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레나

앨레나의 어머니

‘슬라닉 몰도바(Slanic Moldova)’는 깊은 협곡의 막다른 곳에 형성된 도시다. 소금과 석유가 대표적 자원이며 숲이 우거진 천혜의 자연환경은 루마니아의 허파로 불릴 만큼 그 범위도 넓다. 계곡을 따라 산책로가 있고 그 주변엔 천연 약수가 흐르는데 유황 소금 철분 등 다양한 미네랄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어 항상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앨리나는 후리후리한 키에 군살 없는 체형,개성 넘치는 옷매무새 등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화가 겸 철학자인 아버지와 생물학을 공부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동네 학교 교회에 그림을 그렸다. 19세에 이미 지역 교회(그리스 정교회)의 건물 외부 처마 밑을 뺑 돌려 성인들의 모습을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 넣었으며 24년이 지난 현재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15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친은 이 고장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재능있는 딸이 훌륭한 화가로 성장하길 바랐을 것이다. 실제 엘리나는 대학 시절 부쿠레슈티의 모델 선발대회에 나가 입상했으나 완고한 부친은 "머리를 쓰라고 가르쳤지 언제 몸을 쓰라고 했냐?"라고 못마땅해하고 "성화를 그려야 할 사람이 비키니 바람으로 무대 워킹을 하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책망했다. 앨리나는 결국 아버지 뜻에 따라 모델의 꿈은 접었다.

대학에서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 공부를 하고 7년의 영국 생활에선 런던의 소더비 옥션에서 미술품 경매와 미술 운영을 주제로 공부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시내에 있는 빈 건물을 임대해 지역 미술운동을 펼쳤다. 주로 옷, 천, 가구 등을 재생하여 전시 판매 등을 통해 자생력을 키우고 환경문제도 해결하는 의지로 10년 가깝게 활동했으며 어느 정도 성과를 내자 점점 국제적 미술운동으로 확대해 갔다. 그녀는 준수한 외모와 유창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 위해 유럽은 물론 인도, 태국 등 아시아에 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작년 말 임대해 쓰던 공산주의 시절 유니언 빌딩에서 재건축을 빌미로 쫓겨나며 10여 년 노력한 터전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정신적으로도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문화에 관한 관심도 없고 가난한 나라에서 열정만 믿고 일어서려 했던 용기가 사라진 것이다. 다만 현재의 희망은 네덜란드와 오빠가 사는 방콕에서 재활용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한 밑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내년 가을 첫 삽을 뜨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용감하고 거칠 것이 없다. 혈혈단신 돌아다니며 틈을 비집고 일을 벌이는 것을 보면 불도저가 분명하다. 아마도 얼굴의 반을 차지한 주먹만 한 코의 위력인 것 같다. 저 코가 조금만 작았으면 오드리 헵번처럼 은반의 여우가 되었을까? 참 대단한 캐릭터다. 동네 학교의 창고에 빛을 잃고 수북이 쌓인 도구와 재활용 가구와 천, 옷감 자료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길 기원해 본다.

어느 단체나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 보다 여러 사람의 중지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력 인물이 동력을 잃었을 때 제2, 제3의 지도자가 나와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업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한 것앨리나의 모친이 만들어 준 사르말레(다진고기 양념을 양배추로 싸거나 파프리카 속에 넣어 찜)를 파링카 안주로 맛있게 먹고 함께 부쿠레슈티로 떠났다. 나를 공항에 내려주고 같은 날 모친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자신의 그림이 남아 있는 교회 앞의 앨레나

루마니아 약수터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