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어린 시절 실험용 전자 키트를 만들던 취미가 있었다. 회로판에 부품들을 꽂고 납땜해서 여러 종류의 장치를 만들던 놀이 기구였다. 큰 대야에 물이 차올라 센서를 건드리면 불이 들어오는 장치, 문이 열리면 접점이 떨어지며 소리가 나던 장치, 손에 있는 땀과 미세한 전류를 인식하여 거짓말을 가려내는 탐지기 등 재미있는 제품들이 많았다. 그것들을 만들면서 어린 손으로 납땜하며 맡았던 납 연기가 당시엔 얼마나 안 좋은지 몰랐다.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했으니 지금 몸 상태에 미세하나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때 다루던 부품들이 트랜지스터니, 다이오드니, 저항이니 하던 것들이다. 그리곤 초등학교 4학년 때(1983년) 당시 삼성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만든 삼성반도체통신에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D램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우리나라가 미래를 위한 신기술을 선진국들과 함께 당당히 열어간다는 홍보에 어린 마음이 들떴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42년이 흘렀다. 뉴스를 찾아보니 우리나라가 반도체에 관심을 갖고 뛰어든 건 이미 1970년대부터였고 당시 회사들은 아남반도체, 금성반도체, 한국전자 등이 있었다. 1985년 매일경제 기사에는 금성반도체가 미국 AMD사와 포괄적 장기 협력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도 있다. 이후에는 금성(LG)반도체, 현대전자 등이 IMF를 겪으며 합병하여 오늘의 SK하이닉스가 되었다. 대만의 유명한 파운드리 회사 TSMC가 만들어진 해는 1987년이었다. 나는 그 당시 중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AI 산업 분야가 전 세계의 자본을 흡수하며 새로운 칩(chip)전쟁을 진행 중인 지금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지난 50년 동안의 전기·전자 문명은 기억, 기록을 뜻하는 단어인 메모리(memory)가 컴퓨터와 전자 장치에 들어가서 얼마만큼 진화해 왔는가의 역사였다. 시작부터 그 이름에서 Artificial(인공적인) 한 의미보다는 Human(인간적인)의 의미가 크게 느껴지니 AI의 인간화는 예견된 일일지 모른다.
칩의 시대를 이끌었던 나라에서 어느덧 치열한 주도권 경쟁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의 진로 성향은 그러나 그 당시와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1987년 대입 학력고사 자연계 배치표를 보니 최고 점수대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 밑에 서울대 물리학과, 그다음이 제어계측과와 의예과였다. 그리고 전산기공, 미생물, 화학 등으로 이어지다가 드디어 서울대 수학과와 연세대 의예과가 만난다. 기술보국! 지금과는 사뭇 다른 당시의 이공계 선호 지표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고의 인재들이 의대가 아니라 공대에 대규모 입성하던 시대. 지금은, 모두가 알다시피 의대라는 진공청소기가 모든 인재를 빨아들이는 먹먹한 시기이다.
과거의 기사를 찾다 보니 기술은 진보하지만, 세태는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삶의 변화를 이끄는 기술을 주도하는 국가가 혜택을 입는 역사는 분명히 반복될 것이다. 다만 그 기술이 무엇인지 헛다리를 짚을 수 있다는 위험 요인은 언제나 공존한다. 단순히 유행으로 끝날지 모르는 테마들이 어떨 때는 수많은 사람들의 탐욕을 자양분 삼아 주목받기도 한다. 현존하는 미래 산업 분야들이 주목받는 정점에서 보여준 기대치가 현실화하기까지 우리들의 인식과 적응이 쫓아가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 와중에 미래에 우리 삶을 바꿔준다며 폭발적 수요를 이끌었던 분야들이 떠오른다.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암호화폐, 자율주행, 배터리 등의 분야들은 지금도 연구 중이지만 정작 우리 삶의 게임 체인저가 되진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곤 AI가 뒤를 이었고 어느새 양자컴퓨터도 고개를 든 상태이다. 인간의 삶을 충격적으로 바꿔줄 기술이 무엇일지 예상되는 후보들이 즐비한 가운데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혼란함이 이어진다.
