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김치 담기


단군의 후예 배달의 자손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은 빛을 잃고 국민의 욕구와 열망이 둘로 쪼개진 가운데 어수선한 삼일절이 지나갔다. 다음 날 밤 계룡산에 동풍이 불기 시작했다. 시베리아 고기압과 북태평양 저기압이 충돌하며 뜻하지 않게 이른 마파람이 찾아온 것이다. 비를 동반한 돌풍은 밤새워 들판을 짓밟았다. 지붕이 날아갈 듯 강풍에 맞선 작업실은 망망대해에서 풍랑을 만난 어선처럼 휘청거렸다. 이따금 부서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작업실 건물과 밖에 세워둔 작품들이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으나 바람은 여전했다. 밖에 있는 대부분의 사물이 원래의 모습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장독 뚜껑이 날아가고 손수레가 자빠지고 작품들이 모두 시련을 겪은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쓰러진 '정랑'과 북벽에 잇대어 달아낸 구조물의 지붕이 돌풍에 찢겨 사납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정랑 위에 올려놓았던 왜가리의 주둥이도 부러진 채 마당에 나둥그러져 있었다.

동풍이 멎고 땅의 물기가 빠지면 2, 3일 수습을 해야 할 것이다. 이참에 일부 작업은 해체하여 바람에 맞서는 고통을 덜어 줘야겠다. 그동안 나의 작품들은 바람이 쓰러트리면 또 세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때마다 더 긴 말뚝을 박고 안심했으나 바람은 비를 몰고 와 깊이 박힌 말뚝을 타고 빗물을 내려 말뚝을 무력화시켰다. 물먹은 모래흙은 말뚝을 붙들 기력이 없었다.

자연은 제 맘대로 하는 중에도 한 치 오차 없이 질서를 지킨다. 그런 자연과 함께 작업하려면 먼저 자연의 질서를 알고 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설치 작품 가족

석양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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