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가까운 시간, 약간 허름한 건물과 옛날 도시 같은 부쿠레슈티를 벗어났다. 앨리나의 고향 슬라닉 몰도바(Slanic Moldova)는 루마니아의 동쪽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와 가까운 산골로 자연성이 풍부하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 했다. 부쿠레슈티를 떠나 옥수수, 해바라기 등이 수확철을 맞이한 유럽의 전형적 평원을 지나 산악지형으로 접어들자 산과 계곡이 잘 어울린 작은 시가지와 마을이 수없이 지나갔다. 아름다운 풍광과 신선한 바람은 몸속 찌든 때를 벗겨주는 듯했다.
도심을 벗어난 후 2시간 이상 달려 도달한 곳은 산세가 준엄하고 숲이 울창한 계곡에 자리 잡은 19세기 성채가 있는 곳이었다. 19세기 건축된 성은 대대적인 보수중이라서 멀리서 바라보며 점심과 커피를 마셨다.
 
 
아름다운 성을 뒤로하고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 옆 도로를 달려 늦은 오후 루마니아의 전설적 체조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Comaneci Nadia)'가 태어난 마을에 도착했다. 길가의 꼬마네치 생가는 빈집이었다. 대문에 '사트 히리야가 내미레이 83(Sat Hirja Str. Nemirei 83)'이란 표지만 붙어 있을 뿐, 인적이 없었다. 이 집은 엘리나의 외가이기도 하다. 오래전 남에게 넘겼고 이 동네 사람 대부분 코마네치 가문이라 했다. 그녀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학교 옆 개울에서 다른 아이들과 물놀이하고 운동장에 세워진 철봉에 매달리며 천진난만하게 자랐을 것이다. 이 체조 요정은 3살 때 이미 남다른 재능을 보여 지도자를 따라 가까운 오네슈티(Onesti)에서 멀리 트렌실바니아의 ‘타르구 무레스(Targu Mures)'를 거쳐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체조 수업을 받았다.
"그녀가 첫 올림픽 메달을 딴 것은 16살 때였다."라고 앨리나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는 같은 마을에 살았던 코마네치 선수의 5촌 고모(당고모) ‘어게니아 코마네치(Comaneci Eugenia)’였다. 두 번째 금메달은 모스크바 올림픽이었는데 모두 구소련의 선수가 금메달을 딸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우승했기에 더욱더 감동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무렵 독재자의 아들이 이 체조 요정을 짝사랑해 그녀가 참가하는 모든 대회는 물론 훈련을 포함한 일정 관리, 지나친 선물 공세 등 대단한 공을 들였으나 독재자의 부인은 귀족 혈통(Blue Blood)의 며느리를 꿈꾸고 있어 산골 소녀는 안중에 없었다. 결국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선물이 회수되고 위기를 느낀 당대의 체조 요정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여권을 세탁하며 3~4개 나라를 돌아 어렵게 미국으로 탈출하게 된다. 이제 막 꽃을 피울 젊은 코마네치의 불운과 공산독재 시절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컸을 것이다. 때는 독재자의 절대 권력이 무너지기 몇 년 전이었다.
‘나디아 코마네치’는 미국에 정착한 후 체조선수 출신 남자와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체조학교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올해 60세가 된 그녀는 가끔 방송 출연 등의 일정으로 루마니아를 방문하나지만,고향까지 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탈출 후 원인 불명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