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제국의 몰락/ 이영철

단일품종재배의 위험성은 예견된 악몽이었다. 병충해에 걸리면 몰살당했다. 식량생산을 단순화하여 우리는 단기적 이익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지속가능성이라는 장기적 손실로 대가를 치뤘다.

하재일 승인 2022.05.01 00:06 | 최종 수정 2022.05.01 06:10 의견 0

제목만 봤을 때 바나나사업을 크게 벌렸다가 망한 회사의 얘기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풍요로운 식탁은 어떻게 미래 식량을 위협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진지한 고민을 이끌어 내고 우리 자신과 작물을 구하고, 사라져 가는 종자를 지켜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분투에 관한 기록이자 우리가 풀어야 할 퍼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2,0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일주일에 수백 가지의 동식물을 섭취했다. 물론 인간에게 치명적인 식물이나 과일을 먹고 죽은 사람도 즐비했으리라 짐작된다. 농업사회가 되면서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식량의 다양성은 감소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섭취하는 열량의 80%의 작물은 12종으로 구조조정 되었다. 단일품종재배의 위험성은 예견된 악몽이었다. 병충해에 걸리면 몰살당했다. 식량생산을 단순화하여 우리는 단기적 이익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지속가능성이라는 장기적 손실로 대가를 치뤘다. 지금의 문제는 우리 뇌의 기호도가 업계의 의도대로 획일화된 입맛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먹는 칼로리의 대부분은 가공식품이다. Never out of season(제철이 아닌 것이 없다). 이전에 기억하던 과일의 출하순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딸기, 수박, 사과, 귤은 더 이상 자연의 질서에 따르지 않는다. 사계절 어떤 수단을 쓰던 간에 우리의 식탁위에 공손히 올려져 있다. 그냥 올려진 것도 아닌 농약 듬뿍 담아 뛰어난 자태를 뽐내며 우리의 시각과 후각, 그리고 미각을 자극한다.

메이저 농산업체는 작물이나 과일을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지 않는다. 단순성, 효율성, 수익성이 그들의 목표이기 때문에 입맛이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단일품종에 소비자의 입맛을 표준화 시켜라! 맥도널드도 해낸 일을 그들이라고 어려울 것이 없었다.

우리야 입맛을 바꾸면 되겠지만, 한 가지 문제는 단일 혹은 소량 품종의 종자가 해충, 세균에라도 감염되면 그 과일이나 작물은 영영 못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나나가 멸종된다면, 그 동안 바나나 실컷 먹었으니 남은 인생 다른 것 먹으면 되지... 그렇지가 않다. 바나나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바나나와 관련된 산업과 그 종사자들도 같이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게 된다. 그 다음은 감자, 카카오, 옥수수, 쌀, 밀, 카사바 등도 번호표 받아 사망진단서를 발급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한편 글로벌 대기업의 탐욕과 달리 씨앗을 찾아 전 세계를 돌면서 종자를 구한 바빌로프라는 과학자의 신념과 열정, 희생과 봉사는 잊지 말야야겠다. 그의 연구원들은 러시아 대기근의 와중에 종자를 지키기 위해 종자창고에서 굶어 죽었다. 볼로그는 멕시코에서 밀 생산량을 20년 만에 10배 뻥튀기하는 녹색혁명을 일으켰다. 이 과학자는 이 업적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한 명의 과학자인 파울러는 두 번의 암을 극복한 강철멘탈의 소유자였다. 전 세계의 종자를 안전하게 보관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씨앗을 사랑했는지는 자기의 유해를 종자 저장고에 묻어 달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몬산토, 다우듀폰 같은 종자를 판매하는 이익집단에 대해서는 아량이나 자선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종자 은행에 기증하지도 않을뿐더러 종자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강화해 왔다.

연중 똑 같은 식품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우리의 가장 단순한 욕구에 반응하는 것이고, 우리의 욕망이 구체화 된 것이다. 우리의 혀와 눈의 선호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창조해냈다. 우리의 감각편향이 산업적 작물생산과 맞물렸을 때 어떤 환상적인 결과를 빚어내는지 보여준다. 우리의 입맛은 산업을 좌우했고, 세상을 형성했고, 무엇을 어디에서 재배하는지 결정했다. 디킨스의 소설처럼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기가 오늘의 우리이자 미래의 후손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간단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고기를 덜 먹으라. 우리가 고기를 먹으려면 가축이 사료를 먹어야 한다. 소는 인간 보다 더 많이 식량을 소비한다. 비프 스테이크 한 덩어리 덜 먹고 말지 라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겠다. 둘째, 식량을 덜 먹어라. 이 얘기는 공허하게 들린다. TV프로그램은 온통 먹방, 쿡방 프로그램이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는 우리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여 먹고죽자판이다. 뱃살 한 근 늘어날 때 수명 1년 단축된다면, 없던 헝그리 정신도 생겨날 지 모른다. 셋째, 로컬 푸드를 먹어라. 전통종자와 생태농업으로 생산된 식품을 먹으라고 추천하는데... 이 작물들은 농부가 먼저 섭생하고, 소비자에게는 농약으로 코팅된 작물을 선사한다. 부자고객들은 다르게 농산물 서비스를 받겠지만. 넷째, 아이를 적게 낳아라. 이 솔루션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아서... 웰컴 투 더 농약월드에 애를 낳아서 뭐하냐는 것인지, 현재 인류가 미래 먹거리도 모자랄 수 있는데 상황파악이 그렇게 안되냐는 시그널인지 나도 저자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디에 살든 무엇을 먹든 자신이 먹는 것을 통해 다른 생명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한 입은 야생의 자연을 위협하지만 그와 동시에 야생의 자연에 의존하기도 한다. 명심하자. 몰락하는 것은 바나나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도 같이 바나나 물고 쪽박찰 수 있다. 우리가 살찔수록 그리고 탐욕을 부릴수록 자연은 인간에게 최후의 심판을 준비할 것이다.

<바나나 제국의 몰락> 롭던 지음/ 노승영 옮김, 반니/1만8000원.

(경제전문가 '이영철의 북리뷰'에서)

바나나 제국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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