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용(궁내중학교 교장)

교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교감선생님이 학부모 민원이 들어왔다며 찾아오셨다. 요지는 '학부모가 교장의 페북을 봤는데 정치적 의견이 있어 학생들이 영향을 받을수 있으니 자제했으면 한다'는 얘기였다.

교감선생님은 학부모님에게 '페북은 교장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 일이다. 그러니 학부모님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라고 바로 답변하셨다고 한다. 학부모가 교사의 프로필 사진을 문제삼고, 친구와의 여행사진에 시비를 걸고, SNS의 글을 간섭하고, 교사의 혼인과 출산 등을 언급하는 행위는 지극히 부당하다. 사생활에 대한 개입과 침해의 문제다. 심지어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동의도 없이 교사에게 연락해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것이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계약에 의해 노동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 노동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전근대적인 신분제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정해진 노동시간 외의 사적인 생활까지 통제하거나 간섭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확인하게 한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현행 법이 교사와 공무원을 '정치적 금치산자'로 만들어 놓은 것에 기인한다. 교사나 공무원의 정치행위와 정치기본권을 어떤 근거로 제한하는지 난 알수 없다. 공무를 집행하는 시간을 넘어 개인의 사생활과 시민적 권리까지 국가가 간섭할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법은 자유와 평등과 민주를 부정하는 신분제적 구속의 잔재일 뿐이다.

프라이버시는 유럽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자유, 평등, 생명권 등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보여준다.

1학기때 한 선생님이 내게 "학부모님이 저녁을 전화를 해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하셨다. 난 "전화 받지 말고 일과중에 통화하시라."고 했다. 선생님은 "교장선생님, 그래도 되겠지요?"라며 안도하신다. 대개의 선생님은 정해진 근무 시간 외에도 학생을 보살피는 일에 개인의 시간을 사용하신다. 학생과 학부모님 상담도 하고, 전화 받는 일에도 열심이다. 하지만 이건 그 선생님의 자발성과 동의에 근거한 것이지,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실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사생활이 모든 시민의 권리인 것과 마찬가지로 교사의 사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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