진로교육에서는 이런 기술들의 발전이 휩쓸고 갈 고용 변화가 언제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다. AI를 말할 때면 그래서 살아남는 직업이 무엇이고 유망한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기본값이다. 그러나 복잡할수록 돌아가라고, 신기술에 따른 직업 변화를 예측하는 게 애당초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과거를 돌아본 후 내리는 타당한 결론이다. 인터넷 검색사가 그랬고 기후변화경찰, 로봇감성치료전문가, 노인말벗도우미, 뇌기능분석전문가, 마인드리더 등(2012년 한국고용정보원, 김한준)이 그랬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MP3, 브로드밴드(Broadband), 블루투스(Bluetooth) 같은 용어들도 떠오른다. 뜨고 지는 용어들의 범람 속에서 미래를 조금이나마 잡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나온 날들에서 배우듯이 기술은 마치 중력과 같은 우리 삶의 영향력 안에서 연동하며 스며들 것이다. 뛰어난 기술일지라도 삶의 속도와 적응에 맞추지 못하고 튀면 도태되듯 시대를 너무 앞서가도 안된다. 그래서 시류를 예측하기보단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함이 필요하다. AI 기술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 T-1000의 모습으로 등장하진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그래도 인간은 미래를 예상하려 애쓰는 성향을 버리지 못한다. 그 속에 함의된 불안은 시선을 끌기 좋은 에너지이다. 2023.11.16. 한국은행, ‘AI와 노동시장 변화’라는 보고서를 보자. AI 특허와 직업별 주된 업무를 조사하여 현재 AI 기술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해당 직업의 업무에 얼마나 집중돼 있는지를 나타낸 수치인 ‘AI 노출 지수’를 산출하고 그것이 높은 직업일수록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류한 보고서이다. 다음은 AI 노출 지수 백분위가 높은 직업 순이다(괄호 안은 백분위). 의사·한의사(99), 전문의(93), 건축가(87), 수의사(85), 회계사(81), 판·검·변호사(79), 간호사(78), 경찰(77) … 중고교 교사(43), 기자·언론인(14), 성직자(2), 대학교수(1) …. 한은은 이 보고서에서 “고학력·고소득 근로자일수록 AI에 더 많이 노출돼 있어 대체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분석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직업 소멸은 기술 대체적 성격보다 해당 사회에서 영위되고 있는 권력관계에 의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 대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어떤 직종은 일말의 저항도 없이 사라졌지만, 어떤 직종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직업은 결코 귀천이 없는 게 아니었다.
자동화가 전 사회에 만연하고 일주일 일해야 할 몫을 단 몇 시간 안에 해치울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지는 사회가 조만간 나타날지 모른다. 그래서 특별한 고도의 전문성과 지식이 부족해 노동의 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날지 모른다. 40여 년 전에 조악한 전자 키트를 조립하며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던 소박하고 낭만적인 그림과는 전혀 다른 불안과 공포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 직업 전망을 어둡게 한다. AI의 완전한 정착이 이루어진 시대에 그 사회를 이끌어갈 능력자들이 만들어내는 풍요가 어떻게 유지되고 이어질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은 어찌 보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빠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AI 시대의 신흥 계층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상품, 정보, 의미들을 소비해 줄 누군가 또한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젠슨 황이던 일론 머스크던 하루에 10끼를 먹을 순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 자동차는 빵을 살 수 없다. 엄청난 생산성과 함께 축적된 부를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들이 어떻게 향유할지에 관한 숙제는 미래 사회의 도래와 함께 우리 인간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해결 방안이 민주주의일지, 보편적 복지일지, 아니면 거대 통제 사회일지는 아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AI 발전과 함께 놓치면 안 될 주제임이 분명하기에 관련한 담론이 활발히 형성되길 바랄 뿐이다.
참, AI가 정착한 미래에 소비를 굳이 인간이 해야 하냐는 주장을 누군가 한다면 그 사람은 너무 위험하다. 바로 체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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