만물의 생성과 발전에 관여하면서도 그 존재가 신비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또한 도를 표현한 언설들이 신비적인 요소가 많아 종교적 해석의 여지는 충분했다. 가령 <노자>는 “곡신이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빈(玄牝)이라 하고, 현빈의 문을 일러 천지의 뿌리”(6장)라고 하거나, “그러므로 능히 오래 산다”(7장)라고 하거나, ‘장생구시의 도’를 언급했다. 이러한 내용들이 천사도에 의해 종교적으로 재해석되었다. 천사도의 <노자상이주>에는 “도는 지극히 존귀하고 미미하며 형상이 없는 것이다. 단지 도의 계율을 통해 따를 수 있는 것이지 보아서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일이 형상을 흩으면 기가 되고 형상을 모으면 태상노군이 되어 항상 곤륜산을 다스린다.”고 해석한다. 천사도는 노자의 도를 그들의 종교적 계율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면서도, 도에서 생성된 一은 氣로서 모아져 있다가 흩어져 형상을 이루고, 이 형상을 다시 모으면 노자 즉 태상노군이 된다고 보았다.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