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이 비평집 <메타버스 시대의 문학>

김윤이 시인은 “메타버스 시대에도 여전히 문학이 존재할 것을, 나는 믿는다”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하재일 승인 2022.04.29 07:17 의견 0

<메타버스 시대의 문학>은 김윤이 시인의 첫 번째 평론집으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라는 이름」, 「팜므 파탈과 헌신적 사랑 사이에서」 등 32편의 평론이 실려 있다.

김윤이 시인은 “메타버스 시대에도 여전히 문학이 존재할 것을, 나는 믿는다”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이 과감한 “믿음”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단언컨대 ‘사랑’ 때문이다. 김윤이 시인이 주목하는 ‘사랑’은 “타자에 대한 책임과 윤리”로, 롤랑 바르트와 알랭 바디우의 말을 빌려 적자면 “사랑은 일생일대 사건이자 타자와 세계에 대한 탐색”이다. ‘사랑’은 그것 자체로 충실성을 요청하는데, “타인은 온전히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러하며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새롭게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곳은 “사랑과 연애마저도 대상의 선택에 집중해 있”다.

따라서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시인이 추구하는 연애 형식에는 어떤 간절함이 묻어 있으니 현실과의 불화는 예견”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서정시는 오히려 “사회적 실체를 정확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반영하고 재현할 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김윤이 시인이 <메타버스 시대의 문학>의 첫머리에서 메두사를 재조명하고 책 곳곳에서 허수경을 반복해 호명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요컨대 예술이란 “복합적으로 매개되는 차원의 우회적 창출 행위”로, 그것은 여성의 삶에 중첩된 인류사적 폭력의 현장들 한가운데로 우리를 몰아세운다. 그곳에서 목도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인종[은] 제 종(種)을 얼마든지 언제든지 살해할 수 있는 종”이라는 참상이다. 그 한 자락에 예컨대 자살로 은폐되어 왔던 오필리아의 타살이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낸다. 김윤이 시인이 정리한 바를 적자면, 오필리아는 “살아생전 자신의 말을 일절 하지 못하던 침묵하는 여자, 그 후 광기에 차고 자신의 말을 하는 미친 여자, 마지막으로 영원한 침묵으로 자신의 말을 하는 여자”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바로 이때, 즉 그녀가 “영원한 침묵으로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침묵과 강요에 잠식당했던 여자의 자기실현적인 사랑의 최후 형식”이 작동되기 시작한다. 정언컨대 <메타버스 시대의 문학>은 우리 시대에 단연 돋보이는 급진적이며 정치적인 ‘사랑의 윤리학’이다.

김윤이 비평집, <메타버스 시대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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