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테라코타 전시회 관람기/ 임우기

권진규는 진흙의 예술을 추구함에 있어서, 오행의 본체인 진흙(土)을 바탕으로 생명의 펼침과 수렴 사이를 순환하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깊이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하무뭇 승인 2022.05.22 13:28 의견 0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불리는 권진규 전시회 (시립미술관: 2022. 03. 24~5.22)가 내일이면 막을 내린다하여 이른 아침부터 채비하고 일산 집을 나섰다. 역시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대전서 올라온 친애하는 시인 육근상 아우님과 덕수궁 인근에서 만나 함께 조금전까지 전시를 관람했다.

권진규는 테라코타 조소를 위해 당연히 '흙'의 본성을 깊이 사유하고 점토의 생리를 깊이 고구(考究)하였을 것이다. 조금전 전시장 해설에는 그가 생전에 불교에 심취한 사실을 소개하고 있지만, 내 감상에 기대어 말하면, 불가 사상만이 아니라 테라코타 미술의 기본 질료인 흙의 존재 자체가 그의 예술적 사유의 근본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음양오행의 원리는 권준규의 테라코타 작업의 미적 원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을 개연성이 크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유일한 목조(木彫) 작품인 <入山>에서도 제목도 그렇지만 전시 해설에서 사찰의 一柱門을 떠올리게 하는 형상이라 적혀 있으나 그런 내용으론 턱없이 미흡하다. 유일한 나무조각인 이 작품에는 불가의 이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문득 직관적으로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해석하고픈 비평적 욕망이 인다.

권진규의 테라코타를 보고는[觀] 이내 잊고 있던 내 안의 근원적 존재와 해후를 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딱히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으나 생명의 근원 혹은 바탕으로서 흙(土) 속에서 불(火)과 목(木)과 물(水) 그리고 조각칼이나 연장들(金)이 상생의 기운과 상극의 기운을 가로지르며 모두를 끌어모아 뭉치고 구워져서 끝내 나타낸 ‘정신의 현상(現象)’이다. 음양오행론에서 오행에 속하는 것들은 모두 흙(土)에서 돌아가면서 생겨난다.

테라코타가 구운 점토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오행에서 토는 본체이고 목화금수는 현상이다.이 음양오행이라는 근원적 정신이 보여준 구상(具象)의 대표적 점토 조소가 <自塑像>이고, 드문 추상(抽象)의 木彫가 <入山>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마치 승려가 붉은 가사를 왼어깨 걸친 듯 진흙(土)을 구운 몸통에 붉은(火) 의상을 입힌 자화상은 구도자의 상이요 구원의 상이다. 멀리 하늘을 바라보듯이 눈길은 높고도 그윽하다. 이는 고고한 정신의 형상이지만, 물과 불로 구워진 흙의 존재임을 확고히 인지한 형상이라는 점에서 천지인 삼령(三靈.三才)이 하나를 이룬 형상이다. 음기와 양기와 중화기中和氣 즉 陰陽中의 삼신령이 이상적인 중화(中和)를 이룬 상(像)이다. 음양오행론이 그 자체로 심오한 추상이듯이 <入山>도 음양오행을 다루되, 미학적으로 심오하다.

다소 엉뚱한 해석일 수 있으나, 전시장 벤치에 앉아 내 충동적이고 직감적인 비평을 여기에 메모해둔다. 목조각인 <입산>의 형상과 구성을 보면, 음양오행을 상수象數로 표현하듯이 본체인 土(5)를 중심으로 木(3) 化(2) 金(4) 水(1)가 오묘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는 맨 위에 가로로 얹힌 나무가 점토용 조각칼을 본뜬 형상이라는 추정을 하게 만든다. 즉 맨 아래에 받침대로 누워있는 뭉툭한 나무토막이 음양오행의 본체인 土(粘土)를 상징한다면, 오른쪽 한 개(1)의 나무는 나무의 근원인 땅속의 水를 상징하는 상수 1이고, 음양을 상징하듯이 둘(2)로 나뉜 짝 나무 형상은 세상에 펼쳐진 만물을 상징하는 火의 상수 2이며, 그리고 1+2가 하나로 3의 중간의 공간에 서있는 형상이 되며 아울러 木彫의 소재인 木 자체가 상수로서는 3을 가리키고, 마지막으로, 점토 조각칼을 본뜬 위에 얹혀진 점토 칼 형상의 얇고 긴 나무 형상, 비록 목 조각이긴 하나 ‘조각칼’이 상징하듯, 金의 상수로서 4를 가리킨다고 想定할 수 있다. 따라서 목조像인 <입산>은 오행의 상수 1, 2, 3, 4, 5가 다 상징적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기에 ‘음양오행의 도상(圖像)’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권진규의 조소 정신에서 볼 때, 음양오행이 최종적으로 ‘수렴’되는 것은 결국 상수 4, 곧 점토를 조각하는 칼(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나무(3)의 생장 과정을 비유해서 말하면, 점토칼(金, 4)이 오행의 순환 중에서 수렴의 상태를 가리킨다는 말은 점토칼의 상수 4가, 1, 2, 3의 단계를 거쳐, 흙(5)로 복귀ㆍ순환하는 생멸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고, 아울러 순환하면서 꽃(테라코타)을 피운다는 것은 다시 수렴(꽃) 과정이 끝나고 다시 펼침으로 오행의 순환이 반복된다는 뜻이 들어있다는 해석에 이르게 된다.

<입산>이란 제목이 근원적 진리를 찾는 수행자를 상징하듯이 권진규는 진흙의 예술을 추구함에 있어서, 오행의 본체인 진흙(土)을 바탕으로 생명의 펼침과 수렴 사이를 순환하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깊이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권진규의 테라코타는 필히 진흙(토)의 오행 사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 목조 <입산>의 구성에서 가운데 텅 빈 공간은 음양오행의 근원으로서 無極이면서 太極이 되는 生生의 원리를 상징하는 것이고, 이를 불가의 관점에서는, 이 텅빈 空間은 空이면서 동시에 眞如이며, 도가의 관점에서는, 有를 씨앗으로 품고 있는 無이며, 동학의 관점에서는, 무위이화(無爲而化)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음양오행의 상수(象數)로서 해석하고 나면, 이 목조 작품 <입산>은 세속을 여의고 근원의 진리를 찾아 求道하는 치열한 예술 정신이 드러날 뿐 아니라, 이 작품에서 우주 자연의 역동적 운동 원리인 오행의 순환 법칙, 곧 음양 기운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펼침과 수렴을 역동적으로 반복하는 오행의 원리를 洞觀하는 권진규의 ‘근원적 정신’을 어림할 수 있게 된다. 추상의 목조 <入山>과 구상의 테라코타 <自塑像>이 서로를 비추는 맑은 거울같이 깊은 정신적 상관성을 갖고 있기에 이 두 작품이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심층적 진실을 추정함으로써 권진규의 심오한 예술혼은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을 듯하다. 대중들의 몰이해와 가난과 불우 속에서도 생명의 근원을 치열하게 추구한 실로 진실하고 위대한 예술 정신 앞에서 감상자는 삼가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임우기/ 문학평론가, 솔출판사 대표)

노실의 천사, 권진규(1922~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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